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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Jun 20. 2019

가족 남미 여행 출발-마드리드의 이산가족 상봉기

남미 여행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만나요 우리!
으르신 네 분, 국제선 환승에 도전하다.

  가족 남미 여행의 목적지는 페루였지만, 출발지는 서로 달랐다. 엄마아빠이모아저씨는 한국에서 출발하고, 터키에 거주하던 나는 터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유지인 마드리드에서 모두 만나서 함께 가는 일정으로 티켓팅을 끝냈는데, 한국 출발팀의 일정이 좀 복잡하다. 마드리드까지만이라도 한 번에 오면 좋겠지만, 파리를 경유해서 마드리드에 와야 했고, 각 공항에서 주어진 시간이 대략 2시간씩이라 살짝 빠듯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 그래도 엄마 아빠가 여태까지 나랑 같이 자유여행을 해 온 여행 내공이 있는데, 크게 별일 있을까 싶어서 그냥 예매를 강행했고, 역시 마음이 놓이진 않으니까 어떻게 공항 수속을 해야 하는지도 촘촘히 작성해서 보내 두고 확인, 또 확인, 또또 확인을 하고 드디어 출발일이 되었다.



이 정도면... 뭐 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하지 않나요?


  인천공항에 도착한 엄마아빠이모팀은 내가 그렇게 "반드시 모닝캄 줄에 가서 수속을 하라"라고 하였지만 일반 줄에서 수속을 하셨던 모양이다. 굳이 모닝캄에서 수속을 하라고 한 이유는, 만약의 경우 중간 경유지에서 짐을 찾아서 다시 수속을 해야 할 경우 일반 수화물보다 그래도 조금은 빨리 나오길 기대하면서 했던 요청이었으나... 쿨하게 일반 줄에서 서신 으르신들! (왜! 를 설명 안 한 제 잘못인 걸로.....)

  게다가, "에이 설마 그러겠어?"라고 하면 반드시 발등이 찍히고, "아 제발 그것만은 안된다"이라고 간절히 바라면 절대 그것으로 실행되는 맙소사 한 청개구리 법칙이 적용되어 짐은 페루 리마까지 한 번에 가지 않는단다. 중간 경유지인 파리에서 다시 짐을 찾고 표도 새로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없는데. 나도 없이 으르신들 네 분이 그 일을 해 내셔야 하는데, 이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그러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항공편이 지연되면...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좋은 글감은 되겠으나 뒤처리를 하는 나는 울고 싶어 지는 상황이 발생할 예정이었다.


  평소에(안 어울릴 것 같지만) 엄청 소심하고, 매우 작은 것들로 쓸데없이 스트레스받고, 그다지 필요 없는 것 같은 디테일을 챙겨대고, 별것도 아닌 건데 결정도 잘 못하다가도, 큰일이 터지면 대책 없이 대범하게 질러대든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수습하는 성격이 어디 가겠나. "뭐 이제 와서 어쩌겠냐"하는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고 하고 내가 수습하지 뭐"하는 기질이 작동한다. 일단 으르신들은 즐겁게 파리까지 오시라고, 대신 내리기 전에 대한항공(이럴 땐 국적기를 사랑한다) 승무원을 불러서, 상황을 설명하고 제일 먼저 내릴 수 있게 부탁을 하라고 미션을 드렸다. 짐이 빨리 나오는 건 그날의 운세에 맡기자고.


  


파리 샤르드골 공항, 으르신들은 무사히 체크인할 수 있을까?

인천에서 으르신들이 탄 비행기는 천만다행으로 정시에 출발했고, 나는 마드리드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반나절 마드리드 시내를 좀 돌아볼까 하고 나섰다. 곰발바닥에 손대고 사진도 좀 찍고, 어디 궁전도 둘러볼까 하는데 한국팀이 파리에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는 슬슬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새로고침을 눌러대며 비행기 도착시간을 확인하느라 좀처럼 시내 관광에 집중하지 못했다. 몸은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데 마음은 파리에서 내리는 어르신들 옆에 붙어있달까. 짐을 찾아서 나와야 하는 데스크 번호까지 검색해서 단톡 방에 카톡으로는 보내 두었는데, 또 으르신들이 공항에서 무료 인터넷을 잡지 못할 수도 있으니 핸드폰을 켜 두기만 하면 자동으로 받게 되는 문자로도 몇 개 넣어두었다. 

마드리드에서 파리 공항의 출도착 현황을 새로고침 100번 정도 한 듯하다.


