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하루
홀로 맞이하는 새벽은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알람을 듣고 일어날 때, 남편과 살 때처럼 버겁지 않다.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하루가 시작되니까.
새벽 5-6시,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협탁에 할로겐 조명을 켠다.
양치 후 거실에 나와 미지근한 물에 영양제를 먹은 후 잔잔한 음악을 켠다.
성경 말씀 2-3장을 읽고,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신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올린다.
사과와 땅콩버터를 챙겨 붉은빛의 원목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핸드폰의 메모를 훑어보며 그간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곱씹어 본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냉장고와 인덕션 사이를 오가며 빠르게 점심 도시락을 싼다.
두부, 오이, 참치통조림, 양파, 구운 새우가 들어간 포케 정도로 오후가 부담스럽지 않은 가벼운 식단으로.
나이 때문인지 점심에 '밥' 종류를 많이 먹으면 오후에 소화가 안 되기 시작했다.
좀... 슬프네.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기분에 따라 음악을 고른다.
릴렉스가 필요한 날이면 장필순이나 Hoobastank, 저녁까지 텐션이 좋은 날이면 Coldplay나 DAY6.
인생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는데, 거실 분위기라도 내 보자.
알리오올리오 같은 오일파스타나 에그 프레타타 같은 포만감 있는 요리로 저녁을 준비한다.
열심히 일한 하루가 보상될 만큼 맛있는 요리를 하려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선생님 필수.
좀 만들다 다시 레시피를 보는데 화면이 자꾸 꺼져 터치하다가 핸드폰 화면이 기름 범벅 되기 일쑤.
요알못인 나에겐 핸드폰 거치대도 필수.
검증된 레시피로 만든 요리는 늘 옳다.
'난 뭘 해도 잘한다'며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인물사진 모드로 요리조리 음식 사진을 열심히 찍고,
화이트와인을 곁들여 천천히 밥을 먹는다.
남편과 식사할 때는 '음미'란 없었는데.
거의 마시다시피 먹는 남편과는 '배고픔을 없애는 것'이 식사의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오롯이 음식에 집중하며 서서히 차오르는 포만감을 느낀다.
이 순간만은 내가 왕인 것 같은 만족감 가운데.
요즘 밥친구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얼마 전까지는 ‘하트페어링'.
생각해 보니 모두 대리만족 프로그램이네.
내가 가 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고, 하지 못하는 연애에 대해 설레고 싶어서 봤구만.
배가 불러오니, 회사에서 좀 짜증 나게 했던 그 인간까지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보살의 여유가 생긴다.
역시 마음이 넉넉하려면 뭘 먹이고 봐야 해.
느긋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를 펼쳐 ‘밀리의 서재‘를 켠다.
예전엔 자기 계발 서적에 몰두하고 나를 채찍질하며 다그치기 바빴는데,
요즘은 마음의 중심을 찾는 책이나 소설도 잘 읽힌다.
‘새의 선물‘, ‘레슨 인 케미스트리‘, ‘스토너’가 내 마음에 정서 한 토막씩을 남겼다.
세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독하고, 주류의 삶에서 조금은 비껴 나 있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삶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며 내면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이들에게 나는 가끔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선영('새의 선물'의 주인공)이라면 낯선 감정이 들 때마다 자기 자신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낯설게 보며 객관화하는 지혜를 발휘해 보라고 했겠지.
조트('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주인공)라면, 이혼을 앞둔 내 상황을 두고 '별 거 아니야'라며 타인의 기대를 내려놓고 나답게 살라고 말해줬겠지.
생각만 해도 짠한... 스토너('스토너'의 주인공)라면 조용하지만 굳건한 삶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며 지금처럼 정직하게 살라고 해줬겠지.
자기 전에 약간 뭔가 부족할 때면 투게더 아이스크림에 위스키나 와인을 적셔 하루를 마무리한다.
얼마 전 지인이 알려준 방법인데, 부드럽고 의외로 잘 어울린다.
누가 선물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BLACK NIKKA’이란 위스키를 찬장에서 발견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다.
'위스키 마시는 나'는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뭐 술뿐인가.
내 인생 자체가 지금 내 계획과 상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데 뭐가 중요한가 싶다.
어쩌면 지금은 위스키처럼 씁쓸한 날들 가운데, 나만의 투게더를 만들어 버무리는 과정 같기도 하고.
담당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는 이혼소송 1차 기일이었다.
남편 측 변호사는 '고소 사실을 대부분 인정할 테니 다음 기일에 바로 조정하자'라고 한다고 전했다.
감정싸움이라 통상 1년이 걸린다는 이혼과정이 짧으면 3개월 만에 끝나게 생겼다.
헷갈리네. 기분이 좋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와중에 생각보다 비싼 변호사를 선임한 게 아까워지는 속물적인 나.
부동산 시장도 아직 주춤한데 집값 많이 못 받겠네...
축하해 달라고 친한 친구들 단톡방에 이 사실을 남겼더니, 내 친구들도 갸우뚱.
"축하할... 일인거지..?"
한 잔 했는데도 잠이 안 오면 '캠핑' '바다' '새소리' ASMR을 틀고 잠을 청해 본다.
뭔가 마음이 한 계단 밑으로 고요해지는 평온함이 잔잔히 스며드는 가운데에서도 온갖 잡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 생각, 생각들.
철학자 에크하르트 톨레는 내 생각과 느낌이 궁극적으로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했다.
생각과 자아를 구분하라는 것인데...
과거와 미래에 내 생각이 붙잡히지 않는다면, 어떠한 후회나 두려움도 없을 텐데.
판타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시간여행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예뻤던 30대를 다시 되돌려서 못했던 거 다 해보고 그놈도 안 만나고 살 텐데.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어디서 놈팡이를 주워 와서 결혼을 했니.
그게 뭐가 중요한가. 망상에 빠지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쇼펜하우어 선생님이 죄의식과 고뇌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본질 이랬으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
불행은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라고 했다.
인생이 아닌 오늘에 집중해 본다.
오늘, 매력적인 일을 하나라도 했는가?
한 사람에게라도 번지는 미소를 선물했는가?
누군가에게 난 좋은 사람이었나?
오늘 썼던 사회적 가면은 어제의 나보다 덜 무겁긴 했나?
아침에 기도한 대로 살지 못한 하루가 대부분이다.
원래 그렇지, 인간의 본성이 지가 제일 잘났으니까.
그래도 뭐 괜찮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을 거니까.
오늘이 아닌, 현재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 날숨과 들숨에 집중해 보며 잠을 청해 본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두려움이 오늘 자고 나면 모두 사라지길 바라보면서.
쌍큼한 아침이 찾아올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