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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에 쓰지 않는 첫 직장이야기' 6편

심플리파이어 라이프


철저히 기획적으로 준비한 이력서를 가지고, 난 이력서에 쓰지 않는 게임리그회사에 입사를 하였다.


기획자 3명, 디자이너 1명,  개발자 3명 … 평균경력이 2년을 넘지 않는 초급들이 3~4평 남짓의 방에 다닥다닥 붙어 일했다. 


그 팀을  IT경력이 없는 어린 본부장이 이끌며 글로벌 배틀넷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데 견적이 안 나오는지, 나랑 동갑내기의 팀장을 뽑았다.



팀장은 나랑 동갑이었지만, 조직을 리딩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여유와 안정감이 있었다. 


그 팀장의 자리가 내 자리와 ㄱ자로 배치가 되어서, 팀장의 브라운관 모니터 뒷면이 내 얼굴이 붙게 되었다. 내가 정중히 전자파 때문에 그런데 모니터 방향을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성희 씨가 일 하는데 도움이 되면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며, 흔쾌히 방향을 바꿔주었다.’


그 팀장은 기억 못 할 가벼운 에피소드였지만 나에게는 ‘조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라는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팀장이 온 후 3개월 만에 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달렸다. 나는 초보 기획자였기 때문에 자주 이렇게 해도 개발이 될지,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종종 물었다. 그런데 까칠한 개발자 한 명은 뭔가 기분이 상했는지 대답을 잘 안 해줬다.


나보다 1년 먼저 기획을 시작한 선배가 조용히 나를 불러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해줬다. “성희 씨 개발자들을 대할 때는 멤버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하는지 보고 그 사람의 스타일에 맞게 대화를 해야 해요. 그래야지 우리가 원하는 대화를 쉽게 할 수 있어요.” 


그 이후로 나는 그 선배기획자가 개발자와 어떻게 얘기하는지를, 그리고 각각의 개발자들은 어떻게 성향을 가졌는지 관찰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까칠한 개발자와도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까칠한 개발자는 회의만 하면 싸움닭이 되었다. 그에게 회의는 토론의 장이 아닌 말싸움의 장소 같았다. 그 합리적인 팀장도, 선배기획자들도 그리고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왔다.


나는 또 다른 선배기획자와 같이 하소연을 하다가 물었다. “우리는 언제쯤 실력 있는 멤버랑 일할 수 있을까요?” 그가 말했다.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좋은 멤버를 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실력 있는 멤버가 되어야 한다.”라고…



그 선배의 얘기를 듣고 속으로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내가 실력을 갈고 닦는 게  맞지 … 그리고 여기를 내가 빨리 뜨는 게 빠르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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