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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l 05. 2022

맛집을 오면 부모님이 생각나

제주도 일식당 '아리'


이 글은 절교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30대 후반의 두 친구가 함께 다녀온 제주여행 이야기를 엮은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이전 글 보기>

1. 절교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오다

2. 제주도에서 알게 된 맛집의 의미

3. 결혼은 관계의 무덤인가

4. 너는 이제부터 테레사00이야




와. 간밤에 비가 어찌나 세차게 내렸는지 정말 하늘이 뚫렸다고 생각이 들만큼 새벽에 퍼붓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 여행은 주구장창 비만 맞다 가겠구나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흐리긴 했지만 하늘이 개어 있었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아무리 꾸물거려도 7시엔 일어나게 되어서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


호텔 앞바다는 없었지만 아기자기하게 산책로가 꾸며져 있었다.




좋은 곳을 보니 우리 남편이 너무 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내 남자, 외국에서 좋아하는 한식도 잘 못 먹고 마음고생 중일 텐데.

곳곳에 잘 관리된 잔디를 보니 우리 강아지도 생각났다.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잔디라면 환장을 해서 잔디 위에서 등 비비고 지렁이 댄스를 신나게 출 텐데.

고급스러운 조경과 호텔 시설을 보니 부모님 생각도 참 절실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에 있는 거지. 고생한 우리 부모님 좋은 것 누리게 해 드리는 것.




산책로엔 중간중간 쉴 수 있게 벤치도 많아서 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싶었는데 간밤에 쏟아진 빗물이 나무의자를 모두 적셔놓아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산책로를 다 도는데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았지만, 아기자기하게 참 예뻤다.


빗물로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 청정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호텔로 돌아와 친구가 강추하는 일식당으로 아점을 하러 나섰다.






초밥을 좋아하는 편인 나는 유명한 일식당에서 초밥을 꽤 먹어봤었다. 큰 기대 없이 친구와 간 그곳은 유명한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곳-아파트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식당이지만 손님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공간 대비 일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역시 이곳도 '찐 맛집'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는 이곳의 단골인지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고 그녀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빠르게 3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초밥은 회만 맛있으면 되고, 우동이 거기서 거기고, 텐동은 튀김만 맛있으면 되는 거지'라는 내 생각이 참으로 안일하였다는 반성을 빠르게 하게 만든 식당 '아리'의 요리들.





유명한 초밥집의 초밥도 많이 먹어본 내가 먹어도 단연 맛있는 아리의 초밥. 회는 잘 숙성하여서 몇 번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게 하였는데 이 초밥의 킥은 밥이다. 평소 초밥을 먹을 때 밥은 곁들이는 장식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회와 잘 어울리도록 약간은 단맛의 간을 한 것이 더 초밥의 맛을 돋워 주는 느낌이었다. 또한 요즘 유명한 초밥집의 초밥의 회는 너무 크거나 길게 뜨는 경향이 있는데, 이 집의 초밥은 회도 밥도 아주 적당한 양으로 만들어서 나중에 배불러서 회만 먹고 밥을 남기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였다.




정말 조금의 기대도 없이 먹었다가 펀치를 맞은 것 같았던 아리의 우동. 우동면발이 우묵채처럼 투명한데 정말 쫄깃했다. 친구가 면발에 대해 사장님께 물어보니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온 면발이라고 하는데, 서울에는 롯데호텔 일식당에서만 취급한다고 했다. 뭔가 고수들만 아는 식재료 느낌이랄까? 우동에는 구운 버섯도 함께 올라가 있는데, 국물에 한꺼번에 채소를 때려 넣는 대신에 요리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몇 번의 과정을 거쳐 요리하여 만들어진 우동 국물은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감당했던 텐동. 평소 일식집의 텐동은 그 튀김을 얼마나 바삭하게 튀겼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의 텐동은 보통 일식집과는 달리 장어튀김이 바삭하게 튀겨져 올라간다. 장어를 좋아하는 나는 뜻밖의 장어 등장에 아주 반색했다. 그러나 진짜 감동은 장어 밑에 있었다.

나는 튀김 말고 밥에는 기대가 없었는데, 텐동 밑에 깔린 밥은 대체로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과 쪽파 정도만 있을 뿐 별다른 맛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텐동은 튀김도 훌륭하지만 진짜배기는 바로 밥이다. 밥에는 익힌 오징어, 계란을 비롯해 과하지 않을 만큼의 재료들과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특유의 양념이 배어서 밥만 먹어도 정말 맛있다. 이렇게 감동해 마지않았는데 먹느라 흥분해서 사진을 못 남겼다.



