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작품의 경계

취향의 권력화, 미술 컬렉션의 경제학

by Jay

미술관 하얀 벽면에 덩그러니 놓인 사물 하나,

혹은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붓질 앞에 서면

당혹감이 밀려온다.

'이게 무슨 작품이야?'라는 말이 혀 끝을 맴돌다가도,

작품의 천문학적인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당혹감은 이내 경외심으로 변한다.

현대미술은 왜 이토록 난해하며,

난해함은 어떻게 거대한 자본의 흐름으로 치환되는가?


어느 시점에서나

그 시대의 미술은 현대미술이었으므로,

논의를 미술 시장 전체로 놓고 접근해 보자.




경제학적 관점에서 미술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이

극단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일반적인 재화는 원가와 노동력이라는

한계 비용(MC)에 기반해 가격이 형성되지만,

예술품의 가치는 전적으로

‘사회적 합의’와 ‘상징적 의미’에 의존한다.


대중이 작품의 질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

가격은 품질을 보증하는

유일한 신호(Signaling)가 된다.

지독하게 비싸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믿게 되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의 현장인 셈이다.

미술사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경제적 사례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다.

그는 생전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의미 있는 판매가

단 한 점뿐이었을 정도로

시장에서 소외된 ‘무명’이었다.

하지만 사후,

요한나 반 고흐-봉게르의 전략적인 전시 기획과

편지 출판은 그를 강력한 ‘브랜드’로 정립시켰다.


예술적 천재성이 가치로 인정받기 위해선

반드시 정교한 유통망과

‘서사(Narrative)’라는 인프라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오늘날 그의 작품이 지닌 천문학적 가치는

예술성 그 자체보다

사후에 구축된 브랜드 자산의 결과물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가 폭발하는 현장은

미술품 옥션(경매)이다.


Cy Twombly's Untitled(New York City)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낙서 작품'으로 불리는 '칠판' 시리즈는

대표적으로 경매 시스템의 힘을 보여준다.

2015년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1968년작 Untitled (New York City)는

무려 7,053만 달러(약 800억 원)에 낙찰되었다.


(작품이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예술적,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삼자)


경제학적 시각에서 미술품 옥션의

작동원리를 단순화하면 아래와 같다.

옥션은 정보가 불완전한 미술시장에서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이 된다.

승자는 경쟁자를 압도하기 위해

객관적 가치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겪지만,

수집가들은 이 저주를 기꺼이 감수한다.

옥션에서의 승리는

특정 작품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넘어,

거대 컬렉터 네트워크의 상위 계급임을 증명하는

‘클럽재(Club Goods)’의

입장권을 얻는 행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본의 논리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컬렉션(Collection)이라는

지적, 문화적 영토 확장으로 나아간다.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왕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국가적 문화 자본으로 승화된 사례다.

그들은 백과사전식 나열 대신

자신들이 선호한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고야 등의 작품을

수백 점씩 집중 수집하는 ‘컬렉터’의 면모를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이건희 컬렉션’과도 궤를 같이한다.

2만 3천 점에 달하는

방대한 기증품은 단순히 부의 축적을 넘어,

한 기업가의 안목이

국가의 문화 인프라를 단숨에 격상시킨

‘전략적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부유층이 이토록 컬렉션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가장 세련된 형태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컬렉션은 한 개인이나 가문의

문학적·미학적 정체성을 규정하며,

대중과의 ‘구별 짓기’를 완성하는 수단이 된다.

또한 기증과 재단 운영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전략적 필란트로피(Strategic Philanthropy)는

자본에 ‘문화적 정당성’이라는 외피를 입혀준다.


원자재값과 노동의 시간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미술작품의 가격은,

자본의 계산과 예술의 실험이 만나는 접점이다.


우리가 미술관 벽면에서 마주하는 것은

캔버스 한 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본의 질서이자

인간의 본능적인 계급 신호다.


낙서와 작품의 경계는

캔버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합의된 시선과

그 시선을 선점하려는

거대 컬렉터들의 전략 사이에 그어져 있는 것이다.


혹시, 미술품에 대한 감상보다

그 가격표를 먼저 바라보고 있는가?

혹은 비싼 미술품의 순회전시에

목을 매며 티켓 구매에 안달했는가?

(필자는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술적, 예술적 소양 부족이라고 인정한다.)


높은 가격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지만,

진정한 문화경제적 통찰은

단순히 가격표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경매라는 전장에서

작품의 가치를 정하는 '숫자(가격)'를 밀어 올린

보이지 않는 손들의

‘취향이라는 이름의 욕망’을

읽어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경제학 돋보기] 예술의 가치를 매기는 눈

•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 상품에 대한 정보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불균형하게 존재하는 상태. 예술품처럼 가치 측정이 주관적인 경우, 구매자는 전문가의 평판이나 경매가를 품질의 척도로 삼게 된다.


•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구매자와 판매자가 상호작용하여 특정 자산의 적정 시장 가격을 결정해 나가는 프로세스. 옥션은 지불 용의(WTP)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가치를 확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경매 등 경쟁 입찰에서 승리하기 위해 객관적 가치보다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현상이다.


• 클럽재(Club Goods):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게만 소비를 허용(배제성)하되, 여러 명이 동시에 소비해도 서로의 효용을 깎지 않는(비경합성) 재화. 특정 예술품의 소유는 소수 엘리트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입장권 역할을 한다.


• 전략적 필란트로피(Strategic Philanthropy): 사회적 공헌(기증 등)을 통해 기업이나 개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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