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by 칼렛

이유를 알 수 없게 아프고 피곤할 때가 있다.

몇 달 전에 내가 그랬다.


감기가 찾아왔고, 피곤해서 많이 먹었고,

많이 먹으니 속이 안 좋았다.

속이 더부룩해 잠을 설쳤고,

다음날 피곤해서 종일 커피를 마셨고,

커피로 인해 속이 또 안 좋아졌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커피를 끊어보기로 했다.

카페인 금단증상인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려 했다.

우울감도 찾아왔다.

그래도 며칠 지나니 차츰 금단증상은 사라졌고,

몸도 마음도 서서히 괜찮아졌다.


잊고 지냈던 그 몇 달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감기 그리고 우울감과 함께였다.

회사에 앉아있는데 일하기가 너무 싫었다.

새로운 업무 이슈와 미션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나는 손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기분이 안 좋으니 업무상 나누는 대화도 힘들어졌다.

상대에게 예민하게 대응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일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을까?

분명히. 있긴 했을 거다.

기억이 안 날 뿐 일은 늘 하기 싫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겠지.

그래서 이렇게 연차가 쌓였겠지.


해야 할 목록의 일들 중 가장 쉬운 일부터 찾아서 꾸역꾸역 했다. 잡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히는 것보다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지 싶었다.


히지만 낮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밤에 괜히 쇼츠를 보며 잠을 설치다가 다음날 또 피곤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야말로 악순환.


진짜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뭐가 문제일까?

너무 잘 크고 있는 딸, 착한 남편,

건강하신 부모님, 멀쩡한 회사

나무랄 데가 없는 상황인데

나는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다.


특히 요즘 힘든 건 회사 생활인 것 같다.

딱히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나 일도 없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냥 일이 너무나 하기 싫고

회사에는 내 맘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무모하게 살아본 적 없는 인생이었는데

무모하게 다 그만두고 싶어진다

뭘까?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 올린 시간들이

나의 큰 힘과 무기가 되어줄 거라 믿으며 살아왔다.


포근한 이불속을 박차고 나와 달린 러닝머신

토할 것 같은 속을 부여잡고 나가는 출근길

그만하고 싶을 때 한번 더 검토하고 검토한 문서들


근데 이 성실한 시간들이 정말 무기가 되는 게 맞을까?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계획 없니 그만두면 정말 큰일이 날까?


맥주라도 한 잔 하며 풀어지고 싶은 밤이지만,

늘 엄마와의 시간이 모자란 아이의 놀아달란 요구를 외면할 수가 없다.

영혼 1도 없이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주다 잘 안되어 나도 모르게 “망했다”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괜찮아 엄마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말해주더라.


오늘 어디선가 ‘긍정’이라는 말을 배운 건지, 말끝마다 긍정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 역시 긍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 생각패보면 별거 없는 하루였는데

의미 부여하지 말고 심플하게 생각하자.

적당히 잊고 적당히 버티면 내일 또 적당한 하루가 찾아오겠지. 그럴거고, 그래야만 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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