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인사 평가를 받는 방법

인사 평가에서 올해도 나는 B를 받았다

by 칼렛

매년 2월이면 인사 평가 결과가 나온다.

몇 년째 내 등급은 항상 B였다.

‘올해는 좀 다를까?’ 싶었지만 역시나였다.

‘C가 안 나온 게 어디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누가 볼세라 평가 결과가 적힌 모니터 화면을 황급히 닫았다.


평가서에 나온 ‘B’의 정의는 이러했다.

기대한 수준을 충족하는 수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

‘역시 나는 그냥 적당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건가?‘


평가 면담에서 팀장님은 내 동료 평가가 아주 좋았다고 하셨다. 올해 많은 일들을 잘해주어 고맙고, 앞으로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저는 B죠?”


물어보지는 못했다. 얼마나 탁월한 성과를 내야 A를 받을 수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뻔한 대답이 듣기 싫어 입을 닫았다.


“네 연차가 높아서 웬만해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어”


이 말을 들은 것도 벌써 수년 전. 그때보다 또 한참 연차가 높아진 지금 그런 핑계인지 진짜인지 모를 이야기를 다시 듣는다면, 그때보다 더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덤덤한 척, 괜찮은 척, 쿨한 척.

몇 년째 이렇게 살다 보니 이제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글을 적고 있는 걸 보면 100% 괜찮지 않은 건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평가받으며 살아온 시간이 30년 이상이다. 우리 때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 등수를 전체 공개했었다. 등수에 따라 자리를 배정하고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는, 돌아보면 참 비인간적인 풍경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확실한 기준이 있었고, 어떻게 해야 점수가 높아질지 답은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평가는 늘 의문을 남긴다.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 너는 무슨 능력이 있길래?’


괜히 화를 내보지만, ‘억울하면 네가 팀장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현실적으로 팀장을 달기 어렵고, 평가받는 것도 너무 지겨우니 그냥 다 때려치우는 게 답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평가받는 것 투성 아닐까?

게다가 납득이 안 되는 건 뭐 상사의 평가뿐일까?

이유도 모르고 이별을 맞이해야 했던 과거의 연애보다는 그래도 명확한 거 아닌가란 생각에까지 다다른다.


평가받는 이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재테크 열심히 하고 교육 잘 시켜야지…

아 근데 그러려면 일단 내가 더러운 꼴을 참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다시 씁쓸해진다.


마흔만 넘으면 희망퇴직 1순위가 되는 세상.

오래 다니고 연차가 높고 업무가 익숙해질수록 그만둘 날이 가까워지는 현실.

그래도 적당한 B라는 점수를 받고 먼지만큼이라도 연봉을 올려 받으며 아직 일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만 매해 B등급을 받을 때마다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는커녕 나와 회사를 점점 더 분리시켜 생각하게만 된다.


아, 어쩌면 이게 바로 알아서 떨어지게 만들기 위한 회사의 큰 그림인 걸까? 그렇다면 더 악착같이 붙어서 월급 루팡을 해야겠군!




회사에서 적당한 평가를 받는 방법?

그런 건 사실 잘 모르겠다.

늘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고, 중요한 프로젝트에서는 영혼을 갈아 일했던 것 같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저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얼마 전 옆부서 계약직 직원이 점심을 먹다 말고, 또르르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6개월 계약 후 연장이 되지 않았다며, 곰탕에 밥을 두 그릇씩 말아먹던 친구가 그날은 밥을 반도 못 먹고 젓가락질을 멈췄다.


사실 그녀의 자리는 애초에 6개월 기한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연장의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매우 적은 확률이었는데, 그녀는 그 적은 확률에 희망을 품고 있었나 보다.


열심히 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냥 그녀의 탓도 누구의 탓도 아닌 그런 거였는데…

열심히 한 게 억울해서 우는지 차가운 현실이 슬퍼서 우는지 모를 그녀의 눈물에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어쩌면 나의 B등급도 이런 의미인 걸까? 그럼 그 누구도 탓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그렇게 살다 보면 B등급 아닌 A등급 인생을 언젠가 살 수 있겠지. 남이 평가하는 등급 말고, 내가 스스로에게 매긴 진짜 등급에서 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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