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사는 것이 트렌드다

적당함이 당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by 칼렛

직장인, 유부녀, 엄마 그리고 40대 여자.

나를 수식하는 타이틀을 찬찬히 써놓고 보니 그렇게 평범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땐 꿈이 참 창대했던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40대의 나는 이렇게 무색무취의 느낌이 아닌데, 어쩌다 나는 이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 주인공이라기엔 너무 조연의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대체 잘하는 게 뭘까?

나에게 남은 나만의 장점은 뭘까?

마흔 이후 참 생각이 많아지는 나날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러다 문득 한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직장생활 초기부터 일로 만나 계속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지인이었다. 지금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던 10년 차 정도에 만나 대화를 나눴었다.


“요즘 참 일이 재미없고, 예전처럼 열정이 안 생겨요.”

라고 말하는 내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00 씨는 그때도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었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 진짜요? 제가 그랬나요?”

“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하는 사람도 아니고, 막 뜨겁게 의지를 불태우는 타입도 아니고, 그냥 딱 적당해 보였어요. 회사에서 딱 선을 잘 지키는 느낌. 그런 사람이 원래 오래 다니지 않나요?”


예언이었을까. 난 그 후로도 몇 년을 큰 이슈 없이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회사에서 나의 평가는 늘 B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평가 면담에서 상사는 ‘네가 우리 팀에 꼭 필요해’라는 말을 했지만, 정작 A는 절대 주지 않았고, 승진도 시켜주지 않았다. 나는 나와 동갑인 팀장 밑에서 일하는 팀원으로, 어린 시절 TV에서나 보던 ‘만년 과장’ 이 되어가고 있었다.


솔직히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려 애썼다. ‘그래서 지금, 나는 회사생활이 못 견디게 힘든가?‘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비록 회사에서 높은 직급에 있는 것은 아니나, 상사가 나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했으니 잘릴 염려는 없고, 리더들이 겪어야 할 피로한 관리 업무 없이 실무에만 집중하면서 팀장과 큰 차이는 나지 않는 연봉을 받으면 되니 개꿀인데? 이렇게 적당하기도 참 쉽지 않은데 말이야?


자기 합리화를 그럴싸하게 하고 나니 정말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또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얼마 전 한 회사 후배가 내게 말했다.


“선배가 제 롤모델이에요”

“응? 내가? 뭔 소리야…”


팀장도 아닌 연차 높은 팀원인 내가 롤모델이라니 무슨 소릴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요즘 MZ세대들은 팀장을 기피한다는 뉴스기사를 본 것 같다. 일 많고 보상 적은 팀장보다 워라밸을 지키는 팀원으로 남고 싶어 하는 이른바 ‘리더 포비아 시대’!


‘응? 나 지금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건가? ’


팀장이 되고 싶어 죽겠는데 못한 것도 워라밸을 지키고자 팀장을 극구 거부한 것도 아닌, 그냥 적당히 일하며 적당히 회사를 다니다 보니 트렌드가 되어버린 현실. 나이 먹는 게 싫고, 점점 트렌드에 뒤쳐져가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뭐라도 트렌드라니 나쁘지 않은데?


마흔 넘도록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나인줄 알았는데, 이 적당함이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희망이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100세 시대가 점점 가시화되는 요즘 ‘가늘고 길게’ 일하기 위해 ‘적당함’은 진짜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 싶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늘 고민의 대상이었던 내 삶 곳곳에 묻어있는 수많은 적당함을,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능력’으로 포장하고 발굴해보고 싶어졌다.


나처럼 적당해서 우울하고 적당해서 아쉬웠던 수많은 적당동지들을 위해! 이제 적당히 HIP인 시대가 왔으니 다 같이 ‘show me the 적당‘을 하라 외치고 싶어졌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