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석일이는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불렀다. 그래서 우리도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베아트리체라고 불러주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은어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석일이를 놀려먹을 때 그녀는 언제나 베아트리체가 되었다.
국민학생 때부터 교회에서 만나 고등학생이 된 우리는 교회가 끝나면 야구, 탁구 혹은 오락실 등의 이벤트를 벌였고 그러고는 이후에 누군가네 집으로 모여들곤 했었다. 그러한 아지트로는 교회에서 가장 가까웠고 장사 때문에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았던 우리 집이 가장 빈번하긴 했지만, 당시 14평 연탄보일러 시영아파트에 살던 석일이네 집도 그중에 하나였다.
석일이는 우리 다섯 명 중에 공부를 제일 잘했고 트렌드에도 민감한 편이어서 우리의 유행 감각을 주도했다. 그의 매주 빌보드 차트를 대신하는 자기 만의 팝 차트를 만들었고, 채널 2에서 AFKN 솔리드 골드를 시청하며
그의 방에는 아이언 메이든, 알이오 스피드웨건 등의 밴드 포스터와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그리고 올리비아 핫세의 책받침 사진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 때문에 우리가 석일이네 집으로 모인 것은 아니다.
- 오늘은 석일이네로 가자.
누구랄 것 없이 이렇게 결정이 나면 석일이는 항상 먼저 앞서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일기장을 숨기는 게 일이었고, 우리는 석일이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느릿장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석일이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보물찾기 하듯 그의 일기장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베아트리체도 그 일기장에서 발견한 이름이었다. 경은이 그러니까 베아트리체는 우리보다 세 살이 어렸다. 그녀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등부에 올라왔을 때 우리는 고등부로 옮겨야 했고, 삼 년 만에 그녀가 고등부로 올라오면 우리는 대학부 소속이 되어버렸다. 각각 모이는 요일과 시간대가 달랐고, 무엇을 해도 일정이 겹치는 일은 없었기에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그녀를 몰랐다.
무엇보다도 사진이나 그런 게 귀했던 시절이기에 그녀의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못했고, 지금처럼 SNS나 핸드폰이 없던 시절,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품과 정성을 팔아야만 했다. 그래서 석일이는 그녀의 정보에 항상 목말라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동생과 한 살 차이였고,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정보에 목말라하는 친구의 친한 친구 된 도리로써, 그리고 그러한 친구를 적당히 놀려 먹을 꿍꿍이를 품은 채 알아낸 정보를 흘기곤 했다. 석일이는 나를 통해 전달되는 내 동생의 정보에 때로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라거나 "에이, 그거 거짓말이지. 이젠 안 속는다."며 퉁명스러워지곤 했다.
그런데 고1이던 그해 여름수련회는 특이하게도 고등부가 3박 4일간의 일정을 마치기 전날 중등부가 같은 장소로 합류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중등부 학생들이 타고 온 교회 버스를 다음날 아침 고등부 학생들이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기사님 휴식 덕분에 하룻밤이 겹치는 대경사가 발생한 것이다.
나의 동생을 통해 베아트리체가 수련회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알게 된 석일이는 안절부절이었다. 그는 수련회에 가고 싶어 했다. 드디어 베아트리체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자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었지만 베아트리체가 있는 그곳에 무조건 같이 있고 싶었고 말이라도 한마디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석일이의 바람은 어머니를 넘어설 수 없었다.
석일이의 어머니는 단호했다. 어머니도 교회에 나가시지만 그런 곳에는 대학 가서 실컷 다닐 수 있으니 지금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해야 할 때였다. 덕분에 나도 온갖 의심스러운 눈총을 받으며 고1 여름방학은 대학 뺏지의 색깔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훈계의 말씀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그 여름에 고등학생을 태운 교회 버스는 강원도 철원으로 출발했고, 석일이는 남겨졌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나 또한 남겨져 있었다.
출사표 그리고 스탠 바이 미
버스는 떠났고 모든 기대는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지만,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가 출발한 다음날 석일이는 어머니께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집에서 탈출을 감행했다. 내가 남은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이미 사전에 탈출을 모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탈출 계획은 전부 내가 짰다. 버스 노선과 행선지 확인도 나의 몫이었고, 무엇보다도 석일이를 꼬셔서 실행에 옮기게 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석일이가 엄마에게 전해야 하는, 마치 공명의 출사표같이 단호하면서도 구구절절한 성명서(?)에 대한 조언도 내가 거들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내가 나쁜 놈이란 얘기다.
어머니께. 엄마의 염려와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제가 바라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식의 단호함과 엄마 때문에 가끔은 숨이 막힌다는 파격적인 내용도 포함되었었다. 물론 마지막은 밀린 공부는 다녀와서 반드시 채워놓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꼭 가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30번 버스를 타고 성북역까지 가서 상봉터미널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강원도 철원까지 가는 코스였다. 수련회와 같은 행사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던 브레이크 댄스 춤꾼 봉진이도 함께 했다. 작지만 큰 일탈이었다. 특히 석일이 어머니께서 느끼셨을 배신감과 절망감은 엄청나셨을 터였다. 이 대목을 떠올리면 어린 리버 피닉스 주연의 영화 '스탠 바이 미'가 연상되곤 한다. 어린 친구들 넷이서 작은 호기심으로 소문이 무성한 시체를 찾아 나서면서 겪는 이야기라는 점 말고는 별 연관도 없어 보이지만 그들처럼 작은 일상에서의 일탈이었고,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설렘, 그 모두를 아우르는 숨 가쁜 순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셋은 떠났다. 가는 내내 석일이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과 엄마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한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마음을 졸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 첫사랑 앞에서 부모님 생각해 주는 청춘이 어디 있더란 말이랴.
