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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이 Jan 06. 2023

하프(harp) 동행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내가 만난 학생들의 연령은 다양하다. 엄마와 함께 한 10개월 아기부터 88세에 이르기까지. 어디 그뿐이랴.

성격, 취향, 말투, 관심사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일대일 레슨에서는 생기지 않는 일이 그룹 레슨에서는 생기기도 하고, 그룹 레슨에서 생기지 않는 일이 일대일 레슨에선 일어나기도 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아이들 레슨에서 생기지 않는 일이 성인 레슨에선 일어나고, 성인 레슨에서 생기지 않는 일이 아이들 레슨에서는 일어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하고 즐겁게 레슨을 하다가도 갑자기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못한다고 떼를 쓰기도 한다. 아이마다 상황마다 그 이유는 수십 가지도 넘는다. 그래서 힘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초등학교 2학년 친구와의 레슨 날이었다. 평상시와 달리 레슨을 하다 말고 힘이 빠진 모습을 보이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것이다.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모른다,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집중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악기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레슨을 겨우 끝나고 난 후 아이 엄마에게 오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레슨 전에 독감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나에게 말을 한다는 걸 깜박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상황만 알았다면 해결될 간단한 상황이었는데라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 시간을 견뎠을 아이가 안쓰러웠다.

성인이었다면 오늘 사정이 있어 못한다고 얘기하거나 이런 상황을 대비해 다른 날로 레슨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이 친구는 주사 때문에 자신의 컨디션에 변화가 생기고 갑자기 알 수 없는 피로함이 생긴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이 말대로 모르는 상황이 맞았던 것이다.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시간을 견뎌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룹 레슨인 경우는 개인 레슨과 달리 각 반의 구성원들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반의 구성원이 어떠냐에 따라 매 수업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긍정적이고 활발한 분들이 많아 작은 이야기에도 웃으며 반응해 주는 반, 올 때마다 작은 간식이라도 싸 가지고 와 담소도 나누며 언니 동생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는 반, 그날의 수다길이에 따라 진도가 달라지는 반이 있는가 하면 간단한 목례만 건네고 내가 앉는 자리가 곧 지정석이 되어 다른 사람이 앉으려 하면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반, 오자마자 연습만 하는 분위기가 되어 다른 분들과 말 섞기도 쉽지 않은 반, 수업 중 딱딱한 분위기를 완화하고자 농담을 건네면 왜 진도는 안 나가고 저러지 라는 눈빛을 보내는 반 등 구성원이 어떠냐에 따라 수업 분위기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다.  


개인 레슨에서는 새로운 곡이 주어지면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곡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룹 레슨에서는 곡이 주어지면 수십 개의 반응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어렵다, 쉽다, 지난번과 난이도가 너무 다르다, 손가락이 너무 꼬일 것 같다, 힘들어 보인다, 나는 못한다 등 다양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디 그뿐이랴. 같이 시작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생기는 개인차로 인해 서로 간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견제들이 오고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손이 좀 돌아가는 분들은 곡을 받자마자 줄을 튕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비 없이 그 소리를 듣는 분들은 자신도 모르는 견제감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니어 그룹 레슨에서 생긴 일이었다. 이 분은 유난히 출석률이 저조한 분이셨는데 매번 미안하다 말하며 자신의 다양한 사정을 문자와 전화 심지어  레슨에 와서도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일일이 나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였다. 수업에 올 시간도,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 진도를 빨리 나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그 분과 다른 분들과의 실력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자신은 이런 식으로 진도가 나가면 따라가기 힘드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 억지를 부렸다. 급기야 수업 중 나에게 소리까지 치는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어찌어찌하여 그 수업은 마무리되었지만 그 이후 그분을 볼 수 없었다.

어찌 배움에 있어 즐겁고 재미있기만 하겠는가. 자신이 아프면서도 왜 그런지 몰라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킨 아이와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남 탓을 하며 끝까지 회피해 버린 그분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만나게 될 때 인정할 수 있는 솔직함이야 말로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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