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씨의 꿈은 평생 재택을 하는 것이다.
재택씨의 회사는 일주일에 2번 순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재택근무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코로나 19라는 극악무도한 쫘식때문에 잃은 게 참 많지만, 재택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 건 확실한 수혜였다. 10년 가까이 회사를 다닌 끝에 처음 마주한 재택근무의 맛은, 마치 처음 샤인 머스캣을 먹었던 것처럼 생경하게 달콤하여 자꾸 먹고 싶은 느낌이었다. 여력만 된다면 자주 맛보고 싶은 그 맛 말이다!!
재택은 꿀맛
평일 아침 1분은 주말의 1시간만큼이나 소중하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재택씨에게 1시간의 아침 수면이 추가된 건 하루를 버는 것과 비슷했다. 평소 같았으면 침대를 박차고 허겁지겁 일어났어야 할 시간에 다시 눈을 감고 침대에 더 머무르는 행위는 진정 꿀맛이었다. 신기한 건 그때 잠에서 완전히 깨버려도 평소만큼 졸리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피로마저 날려버린 것이다.
아침에 씻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재택씨는 너무 좋았다. 남들이 보면 늘 똑같은 옷차림에 민낯으로 보일지언정, 재택씨는 나름 외출을 위해 외모를 가다듬는 편이었다.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옷을 차려입고… 간단해 보이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일이기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사도 사도 모자란 옷 중에서 오늘의 코디를 선정하는 일은 웬만한 업무보다 골치 아프며, 슥삭슥삭 대충이라도 메이크업을 하는 것 또한 굉장한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생략하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정 에너지가 빵빵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들 안녕
재택씨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5호선을 타고 가다 천호역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는 경로인데, 9시 9분에 8호선 열차를 타면 지각을 면할 수 있다. 하나 그걸 놓치면 다음 열차가 9시 16분에나 온다. 그래서 8호선 9시 9분 열차를 타러 가는 길엔 다급히 뛰는 사람들이 많다. 급히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는 사람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보는 것 같다. 재택씨도 그중 하나다. 뛰진 않지만 계단을 2칸씩 올라간다.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피곤한지.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달까. 재택 후 그 전우들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상쾌한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아침에 출근 전쟁이 있다면, 오후에는 잠과의 전쟁이 있다. 점심을 먹고 책상 앞에 앉으면 어찌나 졸린지! 침대에 대자로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눕기는 커녕 책상에 엎드릴 수조차 없는 현실에 그저 애꿎은 커피를 계속 홀짝이거나, 사탕, 젤리와 같은 달달한 간식들을 입안에 털어 넣는 재택씨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이럴 때 담배를 피우러 가는 것이겠지? 어쩜 하나같이 몸에 좋지 않은 것들 뿐일까! 직장인이 이래서 건강할 수 없다고 재택씨는 생각했다.
사실 몸을 편히 누이고 사지를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 5-10분이라도 눈을 붙이면 해결될 피로인데(물론 아닐 수도..) 어찌 됐든 건강하지 않은 대체 요소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재택근무를 하면 이 대체 요소가 필요 없이 잠시라도 대자로 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왠지 건강에도 도움되는 게 재택근무라고, 재택 씨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와의 전쟁도 확실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스트레스 때문에 쓰던 '시발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사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집에 있을 때보다 돈을 더 쓰게 된다.
'모닝커피 3천 원 + 점심 식사 8-9천 원 + 식후 커피 4-5천 원 + 오후 편의점 간식 3천 원 = 약 2만 원'
퇴근 전까지 하루 최소 2만 원을 쓰게 되는데 그날의 스트레스 지수에 따라 저녁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고, 퇴근길에 잠시 들른 올리브영, 액세서리 숍, 옷가게 등에서 계획에 없던 지출을 저지르기도 하는 재택씨였다.
하지만 재택을 한 이후로 그런 유혹과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처음엔 온라인 쇼핑과 배달 음식비로 더 많은 지출을 했지만, 잠깐일 뿐이다. 점점 재료를 배달해 집밥을 해 먹고 콜드 브루 커피를 사서 며칠 나눠먹게 되었다. 적어도 출근할 때만큼의 시발 비용은 절약되는 것이다.
이 좋은 재택, 왜 안 하나요?
'왜 재택근무는 진작 우리 사회에 자리잡지 못했는가. 이렇게나 일이 잘 되는데!!!'
최근 1년간, 재택씨는 계속 생각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재택씨는 혼자 일할 때 더 집중이 잘되는 편이다. 물론 동료와 수다를 떨며 잠시 숨도 돌리고, 글보다 말로 해결할 때 더 빨리 진행되는 업무도 있지만, 메신저나 이메일, 전화만 있어도 큰 불편 없이 처리 가능한 업무가 많은 그녀였다. 오히려 불필요한 대화가 필요 없는 재택이 업무력에 있어서는 좀 더 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 어색했던 화상회의도 점점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어, 진짜 회사에 왜 나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직장인들의 이동수단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아끼고 업무력은 상승하는 이 좋은 재택, 적극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아닐까(요 회사 임원 여러분??)
무엇보다 좋았던 건 회사에 대한 미움이 줄어들었단 사실이다. 애국심이란 단어도 낯설지만 애사심은 더욱 낯설었던 재택씨였다. 하지만 마치 해외에 나가면 애국심이 폭발하는 것처럼 회사에서 멀어지니 애사심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긴장이 되고, 작은 내용에도 쉬이 흥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재택을 하다 보니 상사나 동료, 타 부서와의 소통 시한결 부드럽고 유연하게 대화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재택씨는 깜짝 놀랐다.
원래 싫은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더 싫어지지 않는가?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나를 감시하는 것 같고 그게 아님에도 괜히 신경 쓰였던 상사와 한 공간에 있지 않으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게 되었다. 재택은 이처럼 회사 속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매주 훌륭한 도구가 아닐까!
주 5일 재택근무를 꿈꾸는 재택씨, 아직까진 단점보다 장점이 한가득이라는 (적어도 직원 입장에서..ㅎ) 재택근무가 재택씨 바람처럼 우리 사회에 자리 잡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주 5일제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날이 오길... 과연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