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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Jun 30. 2024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70세부터 일 거야.

늦게라도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겠는가?




2024년 6월 어느 날


영국의 비스톤이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거의 3주를 묵었다. 경매와 라방 사이, 하루 날을 잡아 쉬었다.  한식당을 찾아가 불고기와 김치찌개도 먹고 모처럼 중심가를 거닐며 관광객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어슬렁 거렸다.


옥외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는데 화양연화란 단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말, 멋지다. 내가 지금 그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내가 이쁜 거 같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며 내 모습에 거리낌이 없다. 동시에  난 점점 더 괜찮아지다가 내 나이 70에  정점에 오를 거라는 기대와 확신이 생겼다. 아름다움의 관점도 행복에 대한 느낌도 온전히 내 기준에 맞춘 거다.


꽃 같던 젊은 시절, 왕성한 장년 시절 다 보낸 내가 이런 제목의 글을 쓰는 건, 지금이라도 이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진행되는 내 인생에게 "고맙다" 인사하고 싶어서다. 언제나, 어느 경우에든, 인생에서는 늦게라도 오는 것이 아예 오지 않는 것보다 나은 거니까.  




24년 3월 어느 날


일없이 늘어져 있던 순간들의 항복과 순종의 자세가 운명의 여신에게 이쁘게 가 닿았는지 난 지금 무지하게  바쁘게 일한다. 돈을 버느라 말이다.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단돈 만원이 아쉬워서 전전긍긍하던 지난달의 나는 도로를 달리는 게 부끄럽다고 아니, 위험하다고들 하는 폐차 직전의 기아 프라이드에 의지해 충청도 여기저기를 그리고 서울까지도 낯 두껍게 잘 돌아다녔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급한 빚부터 해결하고 나면 바로, 괜찮은 중고차 수배부터 할 거라고 벼르면서 말이다.


내 어린 날, 공부도 참 잘하고, 70년대 그 시절, 중학생임에도 돈도 제법 잘 벌었었는데... 도대체 지금 사는 꼴이 이게 뭔지... 쯧쯧. 생각할수록 기가 좀 막히긴 했다.


어쨌거나 요즘 나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 장사를 한다. 내 판단 착오의 상징 같았던 유럽 엔틱, 집안 구석구석에 쟁여놓은, 그 친구들을 조금씩 꺼내다 파는 거다. 매주 세 번씩이나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 가끔 믿기지가 않는다. 실패와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내게 주어지다니! 이건 기적이다. 축복이다. 몸은 너무너무 고달프지만 안도감과 희망으로 마음은 가볍고 이따금 벅찰 만큼 기쁘기도 하다. 실제로 급한 빚도 좀 갚았고 태가 좀 괜찮은 10년 된 기아 K7으로 차도 바꿨다.



24년 5월 어느 날


거의 2년 만에 아일랜드 집에 왔다. 잘 못 살아온 흔적이 갑작스레 너무 또렷이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적응기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요즘의 미친 장사꾼 좌판을 집안 곳곳에 펼쳐놓으며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으니 어느 정도 마찰은 불가피할 거라고 각오는 좀 했었다. 그래도 마찰이 충돌을 야기시키고 결국은 이전의 내 실수들을 다 끄집어 올릴 줄까지는 미처 예상 못했었다.


사실, 집안 상황이 어수선하기는 하다. 작년 가을께부터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는 삶의 끝점에 도달하신 듯, 하루가 다르게 몸과 정신이 스러져가신다.  효자인 남편은, 분주한 자기 일상에서도 어머니 챙기기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내 부탁까지 들어주느라 그야말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모양이다.  


잡(Job)과 잡 사이의 휴직 기를 거치느라 집에 와있는 딸은 평소에도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인데 근래 점점 더 날카롭게 서있는 것 같다. 아들과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못 하고 있다. 소통에 대한 기대를 잔뜩 하고 왔건만 도무지 그럴 짬을 못 내고 있는 거다. 촌각을 다투는 일거리에 치여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드디어 글제가 잡혔다는 아들은 디너리(Deanery: 대성당 사제의 사택)와 30분 거리에 있는 우리 개인 집에 틀어박혀 글 쓰느라 두문불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소통의 바람보다 더 크니까 이 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나를 달래고 있는 중이다.


충청도에서 혼자 있는 동안, 잊고 살았었나 보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내 공부만 하면서 살아왔는지, 그래서 내 딸과 아들이 엄마를 얼마나 많이 원망하고 있는지 말이다. 아니 마음 한 켠에 묻어놓고 불편한 맞닥뜨림마다 그럴듯한 합리화로 버텨온 거겠지.


