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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 대표 Oct 22. 2021

천재가 될래? 좋은 남편이 될래?

고흐, 케네디, 아인슈타인… 천재였지만 좋은 남편이지는 못했다

ADHD는 빛만큼 그늘이 큰 질병이다.


인류에 큰 공헌을 한 ADHD 환자들은 대부분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하지 못했다.


고흐, 케네디, 아인슈타인… 이들은 일에 광적으로 미쳐 사랑하는 이들을 등한시하고, 분노인지 열정 일지 모를 화재에 삶을 연소시켰다. 아니 적어도 그런 오명에 휩싸였던 바 있다.  


그들의 모든 선택이 ADHD 때문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 종종 그들이 어떤 제어장치도 갖추지 못한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천재로 인정받고,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 또한 그래서였겠지만.


그런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면 그럴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가족이다.


이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유명하고 똘끼 있는 성공한 인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렇게 일에 미치거나, 여자에 미치거나, 도박에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력이든 유혹이든 나에게 자극을 주는 것에 미쳐서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 훤하다는 뜻이다.


실제 ‘아드레날린 중독자’로 통칭되는 많은 이들이 성공에 다다랐다가도 마약 중독, 섹스 중독, 도박 중독 등에 빠져 화려한 삶을 져버리고 만다.


그 무엇도 그들의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이해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으면 병 된다


어릴 땐 무조건 참았다.


화가 나더라도 무조건 참았고, 하기 싫더라도 무조건 참았다.


나의 참을성 문제를 크게 인식한 탓인지 방해가 될만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 때까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보이면 집중이 안돼서 누워서 눈을 감고 수업을 들었다.


연락이 잘 안 되는 친구가 있거나,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썸녀가 있으면 바로 연락을 끊었다.


방해 요소가 있으면 무엇이든 회피하는 쪽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술도, 담배도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댄 적이 없다.


심지어 부모님이 나를 귀찮게 한다는 생각에 몇 달간 연락을 끊고 잠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방해 요소를 없애고 참기만 한다고 모든 것이 나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근본적인 해결 없이 주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잦아졌다.


또 그런 일을 예방하려다가 분노가 많아지기도 했다.


화나는 일이 있고 나면 집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내 안의 욕구를 외면하고, 갈등을 회피하며, 부담감 속에 살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은 우등생이었고, 착한 아들이자,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이따금씩 분노를 참지 못해 아무도 없는 방바닥에 주먹을 내리꽂고는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닌 혼자가 됐을 때는 자주 지리멸렬함을 참지 못하고 무기력해졌다.


죽음을 생각하는 빈도가 아주 잦았고, 또래보다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었음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한 두 번씩 미끄러지거나, 실수를 할 때면 나를 지나치게 질책해서 마음에 파란 멍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그것이 ADHD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불면증으로 처음 정신과를 찾아갔고, 이후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을 이유로 약을 처방받아먹었다.


참으면 병 된다더니, 진짜 병이 됐다.


문제는 더 있었다.


나는 나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그만인 줄 알았다.


어릴 적 수없이 돌려봤던 동기부여 영상이나 자서전에 다 그렇게 쓰여있었다.


인생에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고, 모두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만연했다.


나는 이를 맹신했다.


운 좋게 이뤘던 성취들까지 더해져 일말의 의심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세상에는 단순한 노력만으로 고쳐지지 않는 오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인정해야 했다.


ADHD와 같은 향정신적 치료를 거치지 않으면 완치가 어렵다.


노력이 필요한 것도 맞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충분치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병원 방문, 정부기관 상담 등 의학적, 사회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필요한 용기였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지금껏 그런 용기가 없었다.


자만심과 우월감으로 가려진 나의 결함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고 애써 속여왔다.


더해 중독과 자극에 보상을 주는 현시대는 이를 악화시켰다.


노력으로 무엇이든 된다고 말하는 사회. 이뤄지지 못한 꿈에 노력 부족이라는 조롱과 멸시가 만연한 현실.


그 현실 속에서 나는 허우적댔다.


분명 노력하면 나의 오점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히려 노력으로 밀어붙였다.


중독이 될만한 모든 것을 멀리하고, 하기 싫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집중력을 늘려보려 몸을 묶고, 일상을 패턴화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효과가 없었다 할 순 없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어릴 적 고쳐지지 않은 ADHD 증상들이 고착화된 채 고통받고 있다.


어엿한 어른이자 직장인이 돼서도 말이다.


참으면 병이 된다. 일찍 인정하고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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