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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Mar 30. 2022

상모솔새야~

2022. 3.30

오랜만입니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집 탐조인이 개학을 해서 주말을 제외하고는 같이 탐조를 다니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탐조인 따라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탐조인 아빠는 마니 심심합니다.


탐조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4개월 지났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새를 안 보니 뭔가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처럼 좀 허전합니다. 그래서 운동삼아 점심 먹고 사무실 근처 뒷산으로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숲이 있어서 운 좋으면 새도 좀 보겠다 싶었습니다.


탐조인 없이 혼자 새를 보러 간다는 게 영 어색합니다. '저 새 뭐야?' 물어보면 척척 답을 해주는 탐조인이 없으니 새를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사실 한 달치 탐조 기록을 이제야 올리는 것은 모두 상모솔새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처음 사무실 근처 뒷산으로 산책을 간 것은 3월 8일이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나무들을 만나는 것은 반갑습니다. 평일 낮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많지 않아 새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꼭 새를 보지 않더라도 산책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머리 위에 뭔가 작고 하얀 녀석이 요리 저리 움직이는데 처음 보는 녀석입니다. 너무 작아서 유관으로 잘 식별이 힘들고 아이폰 동영상 6배 줌(최대)으로 당겨야 구별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영상을 탐조인에게 깨똑으로 보냈는데 탐조인 반응이 별로입니다.


상모솔새(2022. 3.8)


겨울 철새로 알려진 상모솔새입니다. 우리 집 탐조인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새 중에 하나인데 올 겨울 만나지를 못했거든요. 본인이 보고 싶던 새인데 아빠만 본 것에 기분이 상하신 듯합니다. 10센티 정도 되는 작은 새로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가장 작은 새 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영상으로 보고 도감을 찾아보니 왜 그리 보고 싶어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너모 귀엽습니다.


여기는 오색딱따구리도 커플로 놀고 있네요. 아무 말 없이 서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달달구리라고 불러줘야 하겠습니다.

오색딱따구리(2022. 3. 8)


어랏 박새  마리가 나무 위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네요.

딱새(2022. 3. 8)


산책 첫날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여긴 큰 나무들이 많아서 새들이 주로 스카이캐슬에서 놀고 있습니다.


며칠 뒤 다시 왔습니다. 어머나 이게 머선 129? 또 만났네 또 만났어~~~ 오늘은 한눈에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상모솔새라는 것을... 머리의 노랑 깃이 뽀인뜨인데 너무 작고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녀석이라 아쉽게도 아이폰 디지럴 6배 줌으로는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반갑습니다. 오늘은 탐조인에게 상모솔새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싸해질게 불 보듯 뻔할 거거든요.


한 가지 찾아낸 특징은 침염수에서만 관측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상모솔새는 무리로 생활하는데 한 마리만 계속 보이는 것이 아마도 무리와 함께 이동을 하지 못하고 미조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탐조인을 한번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상모솔새(2022. 3.11)


오늘도 오색딱따구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오색딱따구리(2022. 3.11)




요즘은 3일에 한 번꼴로는 계속 이곳을 찾게 됩니다. 보통 점심 먹기 전 시간이나 점심 먹고 나서 오는데 오늘은 좀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섰습니다. 평소 탐조 경험상 새들은 아침 일찍이나 오전 시간에 주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잘 안 보이다가 저녁 무렵 원래 있던 둥지로 퇴근을 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그야말로 대박.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녀석이 나타나 주었습니다. 네.. 상모솔새입니다. 조그맣고 오동통한 본연의 자태를 온전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상을 탐조인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아빠는 속앓이를 합니다. 괜히 미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난 꼭 안 봐도 되는데....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탐조인 앞에 좀 나타나 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상모솔새(2022. 3.15)


네. 이제 드디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더 상모솔새를 목격했다는 사실을 탐조인에게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탐조인은 조금 망설였습니다. 막상 갔는데 못 보고 돌아오면 본인도 마음의 상처가 클 것 같다고요. 그러다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직박구리 무리가 머리 위에서 날아갔는데 제 머리에 똥을 찍~하고 싸고 가더군요. 새들은 날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똥을 싼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지요? 똥을 맞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상모솔새만 볼 수 있다면이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 신기한 게 말이죠.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면 만나는데 막상 작정하고 오니 또 없네요. 그래도 탐조인이 좋아하는 오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가 반겨줍니다.