이제는 합리화나 변명을 일삼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살 수도 없다.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틀짜기(Reframing) 시도가 내게서 빛을 잃은 지도 꽤 됐고, 무엇보다도 나의 남은 날들, 그 짧음에 대한 자각이 무섭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몸과 정신이 몰라보게 피폐해지신 시어머니 모습이 계기가 아닐까 싶다. 한 생명이 시나브로 스러져가는 걸 이렇게 가까이 지속적으로 목격한 적은 처음이니까.


시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은 내 삶의 끝 모습을 그리게 만들었다. 그 그림 끝에 딸려 나온 아주 엄청난 충동적 발작적 느낌! 무지하게 강렬하게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나로 살다 가야겠다는 소망이었다. 맞다. 이렇게 주어지는 대로 앞가림하느라 헉헉거리다 세상을 떠날 수는 없는 거다.


우선 실수와 실패들부터 인정해야겠다. 아주 깔끔하게. 아니다. 아예 지금까지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좀 억울하긴 하지만, 구질스런 재해석이나 구차스러운 설명 따위는 사절하기로, 변명이나 합리화는 멈추기로 한다.  그리고 일흔 살까지, 남은 한 3년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사는 거다. 이제까지의 삶에얻은 건 어디쯤엔가 그대로 놔두고, 처음 사는 거처럼 나 혼자 신선하게 삶을 대하는 거다.


그렇게 새롭게 초점 맞춰 살다 보면 난 더 바랄 게 없는 70세 여인이 되어 있을 거다. 자유와 행복 맘껏 누리며 세상에 있는 듯 없이, 없는 듯 있게 그렇게 살고 있을 거다. 내 삶 정점의 모습은 투명함이다. 나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 특히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이해와 공감을 구할 필요가 없는 삶 말이다. 그런 것들 없이도 난 그냥 든든하고 평온할 테니까.


막연히 그러나 속으로는 맹렬히 바라던 일이 실현 가능한 구체적 청사진으로 펼쳐지고 있다. 다시 시작한 엔틱 셀러의 분주한 날들이 그 준비를 가능케 해 줄 거 같다. 왜냐하면 난 엔틱홀릭의 멋과 신박한 스타일의 사업 센스를 접목시킬 거니까. 귀하고 예쁜 엔틱들을 착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좋은 장사꾼이 되면, 돈은 자연스럽게 벌릴 것이다.


그럼 빚을 갚기 시작하는 거다.   착한 채권자들, 내 오랜 학생들은 내가 돈 벌기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 예전의 내 판단 착오 아니 열정 과잉의 산물인 그 빚은, 이제, 이른 봄볕에 겨우내 쌓인 눈이 녹여지듯 슬금슬금 줄어들다가 종국에는 모두 없어지고 말 거다. 그러다 여태까지 공부하고 훈련받은 것들이 나도 모르게 내 삶 구석구석에서 저절로 구현되기라도 하면 내 속과 겉이 더불어 빛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난 홀가분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할 거다. 허세작렬일까 봐 아니 부정 탈까 봐 입 밖에 내놓지 못했던 내 미래를 감히 그려본다. 스스로 능력 갖추기만을 기다리며 늘 꿈만 꾸던 일인방송! 내 토크쇼 호스트가 되는 거다.


70세 이후의 나는 그렇게 방송을 하면서 멋지게 신나게 살 거다. 나이 들어가는 멋과 맛을 날마다 내게 일깨워주고 그걸 또 내 시청자들과 나누면서 물 흐르 듯 내 삶을 지속하는 거다. 쾌청하게 말이다. 핵심은 그런 멋과 의미가 찾아지는 방송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는 거겠지. 모두가 되뇌는 건강을 위한 행동지침을 따르는 게 또 다른 중요 과제일 게다. 늦게라도 해 보자. 아예 하지 않는 거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2024년 6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난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이 간단한 그러나 막무가내의 바람과 희망은 그야말로 생성되지도 않았을 테고 지속되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내 삶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거나 옹호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은 내게 빅뱅이었다. 내 자유와 독립의 근원이 되었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믿는 내 하나님은 완벽하시고 전지전능하시니까. 내가 말도 안 되는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진심으로 뇌우치고 용서를 구하면 받아주실 만큼 큰 존재시니까. 마구 응석을 부리고 떼를 써도 말이다.


내 생명의 창조주! 내 삶의 구세주! 그 존재를 믿으며 의지하며 꿈을 꾼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이제 곧 도래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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