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무기
혼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시간이란, 누구와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흐른다는 걸.
특별한 약속이 없는 주말에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한탄하던 나는 이제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칼퇴를 한 날이나 약속 없는 주말엔 혼자라는 현실자각으로 기분이 폭 가라앉았다. 영화 속 임신으로 둥근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배우를 보며 갑자기 울컥하기도 하고, 집 근처를 산책할 때면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부부를 보며 '완성된 행복은 저런 걸까'라며 씁쓸하기도 했다.
하루를 촘촘히 살기 위해 루틴 설계를 하더라도 기분이 하향곡선을 그릴 때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그런 내 모습에 자괴감에 빠지는 날들이 오곤 했다.
스스로를 '청승맞음'으로 바라보는 프레임을 벗길 필요가 있었다.
유쾌한 날들로 인생을 채워가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하는데, 문득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이 든다니, 고독은 어쩌면 유익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내가 인식하는 '나'라는 모습이 정말 맞는 건지 공인된 의견을 듣고 싶었다.
제대로 된 성격검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떠올리고 숨고에서 성격검사와 온라인 상담을 결제했다. TCI 성격검사는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 성격을 분석해 주는 검사인데, 검사결과 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 타인과 깊이 연결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유형이었다.
요약하자면, 겁 없고 끈기 있는 괜찮은 인간.
상담사는 위험회피가 3%인 것에 부연설명을 달았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하고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나, 과도하게 낙관적이고 대담한 기질로 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결혼식 치를 비용도 없는 시댁을 크게 개의치 않고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한 것, 남편의 수입이 거의 없거나 일정치 않았던 긴 시기도 불평 않고 지낸 것, 남편이 고소를 당한 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도 그를 탓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다그치며 자기 계발에 몰두했던 것 모두 나의 기질이 한몫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험을 끌어안는 데 주저함이 없으면서 강한 인내력을 가진 나는 남편 같은 사람이 선택하기 가장 좋은 배우자 상이었다. 위험이 감지되면 피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현명함'인데 나는 무모함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그럴 수 있다'며 모든 문제를 끌어안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까지 사랑했어'라며 쿨하고 멋진 걸로 포장하면서.
다소 조심할 부분이 있긴 했지만, 상담사는 내가 다양한 사람을 포용할 줄 알고 내가 인식하는 나와 실제 내 모습이 거의 일치하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분석결과를 들으니 막막하게 느껴졌던 인생이 손에 잡히는 듯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인생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먹기에 따라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이대로 내 박복한 운명을 탓하면서 주저앉아 주말에 넷플릭스나 보면서 남탓하다 죽을 것인가, 내 고독을 무기 삼아 인생의 다른 챕터로 나아갈 것인가는 온전히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나는 우선 고독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고독이라는 무기'라는 책에서는 고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점을 알려준다.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오히려 더 충실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외근이나 귀갓길에도 특별히 급한 일이 없으면, 가끔 서점에 들러 책 구경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사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읽는다. 마음에 와닿는 영화 카피를 발견했다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한 편 본다. 만약 길을 잘못 들어 낯선 곳에 들어섰더라도 급하게 돌아갈 생각을 접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낯선 장소에서 재미를 찾는다.
여기서부터 고독과 친해지기 일지다.
금요일 칼퇴를 할 때면 영화관에서 혼자 스펙터클한 액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대전 출장을 갔을 땐 후배들에게 추천받은 '성심당 케이크부띠끄'에 굳이 들러 순수롤과 망고롤을 사 오기도 했다.
청명한 해가 가득한 토요일 낮에 커튼을 활짝 열어 산의 초록이 진해져 가는 풍경을 감상했다. 스피커 볼륨을 크게 높여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취한 채 얼려두었던 순수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주말이 주말다워졌다.
좋아하지만 한 번도 직접 만들어볼 생각을 못 했던 파스타도 자주 만들어 먹게 되었다. 알리오올리오에서 더 나아가 땅콩버터를 활용한 파스타를 토요일 아점으로 해 먹었는데, 내가 만들고도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칼퇴 후 간단히 파스타와 화이트와인을 함께 하면 종종거리며 일했던 하루가 보상받는 충만함이 있었다.
