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위한 식단 실험기, 건강하게 스위치온!
인생에 손꼽는 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인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고등학교 때 친구 A는 맛있는 것 먹는 재미로 산다는데, 그녀와 함께 한 제주여행에서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행지가 중심이 아닌, 가고 싶은 음식점을 위주로 짜여진 동선.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을 눈과 코, 입으로 함께 즐길 때의 오감의 즐거움.
음식에 만족할 때 행복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보다 풍성해지는 대화 주제.
만족스런 음식은 마법과 같았다.
음식은 '맛'을 느끼기 위한 재료이기도 하지만, 우리 몸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내 직장 후배들 중 상당수는 소위 '식단'이란 걸 하고 있는데 하루에 섭취할 영양소를 따져가며 먹는 것이다. 과자 하나를 고르더라도 뒷면의 성분 분석표를 꼼꼼히 읽는다. 당과 탄수화물, 단백질 함량이 적절한지. 조금 비싸더라도 저당 아이크스림인 '생귤탱귤'을 고르고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맛있고 탄수화물이 낮은 단백질 쉐이크를 찾는다. 원하는 재료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이런 그녀들이 약간은 극성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어느날 놀러간 친구 집에서 그의 남편의 변화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몇 달 사이 초고도비만이던 친구의 남편이 눈에 띄게 건강해진 것이 보기만 해도 느껴졌다. 살도 많이 빠지고, 무엇보다 얼굴이 뽀얘지고 반질반질 광택이 났다. 뭔가 눈동자 흰자마저 맑아진 느낌이랄까.
살이 너무 많이 올라 건강까지 위협받던 친구의 남편은 ‘스위치온 다이어트‘라는 것을 한 달 동안 하고 건강한 식단을 하며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눈 앞에서 산 증인을 보니 그 다이어트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스위치온 다이어트란 4주간의 식단 실천을 통해 몸의 대사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요약하자면 탄수화물을 최소화하고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 함량을 늘려서 근육량은 유지하면서 체지방만 효율적으로 빼는 프로그램이다.
친구 남편은 한 달 식단을 마치고 일반식으로 전환을 했는데도 체질이 바뀌어서 계속 살이 빠지고 있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 식단 프로그램의 산 증인을 만나니 나의 추진력에 불이 켜졌다. 친구집 거실에서 쿠팡으로 바로 박용우 박사의 책을 사고, 친구로부터 관련 레시피북을 선물 받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결론을 먼저 공유하자면, 뭐든 정해진 룰대로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9월 초 한 달간의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 식단기간 : 2025. 8. 9. ~ 2025. 9. 8.
- 골격근량 : +1.4kg (24.5 -> 25.9)
- 체지방량 : -4.3kg (11.6 -> 7.3)
- 체지방률 : -7.1% (20.5 -> 13.4)
식단 첫 주에 허리를 다쳐서 한 달간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 없어 아파트 단지 걸어다니는 게 다였는데 오히려 근육이 늘고 체지방만 빠지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먹는 게 얼마나 몸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체감한지라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처럼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했다.
먼저, 요리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채소가 절반 이상, 양질의 단백질과 건강한 탄수화물(현미밥 등)로 구성된 식단은 시중에 포케나 샐러드 말고는 찾기 어렵다. 그마저도 내가 원하는 양의 단백질을 얻으려면 고기를 추가해야 해서 이렇게 배달이라도 시켜먹으려면 풀때기로 구성된 밥 한 끼에 만칠천원의 거금을 주게 된다.
게다가 매번 이렇게 먹으면 질리게 되서 결국 내가 질리지 않을 밥상으로 요리를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내가 요리를 잘하는 것 아닌가?
레시피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따라하는데 맛 없으면 이미 그 레시피는 실패겠지만.
맛있게 먹었는데 속이 너무 편안했다. 흰쌀밥이나 밀가루, MSG 가득한 외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나면, 오후엔 으례 속이 더부룩하고 기분 나쁜 노곤함이 몰려왔었다. 식단을 바꾸고 나니, 점심을 먹고 나서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소화가 잘 되었다. 곧 40대에 들어서니 소화가 안 되나 싶어 다소 우울하던 나에게 위로를 주는 식단 아닌가.
그리고, 친구A처럼 맛있는거 찾아다니는 삶으로 라이프스타일 체인징.
평소엔 내가 만든 건강한 식단으로 잘 챙겨먹지만 한 번씩 속세의 음식이 당길 때면, '이왕 내 몸에 건강하지 않은 것을 넣을 거라면 정말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생겼다. 회사 행사에 케이터링으로 부른 쿠키엔 손도 대지 않고 퇴근 후에 내가 찾아놓은 베이커리에 가서 타르트를 사는 식이다.
절제가 생김으로 인해 한 번의 누림이 더욱 값지고 풍성해졌다.
식단을 끝낸 후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수많은 드립커피 맛집과 베이커리를 섭렵했다. 새로운 취미가 하나 더 생긴 격이랄까.
세상엔 진짜 맛있는게 많다.
이제껏 이 재미를 모르고 산 게 아쉬울 만큼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강한 식단을 하고 매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니 삶이 조금 더 윤택해졌다.
혼자 살다 보니 저녁은 늘 배를 채우는 용도였다.
냉동식품과 치킨 배달, 그리고 뒤따르는 죄책감.
이제는 나를 위해 차린 식탁 앞에서, 나는 나의 VIP가 된다.
토요일 오전에 느긋하게 일어나 가을 내음 맡으며 아침 조깅을 마친 후, 닭다리살과 대파를 노릇하게 구워 덮밥을 만들어 먹으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게 된다. 유명 커피집에서 사 놓았던 '에그타르트'를 커피와 함께 음미하며 식사를 마무리하면 온 세상에 부러울 게 없게 된다.
만족감을 채워가는 인생이라는 게, 자족하는 삶이라는 게 지금 현재 상태에서 더욱 감사할 것을 찾아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조금 더 삶에 변주를 주며 재미를 찾아보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올 여름을 지나며 할 말을 더 갖게 된 내가 기특하다.
나에게 행복한 순간을 만드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되어 뿌듯하다.
이제... 다시 체지방이 올라오지 않게 관리할 일만 남았다.
천고마비의 계절 숙명같은 숙제를 잘 마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