 다행히 비행기가 정시에 착륙한 것은 확인이 되었다. 아직 망하진 않았군! 별일 없을 거야! 하는 혼잣말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 보통 체크인 카운터가 출발시간 1시간 전에 닫히니까 1시간 안에 짐을 찾아서 밖으로 나온 다음 다시 체크인하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샤를 드골에서 출국하는 사람은 3-4시간 일찍 가야 됨. 공항은 더럽게 큰데 사람 더럽게 많고 직원들 일처리 더럽게 느리다"라는 후기들이 보여서 안 그래도 불안한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분명 비행기가 착륙했다는데 다들 정신없으신지 인터넷은 못 잡으신 건지 무료 인터넷이 없는 건지 카톡의 1은 사라지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마드리드행 비행기의 출발 1시간 10분 전쯤에 전화를 하는데 누구도 받지도 않아서 4분의 어르신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하는데, 속이 바짝바짝 타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심장박동이 평소의 세 배속쯤 되는 것 같다. "설마 돈 들까봐 무섭다고 전화를 안 받는 건 아니시겠지?" 하는 우려에 "전화 좀 받아요 아무나"라고 문자도 넣어가며 마음을 졸이는 중에 겨우 아빠가 전화를 받으셨는데, 그쪽 목소리도 다급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불길한 기분은 현실임이 확인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아직도 체크인 카운터를 못 찾아가셨단다. 망했네.

"아빠! 짐은 다른 사람 맡기고 한 명이 여권 네 개 걷어서 뛰어가서 일단 카운터 찾아가요! 가서 못 닫게 붙잡아!!"를 날리고 내 머릿속도 하얘진다. 일단 구경하려던 성당에 얼른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해외여행 중에 너무 힘들어 쉬고 싶다면 성당이나 교회를 찾아 들어가시길. 나처럼 어디선가 앉아서 핸드폰에 집중하기에도 그만한 무료 쉼터가 따로 없다.)


-마드리드에서 페루로 가는 표를 다 변경하는게 가능하긴 할까?

-가능하거나 말거나 일단 으르신들을 어떻게 찾아오지?

-내가 마드리드에서 파리로 가서 어른들을 찾으러 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미 놓친 비행기는 잊으시라 하고 표를 다시 끊어주고 마드리드로 오시라고 해야 하나?

-만약 페루로 가는 비행기 표를 연기 못하면 그냥 스페인 관광이 되는 건가?

-그마저도 안되면 파리 관광이 되는 건가?

-한국 복귀하는 비행기표는 출발 탑승이 남미에서 안되면 잔여 표도 취소될 텐데?


오만 걱정을 시작하려다가 결국은 나도 모르게 하나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 하나님, 제발 으르신들을 보내주세요. 비행기를 놓치는 에피소드 같은 거 없어도 여행에서 충분히 즐거울 테니 제발 그냥 보내주세요. 전 아니라 해도 적어도 이모랑 아저씨는 엄청 신실한 주님의 자녀들인데 쫌 들어주시면 안 되나요?” 하다가 이 뭔 다 부질없는 짓인가 하며 문제 수습 로드맵을 그릴 준비를 하고 마음을 비울 그 시점!! 비행기 출발 50분 전 아빠한테 문자가 왔다.


“우리 체크인도 잘했고, 짐도 리마까지 보내준다고 확인했고, 표도 마드리드에서 쓰는 것까지 두 개씩 다 받았어. 이제 타는데 찾아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오 마이 갓. 하나님...? (원래 이런 지극히 개인적이고 보잘것없는 건 잘 안 들어 주신는거 아니었나요...? 저 지금.. 저한테 몇 장 없는 소원권을.... 이렇게 허망하게 써버린 건 아니죠...?) 인간의 마음은 이렇듯 간사했다. 후후 훗.


파리 공항만 해결하면 끝일 줄 알았지?
마드리드 공항에서 무한루프를 돌 줄이야...

  진짜 쫀쫀 쫄깃하게 쫄아있던 마음을 습습후후 풀어주고, 마드리드 최고의 츄러스 집을 찾아가서 씩씩하게 츄러스도 먹었다. 그리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공항에서 또 엄청 헤매실까 두려워 파리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는 마드리드 공항 터미널을 찾았는데(다르다면 데리러 가겠다) 우리가 출발하는 터미널(T4S)과 같은 터미널(T4)에서 내린 다음 기차만 한번 타면 된다. 이건 뭐 인천공항에서 탑승동에 가면서 많이 타본 거니까 이쯤은 쉽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리 기차를 타는 곳에 가서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실시간 운행 현황을 보니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고, 정시에 도착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도착하자마자 와이파이도 잘 잡으셨는지 비행기에서 잘 내렸다고 카톡도 왔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만나서 여유 있게 라운지에서 잠시 쉬다가 들어가면 되겠네 하면서 라운지 검색도 해두며 기다린다.


