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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지나 빛이 되는 시간, 새벽

혼자일 수 있는 자유가 주는 선물

by 제이린 Jayleen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먼 출퇴근 길을 준비하는 직장인, 새벽부터 근무 시간인 요가 강사, 미화원 등... 그러나 내가 동이 트기 전 새벽을 깨운 이유는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쓴 김유진 변호사와 비슷하다. 나는 그 잠잠한 공기 속에서 나를 만났다.


남편 없이 혼자 남겨진 시간, 삶이 맥을 못 추었다. 기독교인인 나는 새벽 고요함 속에서 찬양과 기도를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너의 아픈 마음을 이미 내가 다 알고 있어. 괜찮아.'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한동안 매일 눈물샘이 찰랑거렸다. 그렇게 얻은 위로는 나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어느 정도 마음에 근육이 붙기 시작하자, 나는 새벽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도 쓰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향이 좋은 차를 내리고, 뱃속이 뭉근하게 따뜻해지는 나른함을 느끼며 보고 싶었던 책이나 영화를 봤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그냥 그 시간 속에 존재했다.


현재의 순간을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미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그 순간을 소유했다.





갈급한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은 내가 다시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닐까 하는 망령에 빠지지 않게 해 주고,

최상의 기쁨은 정상이 아닌 험준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으며,

많은 것을 읽었으나 깊어지지 않았고 종종거리며 일했으나 허전한 하루를 살더라도

나뭇가지 하나 물고 돌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삶의 본질이 무언가 되새겨 보라고 일깨워 주었다.


'혼자 노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먼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끌어와 불안해할 때,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은 '현재'에 집중하는 일이라며

불확실성과 편안해지면 삶의 많은 길이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원래 어이없고 우연한 하찮은 일들이 삶을 이끌어가는 거라며

농담 같은 삶에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말라고 나를 다독여 주었다.




자기 위안과 '현재'의 향유를 거쳐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한동안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매일 울고 잘 안 먹어서 떨어진 체력 키우는 게 급선무였다. 무려 4달간 월경이 끊어져 있을 만큼 몸이 심각한 상태였다.


회사 근처 GYM에 6개월 만에 다시 등록해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에 운동을 하고 온 날은 오전 시간엔 그럭저럭 일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근육통과 함께 몸이 물먹은 솜처럼 쳐졌다. 카페인으로 연명하면서 체력이 올라오기를 버티며 주 2~3회 꾸준히 운동하다 보니, 운동을 하고 온 날이 오히려 업무의 능률을 올려주는 지경이 되기 시작했다. 몸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지고 체력에 자신감이 붙자, 조금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야근 후에 운동해도 무리 없을 정도까지 체력이 올라오자, 새벽시간을 자기 계발의 영역으로도 채웠다.


경제와 암호화폐에 대한 개념과 전망 등을 유튜브와 책을 거쳐 익히고 한국경제 신문을 구독했다.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리드에 형광펜을 그으며 신문을 요약 정리하며 재미와 성취감 모두를 맛보았다.


도대체 왜 트럼프가 관세를 가지고 저토록 난리인지, 그에 따라 주가는 코로나처럼 심각한 침체국면도 아니면서 몇일만에 20%가 넘게 하락하는지, 그럴 때 나는 뭘 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지식을 손에 뻗어 잡고자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경제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세상이 조금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이제, 나를 설명할 말들을 찾아 글을 쓴다.

거뭇한 어둠 속에 파랗게 스며드는 새벽빛을 응시하며 나를 이해할 언어를 갖기 시작했다.

왜 나여야만 했는지, 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나를 타자처럼 바라보고

내가 남편이라면 어땠을지 그 상황 속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글을 쓰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내 마음을 대변해 줄 적확한 단어를 찾자 비로소 나에 대해 진심으로 연민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에 이름이 붙자, 내가 느끼는 복잡한 마음에 이유를 부여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픔으로 무력감에만 머물러 있던 마음이, 분노를 지나 이제 포용의 단계에 와 있는 듯하다.


심장이 느리게 뛰는 평안감 속에 오늘 새벽에도 글을 썼다. 밤새 내린 비 덕분에 시원해진 바람이 창을 넘실댄다. 오늘 하루, 나를 이미 만났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을 깨우는 첫 한 달은 입 안을 온통 하얗게 헐게 하고, 점심시간이면 수면실로 달려가게 하는 대가가 있었지만 방황하던 내 마음에 길을 찾아주어 고독이 인생의 좋은 친구임을 알게 해 주었다.


배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무게가 필요하듯, 오늘의 고난으로 인해 삶의 깊어짐을 알아간다.


삶은 원래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오늘도 새벽공기를 마시며 현재에 집중해 본다.

고요한 시간, 혼자일 수 있는 자유를 만난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나를 세운다.



세상은 본래 네 편이 아니다.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편일 뿐이다. 네가 흐르는 물을 손에 움켜잡고 그것을 네 것이라 했는지 모른다. 실망한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라. 거기서 절망을 만나 절망과 악수하고 절망과 밥 먹고 절망과 마을을 이루어라. 그 마을에 정착하거든 나뭇잎에 편지 몇 줄 써서 보내다오. 그대가 쓸 편지의 첫 문장을 한평생 기다리겠다.

<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도종오) 중 >


https://youtu.be/LT7NK7dPeGw?si=JEomOPojaQ3N6_xb

새벽에 즐겨 듣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슬픈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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