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참된 철학이 필요합니다
(플라톤) 드디어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게 됐군요. 내가 처음 말한 것처럼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문제가 많습니다. 민주주의는 좋은 정치 체제가 아닙니다. 이 체제에서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지도자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시민의 욕망이 국가를 끌고 가는 체제입니다. 지도자는 시민의 욕망을 자극하고 선동하기만 할 뿐,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관심이 두지 않습니다. 마치 욕망이 마부가 되어 마차를 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의 영혼이 욕망, 기개, 이성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했지요. 국가도 세 부분의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가에서 욕망에 해당하는 계급은 생산 계급입니다. 농부, 상인, 장인과 같은 사람들이죠. 사실 국가가 생긴 이유는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인간의 경제적 욕구를 더 채우기 위한 기술과 분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산을 위한 직업이 다양하게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개인과 국가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수호 계급이 생깁니다. 기개를 담당하는 계급이 수호 계급입니다. 군인들과 공무원들이죠. 그리고 그들 중에 국가를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통치 계급이 생겨납니다. 국가 지도자들, 정치인입니다. 바로 이들이 이성의 역할을 합니다. 영혼의 각 부분이 제 기능을 잘 발휘해야 개인이 건강하고 탁월해지듯이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국가는 이 세 계급의 조화를 의미하며, 그 조화를 책임지는 계급이 이성에 해당하는 통치 계급입니다. 눈에 보이는 국가는 불완전한 국가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으로 완전한 국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좋은 국가의 모델을 제시하는 이유입니다.
(필로) 좋은 국가가 무엇인지 제시한 철학자는 처음인 것 같아요.
(소피) 계급을 누가 정해주는 건가요? 아니면, 자기가 원하면 할 수 있는 건가요? 원하지 않는데 농부나 상인으로 살라고 하면 싫을 것 같은데요.
(플라톤) 교육으로 계급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가가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우선 10세부터 19세까지 음악, 체육, 문학, 수학 그리고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19세가 되면 상위 과정에 들어갈 아이들을 선발합니다. 선발되지 않은 학생들은 생산 계급이 됩니다.
(필로) 지도자의 자녀가 상위 과정에 선발되지 않으면 어쩌죠?
(플라톤) 동정의 여지는 없습니다. 부모의 계급은 자녀에게 상속되지 않습니다.
(데오) 여자아이는요?
(플라톤) 여자아이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아이는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상위 과정에서는 고등 수학과 천문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리고 30세가 되면 다시 그보다 상위 과정을 익힐 사람을 선발합니다. 탈락한 사람은 수호 계급이 되고요. 30세부터는 통치 계급이 되기 위한 과정을 시작합니다. 통치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합니다. 35세가 되면 15년 동안 공공 기관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50세가 되면 통치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죠. 그들 중 가장 유능한 사람이 국가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소피) 아버지가 왕이라고 아들이 왕이 되지는 않겠네요. 좋은데요!
(필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철학을 익히는 것이 필수라니. 나도 철학 공부를 시작했으니 정치판에 한 번…….
(소피) 실무 경험부터 쌓아야 하지 않을까요?
(필로) 현대 철학까지 공부한 후 공무원 시험을 쳐볼까요?
(소피) 프로그래머 그만두고, 공무원 생활 15년 시작인가요?
(플라톤) 철학은 정의가 무엇인지, 올바른 국가가 무엇인지 탐구합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국가를 통치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소피스트와 같은 이들이 수사학을 가르쳐서 정치인을 길러내는 아테네의 현실을 내가 갑갑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이데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시적인 세계에만 몰두하는 시인들이나 예술가들도 통치 계급에서 빠져야 합니다. 철학자가 정치 권력을 획득하든 정치 지도자가 철학자가 되든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참된 철학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영혼에 있어서 이성이 마부가 되어 기개와 욕망의 두 말을 이끌듯이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이 국가를 이끌어야 합니다. 기개와 욕망이 마차를 이끌게 해서는 안 되듯이 생산 계급이나 수호 계급이 국가를 이끌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필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러한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철학자도 권력을 쟁취하면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플라톤) 그러니 그들에게는 사적인 재산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도 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소피) 결혼을 못 하게 한다고요?
