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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D Sep 14. 2024

기회는 낯선 곳에 더 많을지도

낙관주의의 원동력

소도시에 온 지 어언 반년이 지나 행정복지센터에서 받은 전입 축하 공문을 제법 소중히 여기고 있다.

어디를 가든 그랬지만 올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전입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 새 주소를 좋아할 줄 알았다. 고용지원센터에 구직 급여를 신청하고 채용 분야별 담당자들께서 거의 이직 과외처럼 전화 연락을 해올 때는 확신했다. 이곳은 나만 마음 열면 좋은 기회가 있고, 만에 하나 내 자리가 회사에 없더라도 채용공고들을 꼼꼼히 읽으면 프로젝트성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인다. 당장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필요한 기술을 무료로 배울 수 있고 취업 관련 기관에 연락해서 무엇이든 제안하면 들어주는 직원도 계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눈에 보이는 기회가 몇 안 되니 오히려 하나씩 집중해서 확인할 수 있는 와중에 도전해 볼 만한 것이 꼭 있다.


비단 우리 도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일자리 문제 외에도 도와 시에서 제공하는 거주민 혜택 수준이 상상 이상이다. 지역 혜택으로 밀리지 않는 서울 소속일 때와 차이가 있다면 수도권 밖에는 나를 위한 혜택도 많다. 한 예로 서울은 돌볼 시민이 많아서 그런지 새로운 제도마다 최저 임금 이하의 소득 제한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구 십만이 넘는 도시에 와서 신규 전입자, 신혼부부, 예비 부모, 임산부, 신생아부터 고등학생 자녀, 청년으로 지역의 보살핌을 받으니 우리는 도시 시설과 복지를 모두 누릴 수 있다. 지금까지 실제로 사용해 본 혜택은 도서관에 희망 도서 신청하기와 도서 구입비 50% 지원이다. 대형 서점이 없어 허전한 마음을 이 혜택으로 위로받았다.


여기까지는 언젠가 아이 엄마가 될 계획을 고려한 내 시점이고, 반드시 기존 경력을 이을 회사에 입사해야겠다면 그것 또한 가능하다. 이곳은 서울과 반대로 구인난이 심각하다. 이곳에서도 괜찮은 기업들이 채용공고를 올리기 때문에 도전할 여지가 충분하고, 불합격한다면 주된 이유는 기혼 여부나 나이가 아닐 것이다. 이건 현지 회사를 다니면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비밀이다.


이런 말을 하기까지 무조건 일관되게 낙관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동물에 비유하자면 초식 쪽이고 서울 직장생활을 아무리 해도 전투력이 0에 가까운 울보였다면, 이곳은 외국에 갓 이민 온 사람처럼 특정 이유로(문과라서) 괜히 죄송해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의지가 질겨진다. 누가 부담 주지 않아도 쉬면 불안하고 회사 일 외에도 쉴 새 없이 사부작거리다가 지치면 혼자 동굴에 숨었다가 다시 달리는 일상을 반복하던 내가 새로운 세상에서 진로가 좁아지다 못해 사방이 장벽인 상황에 처하니 주저앉는 대신 두 눈이 맑아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술을 얻은 기분이다. 안 될 이유를 전부 밟고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밝은 부분들도 눈에 띈다.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 긍정은 공부나 체중 관리처럼 개인 의지이자 후천적 습관이다. 지금은 시작 단계를 날지만, 종국에는 긍정적인 사람이 최상위에 남는다고 믿는다. 다음 주 이후에는 혼인신고 반년 축하 공문을 받을 생각에 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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