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묘한손 Jul 11. 2021

도비씨

도비는 자유? 자유로운 싱글녀 도비씨는 결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우 정말 정말 귀찮아!"

금요일 오전, 도비씨는 이번 주 일요일 결혼식에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귀찮다. 친한 동생의 결혼이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좀 미안하지만 일요일 결혼식 일정은 도무지 즐겁지가 않다. 일요일엔 무조건 집에서 쉬어야 하는 그녀이기에 차려입고 나가야 하는 것도 내가 아닌 남의 결혼이라는 사실도 죄다 그냥 별로다.


 물론 도비씨는 진심으로 친한 동생의 결혼을 축복한다. 지금껏 지인의 결혼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느덧 도비씨의 나이 서른일곱, 그녀에게 결혼은 여전히 큰 숙제지만 안 하면 큰일 날 만큼 간절한 것 또한 아니다. 그래도 주변의 누군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거나 결혼식에서 행복을 빌어주며 박수를 쳐주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한 감정이 그녀도 모르게 차오르곤 했다.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연애와 이따금씩 밀려오는 외로움 그리고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한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면 결혼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지곤 했다. 결혼생활은 연애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결혼해도 외롭다는 유부녀 친구들의 말.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외로움을 느낄 시간도 없다는 그녀들. 더더욱 최악인 건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부담이 배가된다는 사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 몸 하나만 간수하면 되는 지금의 자유가 도비씨는 더 소중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녀에게 ‘비혼 주의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평생 혼자 늙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한동안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치를 떨었던 적도 있다. 주로 봄에 자주 그랬다. 그래서 고민 끝에 소개팅 어플을 깔아보기도 했다. 그녀의 친구나 지인들에게 소개팅을 주선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이었다. 간혹 들어오는 제안도 마흔이 훌쩍 넘은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나이 서른일곱에 마흔이 대수냐고들 했지만 도비씨는 그냥 싫었다. 프로필 사진이 등록되어 있고, 꽤 상세한 자기소개가 적혀있는 소개팅 어플이 낫다고 느껴졌다.


“이번 주말에 뭐하세요? 같이 밥 먹을래요?”

도비씨가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아본 건 거의 3년 만의 일이었다. 소개팅 어플에서 매칭 된 남자와 약속을 잡았다. 며칠 전부터 긴장이 됐다. 뭘 입을지 고민이 되는 동시에 괜한 기대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소개팅이라는 게 참 그렇다. 적어도 상대방에게 괜찮은 외모로 비쳤으면 하는 마음에 신경이 쓰이는 반면 뭐 이렇게까지 신경 쓰나 싶어지는 마음. 소개팅에서 잘된 기억이 없는 도비씨였기에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지만 취소는 하기 싫었다.


소개팅 장소는 신사역 가로수길. 도비씨 집에서는 지하철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이다. 평소 굽이 높은 구두는 잘 신지 않는 도비씨지만, 오늘은 신어야만 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이지만 짧은 치마도 꺼내 입었다. 속눈썹이 자꾸 빠지는 것 같아 잘 바르지 않던 마스카라도 정성 들여 발랐다. 평소보다 두배는 오래 걸린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머리가 띵하다. 느낌이 안 좋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기에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여 급히 버튼을 누르고 올라탔다.



“그 남자 만났어? 어땠어?

월요일 아침, 주간 회의에 참석 중인 도비씨의 카톡이 울린다. 소개팅 어플 만남을 알고 있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의 연락이었다.


“그 남자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도 안나”

도비씨의 대답은 진짜였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신물이 올리오는 느낌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건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지하철에 타는 순간부터 두통이 밀려왔다.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은 꽤나 붐빈 데다 환승까지 해야 했다. 짧은 치마에 높은 굽을 신고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하고 나니 신사역에 도착할 때쯤은 정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약속한 장소로 나가는 출구에 서서 진심으로 약속을 취소할까 고민하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그렇게 어찌어찌 도비씨는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이후의 일은 도비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도비씨 스스로의 고통과 싸우느라 앞에 앉은 낯선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 나름대로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남자는 오래지 않아 도비씨의 상태를 알아차렸고 결국 약속한 밥은 뒤로 하고 커피만 마시고 헤어졌다. 다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돌아온 도비씨는 도착하자마자 속을 모두 게워냈다. 먹은 것이 없기에 나오는 것도 거의 없었지만 머리가 한결  아픈 느낌이었다. 그 길로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잤다.


'내 표정이 얼마나 썩어있었을까'

다음날 새벽 눈을 뜬 도비씨는 어제의 일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핸드폰을 켜보니 그 남자애게선 아무 연락도 와있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일이건만, 씁쓸했다. 낯선 경로를 통한 낯선 만남이 도비씨에게 꾀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게 분명했다.


나 진짜 혼자 살아야 하나 봐

 도비씨는 월요일 저녁, 퇴근길에 헬스장을 등록했다. 혼자서라도 씩씩하게 살아가려면 건강하고 날씬해야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내일은 전화영어도 신청하겠노라 다짐했다.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 그거라도 이뤄야 먼가 삶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녀였다.

 20대 때도 연애를 잘한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연애는커녕 소개팅도 힘든 이런 현실 속에서 정말 결혼이 가당키나  걸까?



서른일곱 슈퍼 싱글 도비씨, 그녀는 지금 세상 누구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고 있지만, 세상  어떤 유부녀들보다 자유롭지 않다. 모든 엄마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자유의 소유자인 도비씨가 진정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부럽지도 내키지도 않는  결혼의 세계로 입성하는 것뿐일까? 

이전 04화 초맘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