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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Jun 27. 2022

결혼과 이혼사이 #9.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주세요

시들지 않는, 시들 수 없는.

본가에서 부모님과 저녁밥을 먹은 후, 집으로 향하는 길.

많은 감정이 든다.


엄마와 아빠의 한없이 따뜻한 기운과 사랑이 느껴지는 말들 속에서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밝아지고 풍요로 가득 찬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대화 주제로 서로 깔깔거리며 웃는 그 시간들은 내가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감정은 먹먹함과 무슨 이유인지 모를 슬픔이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본가에 잠깐 들른 딸에게 '빨리 밥 다 먹고, 늦기 전에 신혼집으로 가라'는 말을 연신 하신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음에는 언제 또 본가에 올 것인지 넌지시 물어보고, 산책하는 척 지하철 역까지 날 배웅해주며 사라질 때까지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쿨한 척 노력하는 이유는 내게 마음의 짐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 참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미어 오고, 자꾸만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앞이 뿌옇게 된다.




어릴 적 기억하는 아빠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던 모습과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여 먼 지방에서 홀로 3년 이상을 원룸에서 살았다. 일의 고됨과 압박, 쓸쓸함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편의 이름으로 견뎌야 했을 것이다.


책임감과 완벽주의로 스트레스를 곧잘 받았지만, 묵묵히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해냈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참 열심히도 살았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나와 언니에게 농도 짙은 애정과 관심을 주었고, 그의 진심은 내가 그를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 시기 나의 엄마는 개성 강한 두 딸을 거의 혼자 기르다시피 했는데, 맏며느리로써 그 옛날 하루 10시간 이상 걸리는 시댁을 오가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다.


신혼 초, 그들은 가진 것 없이 상경하였고 갖가지 벌레가 득실거리는 지하 단칸방에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며 가정을 꾸렸다. 아이가 2명이라는 이유로 집주인에게 쫓겨나야 했고, 같은 이유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택시에 승차거부를 당해 네 식구가 비를 맞으면서, 그 억울함과 분노를 원동력 삼아 그들은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던 10년 전 어느 날.

나의 아빠는 갑작스럽게 위암 판정을 받았고, 위의 80%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였다. 아빠가 살아있는 것이 우리 식구에게는 천운이었다. 수술 후 풍채가 좋았던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키 173cm에 몸무게 51kg를 넘긴 적이 없을 만큼 많이 왜소하다.


당시 나의 엄마는 본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요리방법을 모두 암환자에 맞춰 바꾸셨고, 지금까지 서로는 가장 신뢰하는 배우자이자 친구로 함께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사고뭉치 막내딸이었던 나는 데이트 폭력을 당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엄마와 아빠는 심장이 무너져라 울고 또 우셨다. 나의 아빠는 곧바로 경찰에 진술서 제출과 변호사 선임까지 마치셨고, 그제야 데이트 폭력을 가했던 그 사람은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 기억은 우리 식구 모두에게 사무치게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았는데, 특히 피해자였던 나보다 내 부모님에게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을 괴롭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사고뭉치 막내딸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어 한숨 돌리게 되지만, 시댁 시어머니로부터 하대 받는 딸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나는 그들에게 깊은 상심을 주는 딸이 되어버렸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엄마, 아빠가 마음 편한 날이 많았을 텐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그들을 보며 더 자주 전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서로의 조언자처럼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내게 ‘태어나 받은 가장 큰 행운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난 단 1초의 고민 없이 나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으로 내 인생의 운을 다 써버렸다고 해도 괜찮다.


70대를 달려가는 나의 부모님은 무척이나 외로울 것이다. '살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늘 말하면서 담대하고 여유롭게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두 딸이 결혼한 이후 텅 비어버린 넓은 집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은 사무치게 외롭기도, 두렵기도, 서운하기도, 슬프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 나로 인해 단 1시간이라도 행복하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 그들이 나로 인해 단 하루라도 더 즐겁고 생기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내 부모님의 젊은 날처럼 꿋꿋이 하루하루 견디며 상처받은 적이 없던 것처럼, 사람이 두렵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속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침을 꾹 삼키며 웃으며 지낸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시들 수 없는 나의 엄마와 아빠.

그들은 내게 여전히 가장 빛나는 꽃이며, 영원히 시들지 않는 향기 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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