비행기가 내렸나 보다 싶게 환승객들이 몰려오고, 기차를 타고 떠나가고, 또 오고, 또 떠나가고... 그런데 왜... 우리 엄마아빠이모아저씨는 오질 않는가. 올 시간이 아주 한참 지난 거 같은데.... 기차 타는 곳은 한 곳뿐인데... 뭔가 또 쎄... 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대 반전의 환승 전쟁. 같은 터미널 안에서 환승하기가 이렇게 힘들 수 있는가! 를 믿을 수 없었지만 처음에는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하며 "잘 찾아와바~"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러다간 페루행 비행기를 놓치게 생겼다.


처음엔 마일리지 적립을 생각하는 여유도 있었으나, 30분 후 바로 초조함으로 다시 바뀐 내마음.
대체 어떤 루트를 따라서 무한 반복을 하셨는지 나는 아직도 알수가 없다.


  그 시간 으르신들은 환승을 해야 하는데 발권데스크로 다시 나가셨다가 또 들어갔다가 무한 루프를 돌며 길을 물어보았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혹은 얻었으나 제대로 얻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 계신 듯했다. 카톡은 오는데 어디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기다리는 나 만큼이나 어딘가를 계속 내리락 오르락, 들어갔다 나갔다 으르신 네 분도 속이 바짝바짝 타셨겠지.


  짐 검사하는 곳에서 지하로 내려와야 열차를 타는 곳이었는데 혹시나 해서 다시 환승 게이트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좀 두리번거리다 보니(이미 수속하고 들어와서 나는 나갈 수도 없다) 저 멀리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엄마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도 분명하게 알아듣는 건 본능인가. 이럴 땐 그냥 창피함이고 뭐고 "엄마!!"를 외쳤더니, 우리 엄마 맞네. 그마저도 그 문을 통과하여 들어갈까 말까, 여기가 아니다 기다를 논하시며 엄청 고민하시다가, 여기는 아니라고 결론내리고 또 무한루프를 돌러 다른곳으러 가시려던 찰나!!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신나서 입장하신다. 오 주여. 진짜 여행 출발하기 전에 속 다 타버리겠네. 제가 이 험란한 여행을 과연 잘 끝낼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찾아오기가 그렇게 힘드셨던가요. 
저 문밖에서 엄청 고민하며 무한 루프를 돌다가 겨우 구조되신 으르신들.

"아이고~ ㅇㅇ아~ 드디어 만났네~ 우리 너 못 만나는 줄 알고 국제 미아되는 줄 알고 엄청 걱정했다~" 진짜 긴장했던지 이모 목소리가 "다행이다"라는 진심을 뿜어내고 있었고

"야야야, 우리가 파리에서 진짜 얼마나 난리도 아니었는지 알어? 야 공항은 엄청 크지 야 거기를 짐은 있지, 길은 모르겠지..." 일단 본인들이 겪은 엄청난 에피소드를 빨리 풀어내고 싶은 우리 엄마는 대번에 "야야야~"를 시작한다. 


"엄마. 일단, 늦었어. 얼른 비행기 타러 가고 나중에 얘기해 나중에! 이러다 우리 남미 못가"

대략 인천 출발 17시간 만에 구조되신 가족 여러분

탑승구 앞까지 가서 겨우 풀어놓는 환승의 다이내믹한 스토리는 그 구구절절 생생함을 다 옮기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을 탓해야겠다. 어쨌거나 다들 짐을 들고뛰었다가 번쩍번쩍 계단도 올랐다가, 이리 갔는데 허허벌판이 나와서 저리 갔더니 벽이 막혀있고, 그렇게 파란만장했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나기로 한 마드리드까지 무사히 왔다는 것!! 그 와중에 반전 있게 제일 연장자인 우리 아빠가 영어를 제일 잘하셨다고. 역시,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결국 으르신들은 자력으로 국제선 환승을, 그것도 짐을 중간에서 찾아서 다시 보내야하는 상급 코스를 해내신 것이다. (흐흐흐 앞으로 우리여행의 출도착 조건은 좀더 다양해 져도 되겠습니다 그려)


그러니까 무려 인천 출발부터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심상찮은 남미 여행이 어떻게든 출발은 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터미널 2번에서 내려서 3번을 찾아가는데 고생 꽤나 하셨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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