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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D Jun 23. 2024

그래서 얼마나 소도시인데?

수달 출현 지역

하루는 남편이 내 일지를 힐끔 보다가 '여기가 어떻게 소도시예요.......'라고 말했고, 목차에는 '그래서 얼마나 소도시인데?'가 추가됐다.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대한민국 대표 공업도시 중 하나인 이곳을 갓 전입한 병아리 시민이 '소도시'라고 부르는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소도시는 일종의 애칭으로 부정적인 감정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단순히 관련 법과 유관기관의 기준을 따랐다. 도시정비법에 의하면 인구 오십만 이상 지역은 대도시로 구분되고, 오십만 미만의 중소도시들을 국토연구원에서는 다시 십만 단위로 분류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도시의 인구 십이만은 소도시 쪽으로 기운다. 인구를 배제하더라도 우리 시는 도시 안에 읍도 있는데 우리 동은 시와 읍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집 앞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수달의 출현 지역이 있다. 이 정도면 우리 지역을 소도시라고 부르기 시작한 동기를 귀엽고 소중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기가 얼마나 소도시인지 수도권 친구들은 하나같이 묻는다.

갑자기 법령을 운운하면서 위에 쓴 답은 우리 부부에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친구들에게 돌아갈 답은 대도시와 소도시의 '감성적인' 차이일 것이다. 주변 환경을 인지하는 데에 신경이 둔한 편이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힘을 내 생각하려고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런 기습 질문을 받으면 매번 멈칫한다. 최근에도 '조용해서 좋아.'라고 재미없게 대답을 마친 다음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틈틈이 다채롭게 즐거운데, 하나도 표현 못하고 지나 보내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 생각도 잠시 후 머릿속을 떠나 분해되고 같은 질문을 받으면 또 같은 생각을 하는 식이 지난 한 달 동안 무한히 반복됐다.


소도시를 대도시와 비교했을 때 정성적인, 그러니까 감성적인 차이는 끝이 없다.

며칠 전에 퇴근해서 저녁 먹고 쉬다가 수도권에 사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같은 시각에 퇴근길이었고 간선도로를 시속 30km 이하로 달리는 중에 기분이 째져서 연락했다고 한다. 물론 반어법이다. 수도권은 출퇴근길에 운전하려면 간선도로든지 고속도로든지 달린다고 하기 민망한 속력으로 갈 각오를 해야 하고 심하면 길 한가운데에 서기도 한다. 그렇게 귀가하면 두 시간은 우습게 지난다. 한편, 소도시 사는 이날의 나는 평소에 시속 80km로 달리던 퇴근길을 이날따라 60km로 달리게 되어 '어떤 특별한 이유로 길이 꽉 막혔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는 왠지 실례지만 소도시가 대체로 정신건강에 좋다.


소도시가 주는 또 다른 감성은 생활시설과 문화시설 분포에 있다.

먼저 내 주거래 은행은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데, 최근에 은행 방문할 일이 생겨서 지도를 보니 우리 도시에는 지점이 하나도 없고 옆 도시에서 딱 하나 찾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도시에서는 의식주만 해결하고 입사지원서를 제출하는 회사들의 소재지도 모두 주변 도시, 나들이를 갈 때도 주변 도시다. 이 일상이 점점 마음에 들고 멋지게 느껴진다. 프로펠러에 매달린 사람처럼 모든 일상을 서울 안에서 돌다가 이제 집 앞 마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게 되니 외출은 모험 또는 수행과 같은 개념이고 집은 군더더기 없는 '쉼'의 청정구역으로 자리 잡혔다. 이런 일상의 경계로는 예시가 와닿지 않는다면, 퇴근 후에 지역 경계선을 넘어 우리 집에 돌아오면 업무와 선을 긋고 쉬게 되는 효과도 있다. 외부 압력에서 완연히 벗어나 저녁을 보내고 나면 다음날 힘내서 다시 출근할 수 있다.


말하다 보니 주변 환경 변화는 내게 별 문제가 아닌가 보다. 나는 늘 내가 속한 곳의 편이어서 서울은 서울 대로 좋았고 지금 이곳은 이곳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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