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귤 값을 올리자

2020.11.25

by 공씨아저씨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감귤의 적정 가격은?


가게문 열고 처음 판매한 과일이 감귤입니다. 당시에는 1-2년 후에는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


IMG_0392.jpg


올해처럼 감귤로 오랜 시간 고민한 적은 없었습니다. 10년째 감귤을 팔면서 줄곧 고민이 되는 지점은 감귤 10kg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나아가 (친환경) 유기농 감귤 10kg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에 대한 부분.


고민의 요지는 너무 싸기 때문이다. 너무 흔해서일까?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제가 판매하는 과일 중에 kg당 단가로 계산했을 때 감귤보다 더 싼 과일은 없습니다. 유기농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1천 원 올리는 게 힘든 과일이 또 감귤입니다.


내가 농민이고 감귤 농사만 지어서 일 년을 먹고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노답. 물론 재배 면적이 넓은 대농들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소농들이 감귤 농사만 지어서는 도저히 먹고살 수 없는 계산입니다. 특히 친환경 감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더더욱.


아이러니하게 친환경 감귤의 가격을 너무 낮게 형성해놓은 것 또한 농민입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직거래가 활성화되어있던 품목이 감귤이기 때문입니다.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감귤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저의 어떤 사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농민들의 수취 가격을 좀 안정적으로 끌어 올려놓고 보면 판매가에서 답이 안 나왔습니다. 결국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급가를 낮추는 방법 말고는 없는 상황.


올해는 생산지 농민에게 드리는 감귤 가격과 소비자가 가격도 조금 올려볼 생각이다. 이건 돈을 더 벌기 위함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병뚜껑쉽게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