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보자'봇
몇 년 전만 해도 성격이 소심하고 혼자 있기를 선호하다 보니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사고 소속된 곳마다 높은 분들 입에 오르내리다가 여러 번 회사를 옮겼다. 퇴근만 하면 몸져눕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기까지 거의 십 년 동안 직과 업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데, 익숙한 고통의 과정에서 기술 두 개를 습득했다. '다시 해보기'와 '모두에게 인사하기'다. 나 자신으로 임상실험한 결과, 이 두 가지를 습관으로 새기면 기운을 덜 써도 일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해보기'는 회사 면접 길에서 사용했다. 운전 연수를 고작 세 시간 받은 채로 25km 떨어진 산업단지 면접장까지 간 날이었다. 장난감이나 TV로 보던 대형 운송수단들을 가까이서 처음 본 충격도 뒤로하고 그 사이를 간담 서늘하게 달렸으니 안도의 숨을 막 쉬려는데, 면접장은 그곳이 아니고 방금 보내준 본사 주소로 와달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새 주소를 검색하자 내비게이션은 13km 밖 다른 산업단지 목적지를 띄웠다. 이 상황은 채용 공고문에 쓰인 주소로 의심 없이 온 면접자의 책임도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지금 당장 운전 실력과 담력에는 그 대가가 가혹하지 않나 생각하는 바 이게 뭐라고 이번 면접은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한 심정을 답장에 입력했다.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 오늘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기회가 다시 주어질 수 있다면 면접일을 다시 정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창피함은 순간이다. 정정한다. 이제 위에서 말한 본사 주소로 매일 출근하면서 회사 분들께 왕초보 운전이라고 놀림받는다. 창피함은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남기도 한다.
'모두에게 인사하기'는 입사 후에 사용했다. 인사는 사실 누구를 의식한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몸에 익어서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고개를 숙인다. 관건은 그냥 인사가 아닌 미소를 동반한 진심 어린 인사라는 점이다. 내향인이라면 여기부터 어폐가 있다. 말하기 준비운동 없이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호감도와 무관하게 입이 안 떨어질 텐데 미소와 영혼까지 담으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내 경우는 이 증상을 일찍이 발견해 근력 운동처럼 소리 내기 연습을 하고 출근한 지 10년이다. 그렇게 건물 하나에 수천 명이 출입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던 세상이 전부인 줄로 알다가 새 지역에 오니 어떤 분은 다가가서 인사해도 안 봐주시거나 눈을 마주쳐도 그냥 지나가시는 등 다양한 반응으로 인사를 어색해하는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럴 땐 '다시 해보기'를 꺼낸다. 인사를 건넨 다음은 받아들이는 상대의 몫이고 내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상대도 인사가 익숙해지면 서서히 마음을 여시겠지 하고 개의치 않았다. 이마저도 괜한 생각이었는지 한 주쯤 지나자 나는 다른 부서 분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괜찮은 회사를 만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