머리를 하느라 두 달에 한 번 가로수길을 가는데, 어떤 날은 막아둔 도로 위에서 세계음식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머리만 하고 그냥 왔겠지만, 발레주차 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이곳저곳 돌아보며 세상을 탐색하고 내 취향을 알아갔다. 이탈리아 음식문화관에서 질 좋은 올리브유를 놓친 게, 뼈아픈 실수였다. 헤어진 남편만큼 자주 떠오른다.
혼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터득하게 되면서 내 안에 싹이 자라나는 '정서적 연결감'도 채워보기로 마음먹고, 안 가 봤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일이나 직장과 관계없는 인간관계 가운데 고독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리라 기대했다.
먼저, 가정집을 모임 장소로 내어주고 있는 영화평론가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가정집 한쪽 방을 작은 영화관으로 꾸며 두고, 해가 드는 응접실은 영화에 대한 리뷰를 나누는 사교 모임 장소가 되었다. 이 날 7-8명 남짓 함께 본 영화는 'After Yang(애프터 양)'이라는 영화였는데 영화평론가가 심사숙고해서 선정한 영화인만큼, 여운이 짙게 남는 내 취향의 영화였다. 관계가 변해가는 모습에 주목하고, 주고받는 말 한마디와 시선, 짧은 몸짓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남편이 사 둔 비싼 카메라도 사용법을 알아야 해서 3만 원의 그룹레슨비를 결제하고 서울 모처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20대로 아직 젊어 보이는 그는 사진을 전공했는데, 감도와 조리개값, 셔터스피드와 노출값의 조작을 통한 사진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기본 원리에 대해 이해한 나는 회사 우리 부서에서 주관하는 행사날에 내 카메라를 들고 가 행사의 단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모든 배움은 쓸모가 있었다.
혼자서는 도무지 더 늘지 않는 '러닝'도 함께 할 크루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우리 집 근처 토요일 아침 6시 러닝에 참가해 5:45' 페이스로 무려 7km를 함께 뛰었다. 집 근처를 혼자 뛸 때는 6:30' 페이스로 30분 정도만 뛰고 말았던 내가, 함께 하니 퀀텀 점프를 했다. '함께'의 마법.
지금 나에게 적합한 연결감과 적당한 거리감이 체득되기 시작했다.
'혼자'도 괜찮은 시간을 거치니 '함께'인 것이 부담이지 않은 선물 같은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진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내 강인함을 믿고, 자기 노출이 위험이 아니라 위로로 다가올 것임을 기대하며 친구를 만났다.
차마 얘기할 수 없었던 내 결혼생활 마지막 비극의 과정을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그 친구는 내 남편도 몇 번 본 사이였는데, 우리 부부를 항상 '닮고 싶은 부부'라고 칭했었다. 나에게 모든 가능성을 다 체크해 본 거냐며 오빠(나의 남편)가 그런 사람인 게 상상이 안 간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었다. 친구의 최대 관심사는 연애였기에 친구의 '썸'과 관련한 화제를 나와 자주 나누었는데, 갑자기 그간 내가 겪은 문제가 자신과 비교하면 안드로메다 핵폭탄급이라 민망해하기도 하며 함께 눈물 흘려주었다. 친하긴 했지만 늘 약간은 예의를 차리는 사이였던 우리는, 그날 이후 이제 마음이 내키는 때면 아무 때고 편하게 저녁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평소 지나치기 쉬운 것들, 어딘가에 내버려 둔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되찾고 그간 잃어버렸던 나에 대한 조각을 하나씩 맞추는 느낌이 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함의 정체, 매일 반복되는 허무한 일상, 언제나 무리하는 내 모습을 내려두고 '혼자'여서 누릴 수 있는 고독 가운데 낯선 나를 만나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낯섦과 익숙함, 권태와 탐색의 중의성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변주가 즐거워지고 있다.
무엇이든 즉시 결정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두고, 모호한 현재의 상태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려고 한다.
다만 내 삶을 이제 미루지 않고 고독이 이끄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혼자지만, '괜찮은 나'와 함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