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이야기 8

같이 아파서 다행이야

by 애로

*본 글은 2016년 8월 8일 - 2018년 7월 24일, 약 2년이란 시간을 함께 하고 고양이 별로 떠난 길고양이 테라의 구조일지를 재편집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일이 터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가던 길, 교통사고가 있었다. 차도에 널브러져 지나가는 초록색 버스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렇게 얼마간의 기다림에 구급차가 와 나를 싣고 곧바로 근처 큰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외과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왼쪽 팔뚝 뼈가 세 조각으로 부서졌단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팔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구급차를 타고 가던 길은 쇼크가 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테라의 면회를 종종 가주던 선배 구조자에게 전화를 했다. "제가 지금 사고가 나서요.... 응급실에 왔는데요, 아무래도 테라 면회를 당분간 못 갈 거 같아요. 얼마간 더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만큼 내 머릿속엔 테라 생각뿐이었다. 수술은 월요일로 예정되었고, 손목과 손가락에 마비 증상-신경 손상이 예상되어 조금은 복잡한 수술이 될 거라 하였다. 엄지가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 아무 느낌이 안 들었다.

SNS를 통해 개인 모금을 했기 때문에, 후원자들은 나의 SNS 게시글 하나하나에 올라올 후원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새로운 소식을 최대한 자주, 구체적으로 올려야 후원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게시글을 올리면 후원자 분들은 댓글을 달아주셨고, 댓글로 우리는 소통했다.

안 그래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테라의 소식을 자주 올리지 못해 많은 후원자 분들께서 양해를 해주시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쳐버리기까지 하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한 손은 전혀 움직이질 않아 게시글 하나 올리는 데에도 큰 노력이 필요했다. 왜인지 억울한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르바이트를 가던 것도 테라의 모금을 보태기 위한 것이었는데... 왜 이렇게 됐지, 왜 사고가 났지. 나는 노력했을 뿐인데. 우울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테라와 함께 입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래, 차라리 같이 아파서 다행이다. 네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팔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약 18cm로 팔을 절개하여, 기다란 철심으로 부서진 뼈 세 조각을 이어 붙였다. 신경을 잘못 건드렸다간 마비가 생길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비록 18cm의 절개 흉터가 내 몸 한구석에 영영 남았을지라도, 움직일 기미가 없는 축 늘어진 손목과 손가락들이 남아 있을지라도 그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다.


나의 입원 생활도 한 달가량이 예상되었다. 보조기도 맞춰야 했고, 재활이 필요한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맞는 항생제 주사는 끔찍하게 아팠다. 웬만한 고통을 잘 참던 나였는데, 손등에 커다란 바늘을 꽂아 맞는 항생제 주사는 팔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테라도 이렇게 매일 항생제를 맞을 텐데. 테라가 많이 보고 싶었다. 선배 구조자가 종종 동영상을 찍어 나에게 보내줬다. 조금씩 살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서는 자주 전화로 테라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래야 내가 모금 게시글을 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얼마간의 입원 생활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테라의 염증 수치가 드디어 안정권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테라의 퇴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 웃프게도, 내 퇴원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병원 측의 배려로 나의 퇴원 일자에 맞춰 테라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테라가 먼저 퇴원해서 임보 거처를 찾는 방법도 있었지만 환경과 양육방식이 자주 바뀌는 것 역시 테라에겐 스트레스가 아닐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병원에서, 서로를 만날 시간을 기다리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keyword
이전 07화테라 이야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