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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 대표 Jul 25. 2022

ADHD의 단편 소설

ADHD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사랑으로 채워져야 마땅한 사회는 때때로 처참하다.


홀로 남겨진 아이는 크리스마스를 저주한다.


오순도순 모여 선물상자를 열고 있을 세상이 싫다.


닫힌 입으로 하루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아이가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베르 까뮈는 '병자 있는 한 정상은 없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외톨이를 사랑해주어야 한다. 누군가는 문둥병 환자의 발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불가항력적 재앙에 감염되어 살아간다. 남을 향한 미움이던, 열등감이던, 배척이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사회가 때때로 악이라는 균으로 무너진다.


우울에 빠져 수척해진 마음은 쉽게 외면받는다. 아이는 깨진 유리창 같은 세상에 신물이 난다. 


헌법은 교화를 통해 사회를 정화하기를 희망하지만, 허무와 절망은 사회를 감염시킨다. 


1장

허무와 절망에 빠져 며칠을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생각은 무서운 것이었다.


작별 인사도 없이 아끼던 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떠났다. 


나는 매일 같이 후회를 세어 마음의 벽을 지었다. 누구도 아무도 아니게 될 때까지 숨고 싶었다.


더 이상 친구도, 가족도 필요 없었다. 어제도 그제도 엊그제와 다르지 않을 때까지 도망치고만 싶었다.


나 혼자만의 추악함을 견디기에도 버거웠다. 소중하지 않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겨왔다는 죄책감에 신음했다. 


사라진 것이 사라진 것조차 한참 후에야 알았다. 통장 잔고가 사라지고, 모아둔 명함이 사라지고, 아끼던 시계가 사라져도 수년을 몰랐다.


2장


모자이크라도 해둔 양 어렴풋하고 똑같은 원형의 사람들이 줄지었다. 자욱한 안개가 쓸려가듯 불분명한 것들이 떼 지었다.


가까이서 보니 옅은 회색의 마네킹 같기도 했고,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생물들 같기도 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얼굴이 없었다. 얼굴이 모두 블러 처리라도 된 듯 희미하게 동일했다. 


나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냈다. 실시간 뉴스, 검색어 순위. 그 많은 단어 중에도 사라진 얼굴 이야기를 찾았다.


하지만 사라진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올해 21살의 아이돌 그룹 멤버 A군. 30대 중반의 사기꾼 이 모 씨. 결혼을 앞둔 개그우먼 B 양.


누군가는 살이 쪘고. 많이 늙었고. 못생겼다고 했다. 누군가는 사기꾼 관상이었고, 걸러야 할 상이 었고, 꼴 보기 싫은 성괴라고 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이름은 서로를 응원하고, 지적하다가도. 상처받고. 다시 상처 주었다.


지하철 마네킹들은 그저 부직포 마냥 가지런히 서 핸드폰을 두드렸다. 조용히 두드렸다. 

그렇게 손은 이름을 애타게 하고 세상은 태평했다. 


20분 남짓 시간을 내색 없이 걸었다. 역을 빠져나와 얼굴 없는 이름들 사이로 회색 엘리베이터까지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천천히 숫자를 셌다. 누그러지지 않는 장황에 차가운 은색 봉을 움켜쥐고서 때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오른쪽 상단 화면에는 오늘도 베스트셀러 목록이 개시됐다. 언제나 두세 번째 칸에 쓰이던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오늘은 첫째 칸에 올랐다.


3층 헬스클럽이 보수공사로 3주간 쉰다는 소식이 지나가고 9층에 도착해 양쪽 문이 열렸다.

회사 문을 열고, 여느 때와 같이 인사 없이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이메일과 슬랙에 로그인하는 동안 부장님과 동료 몇몇은 어젯밤 드라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배우 얼굴에 대한 칭찬과 둘 중 아까운 사람이 누군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키보드를 눌렀다. 얼굴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조용히 있는다면 오늘도 탈 없이 지나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무사히 보내고 집에 가서 검색을 해볼 요량이었다.


망상을 겪는 것인지. 비슷한 증상을 겪게 되는 병이 있는지. 지난해 앓았던 공황장애가 연관이 있는지. 치료를 위해서는 어떤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지.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장


다섯 명이 타고 있던 차가 전복되고 홀로 살아남았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뒤를 돌아보던 순간 유리창의 파편들이 날아들었다.


통장도 만들지 않고 직업도 구하지 않았다.


의식주는 모아둔 돈과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가끔 외출이 고플 때 용산역에 가 기차 지나는 플랫폼에 앉았다.


주중에는 와이셔츠를 입고 주말에는 아디다스 바지를 입었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 사람들을 봤고 나가지 않는 날에는 영화를 봤다.


낮이 지나면 밤이 됐고, 밤이 지나면 낮이 됐다.


밥을 많이 먹은 날엔 속이 쓰렸지만 구역질을 해봐야 소용없었다.


불을 끄고 구겨진 이불 위에 누워 밤을 뒤척였다. 몸이 건조한 지 목덜미가 가려웠다.


스마트폰을 힘없이 쥐고 불법 도박사이트 광고. 추천인 코드. 그런 것들이 즐비한 곳들만 찾아다녔다.


어느 날은 십자가 모양으로 4등분 지어진 천장 중앙에 두 개의 형광등을 봤다. 


형광등은 깜박거렸다. 번갈아 깜박거리다 한꺼번에 꺼지고 다시 깜박거렸다.


나에게 남겨진 자극이 무엇이 있는지 되뇌었다. 게임을 해도, 자위를 해도 마땅히 자극적이지 않은 삶이었다.


깜박거리며 꺼지기만을 기다리는 삶이었다.


언제나 쉬운 결론을 내며 만태 했다.


두 손을 왼쪽 뺨 아래 하나씩 포개어 두고 어둠을 바라봤다.


오른쪽 창문으로 주황빛이 들었고, 꺼지듯이 잠에 들었고, 다시 일어나 천장을 보았다.

희망 가득한 인간으로 태어나 말라 잠들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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