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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Nov 29. 2022

결혼과 이혼사이 #11. 지독한 그림자

“독자님들께 조언을 구합니다”

시댁과 완벽하게 소통을 끊고 살고 있는 약 6개월.

나와 남편은 아무 일 없는 척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은 일상에서 새어나온다.


결혼 후 깨닫게 된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정서적 연결은

강력접착제보다 더 끈끈했기 때문에 내심 남편의 눈치가 계속 보였다.

나 편하자고 모질게 무시하면 되는 것을 그게 참 어렵다.




현재와 달리, 남편이 시어머니 언행의 심각성을 몰랐을 때에는 남편에게  '당신과 시어머니의 관계가 소름 끼친다, 나는 지금 누구랑 살고 있는 것이냐'라고 한 적도 있었다.

심하게 말한 것이 맞지만,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울분이 쌓여 죽을 것만 같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와의 지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던 남편은 그녀를 뒤로 하고, 나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티는 안내지만 문드러질 남편의 마음과 노력을 알기에

나는 시어머니가 꿈에 나올 정도로 그녀에 대해 매일 고민을 한다.


꿈에서 나는, 시어머니에게 예전처럼 살가운 며느리로 행동하기도 하고, 다른 날은 서운했던 것을 말했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은 날이 없고, 시댁과 연을 끊은 나의 행동을 법정 가운데 세워놓고 유죄와 무죄를 스스로 판결한다.


가족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지독하게 매일 떠오른다.

참으로 지독하게 붙어있는 그림자 같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내가 시어머니와 단 둘이 만나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화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래서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진정성이 결정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머님을 만나면, 죄송하다는 말 외에 어머니가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 온통 내게 서운한것만 있으실 것 같은데,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어? 서로 서운한 거 이야기하면, 결국 어머님은 나한테 버릇없다고 하실걸?'




나와 시어머니는 극과 극인 인간이다.


올해 내 생일.

감사하게도 시댁에서는 나를 위해 100만 원 상당의 선물을 주고 싶어 하셨고 미리 선물을 고민하라고 하셨다.


나는 3가지 중 한 가지를 선물로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혹시나 남편과 내게 금전적 어려움이 생길때 큰 힘이 될 수 있는 '금'을 주시거나,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물려줄 '주식'이거나 

마지막으로 정말 듣고 싶었지만 금전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웠던 70만 원 상당의 '온라인 강의' 중 하나만 지원해주신다면 내겐 큰 도전과 재산이 될 것이라 말씀드렸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이나 악세사리를 사주고 싶다며, 끝까지 내게 백화점을 가자고 하셨고, 명품이나 보석에는 생전 관심 없는 내겐 기쁜 선물이 아니였다.

아마 내가 매일 몸에 지닐 수 있는 재화를 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재화는 내게 족쇄일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부디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웃는 얼굴로 사정하였다.

시아버지께서 70만 원을 내게 주셨고, 나는 그 용돈으로 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했고 너무 신이 났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몹시도 서운하셨던지, 남편에게 '수혜는 어른이 사주고 싶은 것도 못 사주게 한다. 서운하다'며 내 뒷말을 하셨다.


처음에는 '사치품 안 좋아하고, 자기 계발하는 며느리가 명품 대신 온라인 강의를 듣게 해달라는 요청이 그렇게나 서운하실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어머니와 나는 교집합이 전혀 없는 인간이구나. 참 다른 인간류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서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토록 다른 두 여자에게 남편은 단 둘이 대화를 하라니.

그것도 서로 분한 게 많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처음 남편의 말을 듣고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시댁과 연을 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 친정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독자님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 독자님들은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매우 다양하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시어머니로, 또는 누군가의 아빠이자 시아버지로, 누군가의 남편이자 며느리로,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로, 독자님들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혼도 각오했던 나인데, 마지막으로 시댁과 부딪혀야만 한다면 굳이 피하고 싶진 않다.


시어머니와 대화가 잘 된다면 한없이 감사한 일이지만.

결국 시댁도 남편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오히려 그땐 뒤도 안돌아보고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매일 무죄와 유죄를 판결하는 법정에 나를 몰아세우고, 너무나 자주 시어머니 꿈을 꾸는 이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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