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 차가 말하는 적당한 결혼이란
적당한 결혼이란 뭘까?
이제 겨우 결혼 생활 10년을 향해 가는 내가 이런 질문에 답할 자격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내 결혼 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속단할 수 없고, 몇 년 몇십 년 후 이 글을 보고 어떤 후회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신혼부부나 미혼들에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써보기로 한다.
미혼 시절 내 연애의 목적은 모두 결혼이었다.
썸을 탈 때부터 늘 결혼을 상상했다.
그래서 너무 좋지만 결혼할 상대는 아니라 여겨져 사귀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끝나버린 만남도 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혼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자문해 볼 기회가 많았다.
Q1. 결혼은 정말 해야 하는 걸까?
A1.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근데 나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결혼은 한 번쯤 해보고 싶어. 결혼을 한 사람들이 안 한 사람들보다 많은 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수결에 따르며 적당히 살래. 노처녀 소리 들으면서 살 자신도 없고.
Q2. 정말 결혼이 하고 싶은 거야?
A2. 20대에 나는 정말 활동적으로 살았어. 단 하루도 집에 있지 않았지. 자주 여행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각종 모임에 참석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경험을 하려고 노력했어. 그러다 보니 평생 혼자 멋있게 사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서른쯤 혼자 10일 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달라졌어. 마냥 낭만적이고 자유롭고 즐거울 줄 알았는데 많이 무섭고 무척 심심하더라. 같이 여행의 흥을 나눌 상대가 너무 간절했고, 대범한 줄 알았던 내 속에 감춰진 소심한 모습을 발견했지.
그때 결심했어. 나는 평생 혼자살 순 없는 사람이구나. 적당한 사람을 찾아 꼭 결혼을 해야겠다라고.
Q3. 그럼 누구랑 결혼을 해야 할까?
A3. 결혼을 (혼자) 결심했을 때 옆에 아무도 없었지만 진지하게 미래 배우자에 대해 고민했어. 정말 포기할 수 없는 조건과 포기해도 괜찮은 조건을 나누어봤지.
내가 만나고 사랑에 빠졌던 남자들에 대해서도 하나씩 되돌아봤어. 나와 코드가 잘 맞았던 사람. 내 인생을 역전시켜 줄 수 있을 만큼 부자였던 사람. 맹랑하게 나를 휘둘렀던 연하남. 외모가 너무 훈훈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던 사람… 생각해 보니 내가 꽂혔던 그들의 매력은 50년 가까이 같이 살 사람을 고르는데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았어. 그들을 만날 때 나는 도파민이 폭발했지만, 그렇게 편안하고 안정적이진 않았거든.
나는 소박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인데, 왠지 결혼은 나랑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안정적인 사람과 해야 할 것 같았어. 그리고 결혼 이후 큰 변화가 생기기보다는 지금의 내 일상과 내 생각이 그대로 큰 변화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았어.
함께 있을 때 내가 변하는 게 아니라 원래의 나로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게 강 같은 평안’을 주는 남편을 만났을 때 결혼을 결심했지.
하지만 배우자의 조건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각자가 다를 거야. 그래서 내가 뭘 원하는지 먼저 고민해봐야 해. 그리고 그전에 내가 정말 결혼이 필요한 사람인지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해.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내 선택에도 책임이 생기는 것 같아.
적당한 배우자를 찾기 이전에, 나 스스로 적당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게 필요한 법이지. 일생일대 사건인데 그 정도의 진지함은 필요하지 않겠어?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은 결혼식날 나에게 노래를 불러줘도 되냐고 물었다. 몰래 준비하려다 혹시 네가 싫어할까 봐 먼저 물어본다며 윤종신의 ‘오르막길’을 부르고 싶다고 했다.
주목받는 걸 극혐 하는 나는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려 제발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가수여도 고민했을 판인데 남편은 (내가 보기엔) 음치가 분명했기에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면 ‘지금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로 시작되는 그 노래 아니던가?
달달한 고백도 시원찮을 판에 경고의 메시지도 아니고 그런 노래를 왜 부르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 한해 한해 지날수록 왜 남편이 그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지 점점 이해가 되어갔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콩깍지가 씌어 잘 싸우지 않았던 연애시절과 달리, 신혼 시절부터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한 나와 남편은 점점 웃음기를 잃어갔고, 결혼이라는 산에 오르기 전의 미소는 기억에서 차츰 희미해졌다.
그나마 아이가 태어나기 전 완만했던 길에는 달콤한 사랑의 향기가 풍기기도 했던 것 같은데…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지나온 우리 일상을 돌아보니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라는 가사와 정확히 일치했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남편은 결혼 전부터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자기가 ‘고된 남자’ 임을 선고백 하려고 이 노래를 골랐던 걸까? 뭔가 속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신혼 때 남편과 싸우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어쩌다 이런 남자랑 결혼하게 됐을까’였다. ‘하나님 대체 왜 이런 고된 남자를 저에게 보내주셨나요’라고 한탄하며 남편에 대한 미움을 키워갔던 것 같다.
하지만 1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남편에게도 내가 ‘고된 여자’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30년 넘게 자라온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맞춰가며 산다는 것이,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고된 일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서 이만큼 올라온 우리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사실 여전히 미움과 싸움은 진행 중이고 손을 놓고 가는 날도 많지만, ‘우린 결국에 만날 사이‘라는 걸 알기에 하루하루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견디면서 오르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적당한 결혼생활이 아닐까?
물론 우리와 달리 손을 꼭 잡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산을 오르는 부부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10년쯤 되어서야 깨달은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건 바로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이다.
싸울 때마다 남편은 “나는 너한테 바라는 게 없는데 너는 왜 나한테 바라는 게 그렇게 많은 거니”라는 멘트를 날리곤 했다.
그땐 몰랐지만 결혼이나 배우자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라는 프레임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평가했던 나의 태도가 두 번 웃을 일을 0번으로 줄이는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인간은 다르고 변하지 않기에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마인드가 잘 실현되지만 가까운 가족에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고른 세상의 단 한 명이기에 그는 다를 거라고 그는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했고 실망하고 싸웠던 것 같다. 남편이 달라지는 걸 기대하기 전에 그 모습 그대로를 먼저 사랑하고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다른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신혼이거나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이 경험을 참고 삼아 부디 오르막길 같은 적당한 결혼 생활 대신, 평지를 걷는 것 같은 스페셜한 결혼 생활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