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가을, 내게 필요한 정리정돈
세상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게 가장 어렵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
어릴 적에 우리 엄마는 어질러지는 꼴을 보지 못하셨다.
집은 늘 깨끗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었는데,
엄마는 그것도 늘 만족하지 않았다.
만지지 마라, 건드리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확히 지금 내가 그런 모습이라는 걸 발견한다.
정리정돈을 얼마나 잘하냐 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대답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어질러져 있는 상태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뒤틀린다.
어질러져 있는 걸 제자리로 가져다 놓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진다.
반면 내 아내는 나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아내가 정리정돈을 얼마나 잘하냐 라는 것은
역시 상대적인 것이므로 대답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아내는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아내는 혼자 심란해 하는 나를 쳐다보며
가끔 이렇게 대꾸한다.
"나는 어질러져 있는 걸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불편해 하는 거야?"
어질러져 있는 걸 참지 못하는 나와 불편하지 않은 아내.
오랫동안 나는 이것을 문제로 바라보았다.
'왜 정리정돈을 안 하는 거지?'
'왜 이렇게 어질러 놓기만 하는 거지?'
'왜 정리를 제대로 못할까?'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나 자신이었다.
어느 날 열심히 정리정돈을 하고 있는데
무엇인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나는 정리정돈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뜻대로 정리가 되면 괜찮고,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남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어질러져 있는 걸
불편해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청소를 시작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해낸다.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도 않고,
짜증 내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치운 풍경을 보고
'만족해 한다'
자신이 치운 풍경을 만족해 하는 아내와
쓰레기통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늘 즐거운 아이들.
나만 가자미눈을 하고 앉았다.
그때 알았다.
정리정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것을.
나의 문제를 정리 정돈하는 것에 떠넘겼고,
어질러져 있는 게 불편하지 않은 아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떠넘겼다는 것을.
정리를 해도 마음에 칼바람이 부는 사람과
어질러져 있어도 마음이 잔잔한 사람.
어느 쪽이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리를 잘하고 있는 것인지 되묻는다.
깊어지는 가을.
하늘은 높고 우리 내면은 깊어져야 할 가을.
내면의 '정리정돈'에 신경 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