오색딱따구리 ©평범한탐조인


청딱따구리(2022.3.20)


한참을 돌아다녀도 상모솔새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가지고 산을 내려옵니다. 입구에 거의 다 왔을 때 뜻하지 않은 반가운 손님이 눈앞에 딱 나타나 줍니다. 챔기름을 바른 듯이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이 뒷걸음치는 쇠딱따구리의 몸짓에 감탄을 합니다.


쇠딱따구리(2022. 3.20)



상모솔새는 원래 갈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태연하게 돌아오는 탐조인의 모습에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열흘 넘는 시간 동안 제 마음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거든요.


며칠 뒤 출근길.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립니다. 상모솔새는 울음소리가 굉장히 특이하기 때문에 딱 표가 나거든요.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오 마이 갓~~ 상모솔새입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처음 목격합니다. 아... 탐조인은 지금 수업 중이라 전화해서 나오라고 할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답니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선명하게 목격을 하였습니다. 우리 단지 안에도 상모솔새가 살고 있다는 반가움과 동시에 탐조인이 봐야 되는데 하며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상모솔새(2022. 3.22)



탐조인한테는 오늘도 상모솔새를 봤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틀 뒤 다시 출근... 계단을 내려가는데 눈앞에 보이는 나무에서 뭔가 움직입니다. 설마... 설마가 상모솔새 잡았습니다. 또 상모솔새입니다. 그래도 이틀 걸러 목격됐다는 사실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잘하면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상모솔새(2022. 3.24)


탐조인에게 2차 자백을 했습니다. 이번 주 주말에는 아파트 단지를 샅샅이 뒤져보자고요. 탐조인도 뭔가 희망이 생긴 듯합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탐조인이 저를 깨웁니다. 눈빛만 봐도 우리는 압니다. 바로 나가자는 이야기죠. 일전에 상모솔새를 목격했던 장소부터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주말이라 상모솔새도 휴무인지 오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날씨도 흐려서 새들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곧 비가 올 날씨라 박새만 몇 마리 관찰하고 왔습니다.


박새(2022. 3.26)©평범한탐조인


다음날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동네를 쥐 잡듯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상모솔새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뜻하지 않게 어치를 목격했습니다. 단지 안에서 어치를 관찰한 건 처음입니다. 산에 먹이가 없어서 그런지 아파트 단지까지 내려왔나 봅니다.


어치(2022. 3.27) ©평범한탐조인



어치(2022. 3.27)



어치 덕분에 그래도 탐조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인데도 탐조인이 열심히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은 단지 내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관찰해서 그런지 탐조인이 촬영한 새들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탐조인의 사진에는 특유의 갬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새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서 일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참새 / 직박구리 / 박새 ©평범한탐조인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실 뒷산에 올랐습니다. 평소에 늘 보던 녀석들이지만 오늘은 왠지 저에게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못 보았던 딱새도 오늘은 산 정상에서 관측을 했습니다.


쇠딱따구리는 오늘도 먹이를 찾아서 열일을 하고 있고,

쇠딱따구리(2022. 3.28)


서서히 꽃이 피기 시작하는 날씨 탓에 꽃을 좋아하는 직박구리는 꽃 주변으로 몰려듭니다.

직박구리(2022. 3.28)


계단을 올라가다 한참을 멈추어있었더니 박새가 제 바로 코앞까지 옵니다. 먹이가 있었으면 손바닥까지 왔을 분위기였습니다.

