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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심 Jun 16. 2024

인문계 출신에게 공업 도시란

연신 문송합니다

내 꿈은 임종 한 달 전까지 사회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서울보다 회사 수가 적은 지역에 왔다고 집안일만 하면서 여생을 보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국내총생산 금액을 지역별로 나눴을 때 우리 도시가 주변 지역의 두 배 이상이니 이런 곳에 내 자리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제 차도 있겠다, 구직 지역을 주변 도시들까지 넓혀 호기롭게 구인 공고를 목록화했다. 그렇게 인생 2막의 두 번째 장벽과 마주하기까지는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자격요건: 기계/자동차/신소재/우주항공/기타 이공계열'

'우대조건: 지게차 운전 가능자'


사업 팀, 연구 팀, 영업 팀, 프로젝트 팀 경력 직원 채용공고 내용이다. 이 정도면 인문계 출신만 아니면 된다는 의미다. 우대조건에 지게차 운전은 잘못 본 줄 알았다. 이제는 업무 능력에 대형 차량 운전이 왜 필요한지 알지만, 지금은 공업 도시에서 인문계 출신이 취업하는 이야기를 쓰는 중이니 나중에 적어야겠다. 공업 도시답게 인문계 출신은 사업지원, 사무보조, 경영지원, 회계, 총무로 불리는 분야 위주로 지원 가능했다. 그 와중에 CAD 프로그램 사용이 필수인 보직은 내 지원 목록에서 제외다. 취업지원센터에서 구직급여 신청하던 날 여성 대상 CAD 무료 교육과정을 제안받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종합해 보면 이 지역에서 인문계 역할은 대개 이공계를 지원하는 일이고, 연봉 협상은 언감생심이며 취직이 되면 감사한 입장이다.

나는 몇 년 전 경쟁률이 만 대 일까지도 가던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슬기롭게 입사 지원하는 법을 배웠다. 새 기업에 입사하면 특정 연차까지는 큰 차이 없으니 연차가 부족해도 신입 아닌 경력직 공고만 올라왔으면 일단 지원한다. 특정 요건이 부족해도 일단 지원해서 눈에 띈 다음 입사 후에 남들보다 많이 노력하면 된다. 합격한 선배들에게 공통으로 들은 조언이고,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치열한 방송국 입사를 포기했을 때 대기업에는 수월히 합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새겼다. 그때를 기억하면서 시선을 돌리니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인문계열 채용 공고들 중에 지원할 만한 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딱 감고 입사지원서를 보냈더니 두 곳에서 면접 제안이 왔고, 대답할 수 없는 이공계식 질문들에 한없이 작아지는 면접 자리를 넘겼다.

결과는 '최종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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