나는 정말 아리의 모든 음식들을 와인처럼 입 안에 머금고 씹으며 음미하며 즐겼다. 맛있는 것을 먹으니 자연스레 남편과 부모님, 시부모님이 생각났다. 친구는 벌써 몇 차례 이곳을 부모님과 와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얘기는 자연스레 엄마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 : 엄마가 애들 돌봐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시겠다.
친구 : 그렇지. 다른 사람한테 애 맡기는 건 나도 못 미덥긴 하지만, 우리 엄마도 싫어해.
나 : 자기 손주니까 체력이 있으면 직접 보고 싶으신 거지.
친구 : 응. 그래서 나는 감사한데 뭐 해드릴 게 없으니까 용돈을 넉넉히 드리거든. 그런데 금전이 오가다 보니까 뭔가 예전만큼 관계가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야.
나 : 엄마도 너도 서로 눈치 보게 되는?
친구 : 좀 그런 게 있어. 우리 언니 같은 경우는 엄마랑 진짜 친하거든. 맨날 통화하고 서로 정말 대화도 잘 통한달까? 그런데 나는 막 그렇게 싹싹하게 못 하는 성격인데 심지어 우리 애를 봐주고 계신 거잖아. 그러니까 편하게 좀 내 의견 말하고 그럴 수 있는 것도 매끄럽게 소통이 어려워. 엄마가 딸이 돈 준다고 생색낸다 그럴 수도 있잖아.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나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을 받으시니까 참는 게 있으실 거고.
나 : 서로 정서적으로 친밀하면 돈이 오가는 사이여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 쉽지 않지. 나도 엄마랑 잘 맞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내가 엄마 말에 반대 의견을 얘기하면 엄마는 그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셔서 본인이 거부당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화를 내시거나 서운하다고 우시기도해. 차분하게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게 우리 부모님 사이에서도 못 봤지만, 엄마와 나 사이에서도 안 됐어. 결혼하고 나서부터 용기 내서 내가 얘기하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엄마가 엄청 격분하고 막 서운해하셔서 이모들한테까지 딸 욕을 하고 그랬거든. 본인의 감정에 대해 공감받고 싶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예전보다는 엄마랑 대화하는 게 좀 편해졌어. 그런 단계가 좀 필요한 것 같아.




엄마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나뿐만 아니었다는 것에 위안을 얻게 됐다. 세상 사람들은 얘기한다. 딸 하나 가진 부모가 아들 열보다 낫다고. 딸을 가져야 나중에 비행기 탄다고. 딸은 엄마와 둘도 없는 친구라고. 우리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하며 그런데 우리 딸은 왜 그러냐고 나에게 반문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모든 관계는 상대적인 거야.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그리고 우리의 친밀하지 못한 관계의 원인은 엄마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엄마의 마음의 빗장이 열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랑이 참 메마르고 인정 없는 애라서, 엄마가 무지외반증 수술 후 병원에 한 달을 입원해 있을 때도,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엄마를 문안 갔다. 그때 엄마는 발을 수술함으로 인해 거동이 힘들어서 살림도 쉴 겸 병원에 있었던 거라서 실제로 정말 몸이 많이 아픈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면 너무 핑계다.

나는 병원에 오래 있을 엄마가 얼마나 답답할까, 뭘 드시고 싶을까, 무엇이 걱정될까를 제대로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그저 빈 손으로 가기 뭐하니까 뭘 좀 사 가는 것조차 귀찮아했었다.


그러다 결혼 후 정 많고 사랑 많은 남편이 가족들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옆에서 보고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못된 딸이었는지를.


엄마에게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솔직히 시인하고 엄마에 대한 그간의 나의 생각도 얘기하니 우리는 비로소 그때서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어차피 사람은 안 변해. 엄마도 나도 조금은 차갑고 쌀쌀맞은 성향이 있잖아. 그냥 그거 인정하고 서로 노력하며 사는 거지."


그 무엇보다도 미묘하다는 모녀관계에 해답이 있을까? 다른 인간관계와 결국은 똑같다. 그날 내가 먹은 아리의 요리들처럼, 급하지 않게 서서히 노력을 들이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을 것. 돌이켜 나의 모습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



지난주에 얼굴은 보고 왔지만 그래도 오늘은 엄마한테 안부전화를 해야겠다. 얼굴만 봤을 뿐이지 진짜 대화를 한 기억이 없다. 이를 테면 '엄마 요즘은 힘든 것이 없는지, 고민은 없는지, 몸은 예전보다 어떤지.'


엄마 안의 빛을 바라봐 주자. 비행기는 자주 못 태워 드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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