박새(2022. 3.28)


청딱따구리는 바닥으로 잘 내려오는 녀석인데 10분을 넘게 땅에서 먹이를 찾더니 나무를 타기 시작합니다.

청딱따구리(2022. 3.28)


청딱따구리(2022. 3.28)


넋 놓고 청딱따구리를 보고 있는데 눈앞에 뭔가 휙 날아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녀석인데 풀숲으로 잘 숨는 녀석이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녀석이라 쌍안경이 없으면 제대로 보기 힘든데 오늘은 운이 좋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목격을 했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2022. 3.28)


지난번 탐조인과 함께 청계천에서 처음 본 딱새인데 오늘 또 만났습니다. 이곳에서는 처음 목격했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새들도 유난히 저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날이었습니다.


늘 휴대폰 카메라로만 찍다 보니 화질이 좀 아쉽습니다. 특히 새들은 멀리서 관찰해야 하고 작은 녀석들이라 줌으로 당겨서 찍을 수밖에 없어서 늘 장비의 한계를 느낍니다. 매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죠. 내일은 탐조인 쌍안경을 좀 빌려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날 출근길에 탐조인 방에 들어가서 쌍안경을 찾는데 이런~~ 없습니다. 탐조인이 학교에 가지고 간 모양입니다. 정말 훌륭한 학생입니다. 언제 어디서 새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그 한순간을 위해 쌍안경을 늘 가지고 다니니 말입니다.


대략 난감이네요.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어제 본 딱새를 다시 만나면 좀 이쁘게 찍고 싶어 졌거든요.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출근을 했습니다. 카메라와 렌즈가 그리 좋은게 아니라 작고 움직이는 녀석들을 담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소싯적에 사진 좀 찍어봤지만 이런 녀석들은 정말 사진 찍기 어려운 녀석들입니다. 그래도 휴대폰 카메라보다는 화질이 훨씬 낫습니다.


귀염둥이 쇠박새가 입구에서 저를 반기네요. 사실 보기 힘든 특별한 새를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매일 보는 새들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저는 큰 새보다는 요렇게 작은 녀석들이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더라고요.


쇠박새(2022. 3.29)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새가 있다는 소리이지요. 동물들의 보호색이라는 게 참 대단한 게 얼핏 보면 새가 있는지 잘 확인이 안 되거든요. 혹시 붉은목지빠귀가 아닌가 싶었지만 노랑지빠귀인 듯합니다.

노랑지빠귀(2022. 3.2)



풀숲 사이로 몇 마리의 새들이 날아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임을 직감했습니다. 200미리 렌즈로 당겨도 뷰파인더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 녀석들입니다. 일단 무조건 셔터를 눌러댑니다. 한 장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요.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다 귀여운데 특히 검은색의 작고 땡그란 눈동자가 압권입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컴퓨터로 사진을 보니 그대로 녀석들이 이쁘게 나온 사진이 한두 장은 있네요...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해놔야겠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2022. 3.29)


하산길에 눈앞에 나타는 쇠딱따구리. 이상하게 여기 쇠딱따구리는 꼭 집에 가기 직전에 나타납니다. 바로 눈앞에서 나타난지라 셔터를 눌러보았습니다.



쇠딱따구리(2022. 3.29)



아빠가 찍은 사진을 탐조인에게 보내주니 화질 좋다고 아주 좋아하네요. 그리고 아주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집 앞에서 동박새를 봤다고 사진을 몇 장 보내주었습니다.


동박새 ©평범한 탐조인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니 새로운 새들이 찾아옵니다. 탐조인의 사진이 날로 훌륭해집니다. 아빠의 사진과는 다르게 사랑이 넘쳐흐릅니다.


결국 상모솔새는 탐조인에게 찾아오지 않았지만 동박새 덕분에 탐조인의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숨겨놓은 기록들을 오늘에서야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놓습니다.


오늘부터 저도 동박새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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