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키 Jul 28. 2024

때론 실제 삶이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사람들이 진짜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구나.

뭐?...


1년 6개월?...


남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전하는 동생말 뒤에 되풀이 터져 나온 나의 외마디들, 아니, 갈라진 내 목소리의 연결음들이다.


담도암이라는데 수술도 치료도 할 수 없을 정도란다. 게다가 간이 다 망가져서 보통 사람의  거의 두 배 크기란다.


동생의 얘기를 직접 듣기 위해, 나의 요즘 미친 일정을 뒤로하고, 괴산에서 의정부까지, 단숨에 달려갔었다.  잔뜩 먹은 겁을 애써 누르며 듣고 있다가 쇳소리를 지른 거였다. 전화로 말하기가 좀 어렵다는 동생의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가  보다 싶긴 했지만 이건 최악의 최악이다.


"그렇대"


동생의 짧고 낮은 음들은 미세한 진동으로 공기를 가로질러 내 귓가로 와서 청천벽력의 괴력을 발휘했다. 순식간에 현실감을 앗아간다. 곧장 땅이 꺼지는 아뜩함에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내 몸과 함께 허공을 부유한다. 주변의 모든 물질이 무게를 잃는다.


리얼리티가 없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이런 일들은 일어날 수 없는 거니까. 생기면 안 되는 거니까.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모든 게 명징하게 드러난다. 생과 사의 갈림길, 동생이 호랑이 굴에 갇힌 거다. 나는  그 굴 입구 바깥에 바짝 붙어 서 있고. 동생은 생사 문제에 이렇게 예고도 없이 진짜 맞닥뜨려진 거다. 앙탈 부려서 될 일이 아니다.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준엄한 삶의 선고! 따질 수도, 항소할 수도 없겠지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방향을 돌리는  기도는 할 수 있다고 부드럽게 그러나 딴딴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말한다.


아니,  몸의 모든 세포가  명확히 만을 추구한다면, 죽음이 빌붙을 틈을 허용치 않는다면, 그러면 너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다 갈 수 있다고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선언한다.


의외로, 저항 1도 없이 동생이 같은 톤으로 동의한다.  힘 있는 목소리로 가볍게 응수한다. 죽음을 전제로 는 그 어떤 개념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신경전달물질의 전기적, 화학적, 자기적 무브먼트를 조절하는 모든 언어습득하겠다고 약속한다. 시각화 훈련도 함께 하겠다고 덧붙이면서.




동생의 인생이 좀 남다르기는 하다.  유별난 삶의 일정, 거의 모든 과정을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피붙이로, 함께 한 편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하더니 고등학교 졸업을 검정고시로 해내고 나보다 먼저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최연소 도의원이 되더니, 국회의원 선거를 두 번이나 치렀다. 대학교수 자리도 박차고 선거  준비하더니, 선거 빚만 잔뜩 지고 백수가 됐다,


끊임없이 온갖 일을 하며 버티더니, 결국은  별정직 고급 공무원이 되어 큰 기관에 장이 됐다.


동생은 그야말로 막판에 대박을 쳤다. 64세에 자기 인생의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허망한 꿈으로 날아간 인생이 아쉽긴 하지만, 동생은 이제야 비로소 인생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좀 알 거 같다고 했었다. 진솔하게 살고 싶다고 했었다. 최소한, 품위를 잃지는 않을 수 있어 좋다고 했었다.




얘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세상에 우리 남매뿐인데...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봐도 자꾸 손발이 떨리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아무 때나 예고 없이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특별한 기준도 없이 아무 거에나 반응하는 듯, 갑작스레 온몸으로  통증이 밀려온다.  


어떻게 정말 이런 일이?


월요일 낮에 소식 듣고 이틀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적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똘똘 뭉쳤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아뜩함에 온몸의 에너지가 방출됐다가... 그 긴장감과 허망함의 줄다리기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됐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됐다. 손이 겅중겅중 여기저기로 왔다 갔다 이거 들었다 저거 았다 한다.




목요일 오후 3시, 라방 중에,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던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양해를 구하고 라방을 중단했다.


누나. 암 아니래  무지하게 큰 돌이 담도를 막고 있대. 누나 간이식 수술 하지 않아도 된대.


세상에!

하나님!

이렇게 빨리 기적을!


그럼 기도한 대로,

약속드린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럴 거다.

동생이 죽다 살아났는데 뭔들 못할까?

이전 04화 배우며 훈련받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