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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Jul 08. 2024

브런치 글을 연재한다는 압박감은

일단 마무리 짓는, 초능력을 발휘케 한다.

여름으로 들어서는, 제법 날큰한(물러서 조금씩 늘어질 듯한) 한나절이었다. 닥터팍스 심리상담센터로 되어 있는 사업자 등록증에 앤틱그릇 도소매업을 추가하러 가는 길이었다.  동청주세무서 출장소가 다행히 증평군청에 나와있다.  괴산살이 거의 3년간 가장 많이 운전해 다니는 길이라 꽤나 익숙한데도 잔뜩 긴장이 됐다. 두 달 만에 하는 운전이니까, 게다가 아일랜드와 한국은 운전석이 서로의 반대쪽에 있고 주행 방향도 신호등 위치도 다  다르니까, 조심하는 게 맞긴 하다.


하나, 그건 겉 사정이고,  진짜 이유는 내 머릿속이 깔끔하지 않아서다. 연재 계획에 맞춰, 심리상담가와 앤틱 셀러의  연관성을 찾느라, 아니 만드느라, 두뇌 작용이 부산스럽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라방  준비도 그렇고 산처럼 쌓여있는 포장과 택배 물량에 압도되어 제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도 어려운 판에 도대체 무슨 덕을 보겠다고 호기롭게 글 연재를 시도하는 건지 스스로의 무모함에 기가 질릴 뿐이다.


내 본업은, 내면에 집중하며 자기를 돌볼 시간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사람들과,  지금 여기에서의 각자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겉모양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옛날 물건을, 그것도 유럽의 것들에 온통 홀려 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물에. 과거에, 나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산품에 다 쏟고 있는 거다.


이 총체적 반대 특성을 일상에 들여놓고 난해한 수수께끼 답을 찾듯 궁리에 궁리를 더 한다. 상관 고리를 만들고 걸맞은 에피소드도 끼워 넣으며 나의 두 세계를 연결시키려고 말이다. 모바일 키보드와 카메라 갤러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화면을 누비는 손가락은 여념이 없다. 읽는 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면 좋겠지만, 그건  언감생심이고, 그래도 브런치 연재 준비 과정은 최소한 나의 흐트러진 시선을 모으는 효과를 내긴 한다. 내가 쓰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그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말이다. 


뭣보다 고마운 건 일상의 감각 체험이 문자로 전환되는 거다. 기쁨을 만끽하는, 혹은 피로감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소리 없이 자꾸 쌓이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 순간들이 그냥 묻히지는 않는다.  


내가 명심해야 되는 건, 끝 가는 데를 알 수 없는 사유의 날갯짓이다. 그래서 모세혈관 같이 잘 짜인 항로, 그 궤도를 찾아내는 게 매 순간의  내 과업이다. 나에게는 말을 하다가, 글을 쓰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좀 있다. 보편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구성과 현실감 가득 담긴 어휘들을 찾는,  조탁(매끄럽게 다듬는)의 과정을 그래서 마다하지 않는다.


근래 세태의 흐름은 멀미 날 지경으로 그야말로 쾌속정 스피드로 파도타기 하는 거 같은데... 오랜 세월을 담은 앤틱의 맛과 멋에 풍덩 빠져 있는 얘기를 어찌해야 호감 생기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올드한, 클래식한, 백 년의 숨결을 품은, 낡고 닳은 것들에 품격을 부여하는 낱말이나 글귀를 찾아내면 브런치 작가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요행으로  깐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겉핥기는 필히 단명할 거다. 아무래도 내 일상에서 체득된  앤틱의 멋과 맛이 그윽하게 섬세하게 저절로 배어 나와야  되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내 일상사는 너무 투박하고 거칠다. 삶의 매 순간에  좀 더 여유와 격이 더해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어휘가, 표현을 취사 선택하는 촉수가, 더불어 날카롭고 섬세해지지 않을까? 그래야 쪼끔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기대와 변명을 동시에 한다. 글쓰기의 압박감을 내 어수선한 삶의 현장 탓으로 핑계 대는 비겁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그러다가도 앤틱 장인들의 기술과 헌신으로 위용을 뽐내는, 찬란한 앤틱 예술 작품들을 접했을 때 눈에 힘이 들어가는 걸 감지한다. 귀템이든 빈티지든 엔틱들과 함께 일상을 우아하게 엮어가는 앤틱러버들의 풍요로움을 엿보게 될 때 감성이 흘러넘치는 걸 느낄 수 있다. 원칙과 변칙을 오가며 과감하게 라방들을 해내는 앤틱 셀러들의 행보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의 용기와 성실함에는 감탄과 감동을 금할 수가 없다.


'이거야' 마음속 쾌재를 듣는 그 순간들을 포착해, 어떻게든 형용해 보려 두뇌 작용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려 한다. 시간 틈새마다 앤틱에 관한 글귀들을 살갑게 챙겨보는 건 이런 소망 때문 일 거다. 아마도 급조된 엔틱 셀러의 어설픔을 조금이나마 커버해 보려는 노력일 게다.


내 학생들을 만나던 날, 리 모두는 각자의, 서로의, 자기 작업에 심취해 내면 깊이깊이 무의식 속까지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아하! 모멘텀을 체험한다. 한 뼘 더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진  듯한 각자의 의식 세계를 가늠하며 뿌듯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는,  나는,  밤중에 이어지는 셀러들의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다. 또 놓친 방송들은 재방을 통해 본다. 말 그대로 홀딱  빠져 있는 거다.


그래서 찾아낸 절묘한 연관성 하나. 앤틱 세계든, 심리상담의 자기 작업이든 중독성이 강하다는 거다. 또랑또랑한 셀러들의 목소리나 낭랑한 수강생들의 목소리에는 나를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있다. 귓가에 울려 신기하게 나를 떨리게 한다.


자기 스타일들을 오롯이 가진 앤틱 셀러들과 앤틱 러버들과 그들의 대상인 앤틱들의 매력과 상담이론들과 기법들과 그것들을 활용하는 상담가들과 내담자들의 매력이 막상막하, 대동소이하다. 얼핏은 다른 세계 같지만 내게는 그저 나를 사로잡는 두 마력이다.


광부가 맥을 찾듯, 상담가로 앤틱셀러로 사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작업에 더 많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두 세계를 제대로 이을 수 있는 나만의 통합력을 키우기를 소망한다. 


우선은 어설프게라도 연재 약속 날짜는 맞췄으니 틈 날 때마다 들어와 거듭 수정해서 좀 나은 글이 되도록 해 볼 생각이다. 결국 브런치에 연재 글을 싣는 압박감은  "나중에... 제대로"의 내 자세를 "지금, 대충이라도"로 바꿔 결과물을 만나게 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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