이래저래 저녁 늦은 시간에 수련회 장소에 겨우 도착했다. 사람들은 놀랐고, 수련회에 보호자로 동행하신 부모님 연배의 집사님, 권사님들은 우리를 위해 밥부터 한 상 차려주셨다.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우는 우리를 보고 걱정도 하시면서 대견해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수련회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수련회였던 모양이다. 아니 매년 여름에 수련회를 다녀왔기에 여러 기억이 혼재되어 정확히 그때의 기억인지 확실치 않다는 표현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베아트리체의 남자
인상적이지 못했든 기억이 섞였든 아무튼 저녁에 도착해서 다음날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튿날 베아트리체 일행 그러니까 중등부가 도착했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했던 날은 이날뿐이었으며 이제 내일이면 벌써 그녀를 두고 떠나야 한다. 사건은 그날 밤에 있었다. 당시 또래의 여자 아이들에게는 앙케이트라 하여 설문 돌리는 일이 유행이었다. 남자 애들의 답변을 듣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자기네끼리도 설문지는 작성되었다. 내용은 유치 찬란 그 자체였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만한 때 했던 고만고만한 일들인걸.
이를테면 이런 거다. 당신이 가장 아끼는 재산목록 1호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이성 간에 우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이런 시덥잖은 질문이 수십 개 이어진다. 그러다가 마지막쯤에 이런 질문이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당신이 남자라면 고등부 여학생 중에 관심이 가는 세 명을 순서대로 쓰시오. 당신이 여자라면 고등부 남학생 중에 관심이 가는 세 명을 순서대로 쓰시오.
우리는 여학생들의 이런 유치찬란 함에 혀를 차고 있었는데 봉진이가 의미심장한 아이디어를 던졌다. 이 설문을 베아트리체에게도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쾌재를 불렀고, 앙케이트를 주도하던 남숙이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중등부에도 이 설문을 함께 돌려보자고 했다. 그래서 베아트리체에게도 설문지를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베아트리체의 응답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의 선택은 우리보다 한 살 어린 지용이였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석일이는 3위였다. 석일이도 2위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3위는 기대 밖이었다. 다섯 명의 친구들 중에서 3명을 골랐기 때문에 나와 봉진이는 순위에 없었지만 봉진이와 나는 어차피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석일이는 달랐다. 사실상 그녀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소문이 났었는지 그래서 그녀도 석일이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석일이는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밝힌 적이 없고, 그녀가 석일이를 알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항상 철사에 매달아 놓은 불붙은 작은 십자가가 철사를 타고 내려와 큰 십자가에 옮겨 붙는 캠프 파이어가 있었고, 그해 수련회도 그랬겠지만 어쩐 일인지 기억에 없다. 물론 석일이에게는 가장 기대가 컸던 캠프 파이어의 시간이 악몽이 되어 버렸다. 석일이는 알이오 스피트웨건의 킾 더 파이어 버닝이란 노래에 맞춰 베아트리체와 함께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콘티를 짜놓고 자랑하기도 했었을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밤새 모닥불 주위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대학 얘기, 학교 얘기, 여자 얘기, 음악 얘기 등속의 얘기를 나누며 밤을 샜다. 그러곤 이튿날 아침, 꼬박 밤을 지샌 눈으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아픔을 묻고 버스에 올라탄 석일이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그래도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찾는 듯했다. 떠나는 고등부 형님 누나들을 중등부 동생들이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며 배웅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석일이는 이어폰을 꽂고 울고 있었다. 뒷바퀴가 튀어올라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야 하는 자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항거하고 달려온 길이었다. 오래된 친구들의 놀림반 부러움 반을 무릅쓰고 왔다. 나는 통로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석일이에게 가서 무슨 노래를 듣고 있냐고 물었다. 석일이는 말없이 왼쪽 이어폰을 빼서 나에게 주었다. 그때 석일이가 듣고 있던 노래가 Have+P.P의 현재완료형을 복습하게 하는 제목의 I've been away too long이었다. 딱히 건넬 말을 찾지 못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내 등뒤에 대고 석일이가 한마디 했다.
- 이제 공부할 거야.
그렇게 석일이의 첫사랑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석일이는 일기장을 숨기지 않았다. 더 이상 베아트리체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소피 마르소 사진이 늘긴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첫사랑조차 가져보지 못했다. 석일이처럼 순수하지도 못했고 석일이처럼 넉넉하지도 못했다.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으며 그 어떤 것도 나에게는 사치라고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언젠가 석일이네 집에서 I've been away too long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나는 석일이에게 말했다.
"어차피 단테도 싱클레어도 베아트리체의 남자는 아니었잖아"
하하하, 이걸 위로라고.
I've been away too long
George Baker Selection
How can I say to you
I love somebody new
You were so good to me always
And when I see your eyes
I can't go on with lies
It breaks your heart
But I just can't hide it, oh no
I, I've been away too long
Now I just can't go on
I've been away too
I, I've been away too long
No I can't feel so strong
I've been away too long
Don't look that way to me
It hurts you so I see
But I just can't go on with lie
I gave you all I had
So there is nothing left
I may be wrong
But I'd better go now, oh no
I, I've been away too long
Now I just can't go on
I've been away too
I, I've been away too long
No I can't feel so strong
I've been away too long
I've been away too long
음악은 이미지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 뿐만 아니라 공감각적 형태의 소스로 저장되었다가 재생될 때 다시 그 공감각적 형태로 기억을 소환한다. 우리는 이름하여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고, 나에게 추억은 음악을 틀면 활성화되는 이미지 파일들로 저장되어 있다. '그 남자의 음악다방'에서는 음악에 얽힌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추억의 이미지를 통해 소시민적 삶의 단면을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