(플라톤) 정확히 말하면 특히 수호 계급 전체가 공동의 부부관계, 하나의 가족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모르게 하여 공동으로 양육하고, 모두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게 해야 합니다.
(소피) 네!?
(플라톤)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국가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드는 일을 벌이지 않게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사심을 품을 만한 틈을 주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의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개인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공적인 업무를 그르칩니다.
(소피) 이렇게만 된다면 정치인들이 욕심을 못 부리겠네요. 우리나라도 플라톤이 말한 대로 국가를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데오)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할 수 없고, 누가 내 아이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게.
(플라톤) 이성을 국가의 지도자로 세우려는 조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테네처럼 욕망에 지배받는 사람들이 국가의 지도자가 될 것이고, 그 결과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겠지요. 소크라테스만 죽겠습니까? 그런 국가에서는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고,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국가를 세울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플라톤 퇴장]
(필로) 플라톤의 관심은 방대했네요. 존재로부터 시작해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철학과 달리 잘 짜여진 프로그램 같기도 하고 장엄한 건물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플라톤을 만난 각자의 소감을 나눠볼까요? 존재론, 윤리학, 정치철학을 나눠서 이야기해봐도 좋겠습니다.
(필로) 만물은 수라고 이야기한 피타고라스와 제가 좋아했던 고르기아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그럴듯해 보였고요. 제법 완성된 철학 이론을 제시하는 듯해 놀라웠어요. 하지만 ‘이데아’ 이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이야 받아들였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요?
윤리학에서 영혼의 세 부분이 제 기능을 실현할 때 인간의 탁월함이 발현된다는 이야기도 좋게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훌륭한 인간이니, 이성적인 인간이니 하는 이야기를 반기지 않고 자기가 내키는 대로 살고 싶어 하잖아요. 하지만 인간이라면 이성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할 때는 별 감동이 없었는데 플라톤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감동했습니다.
정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스갯소리로 저도 정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지만,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아요. 철학자가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위험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인에게 권력을 맡기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가 그냥 생긴 게 아니지 않습니까.
(데오)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 같아요. 전형적인 철학자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이데아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어요. 제가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요? 예술을 나쁘게 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예술을 통해 얼마든지 영원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플라톤도 소크라테스처럼 아는 것의 힘을 믿는 사람처럼 보여요. 이성의 힘, 생각의 힘, 합리성의 힘을 강조하더라고요. 그러나 아는 것이 선이고 무지는 악이라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플라톤의 이야기가 이게 전부는 아닐 것 같아요.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인간답게 살려고 한 것 같아서 그건 멋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요.
‘어리다’는 말이 원래는 ‘어리석다’는 뜻만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나이가 적다’는 의미가 함께 쓰였대요. 그러다가 ‘어리다’는 ‘나이가 적다’는 의미로만 남게 되고, ‘어리석다’는 의미는 ‘어리석다’는 말에게 넘겨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리다’는 말에서 ‘어리석다’는 의미가 빠진 것이죠. 어린 나이를 어리석음의 핑곗거리로 삼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하곤 했어요. 어리더라도 어리석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해요. 그래야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으니까요. ‘어리석다’의 ‘석다’가 적다는 뜻이래요. ‘어리석다’는 말은 ‘나이가 적다’에 ‘적다’는 뜻이 한 번 더 덧붙여진 말인 거예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비하면 저는 어리석기만 한 것 같아요. 나이를 많이 먹어서 어리지는 않지만 어리석기는 한 것 같아요.
(소피) 거참, 낙심하기에는 아직 어려요! 나는 그 나이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름밖에 몰랐어요.
(데오) 위로의 말씀 감사해요. 아, 플라톤의 정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죠. 플라톤이 군대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국가가 하는 일 중에 군대가 그렇게 중요한지 생각해보질 못했거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군대가 정말 중요하긴 하겠구나 했는데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어요. 꼭 군대가 있어야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요. 그렇지만 플라톤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기후가 위기라고 해도 국가는 계속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군대 없는 국가는 없잖아요. 하지만 좋은 국가를 이야기한 플라톤이 무색해지게 현실에서 좋은 국가를 보긴 어려운 것 같아요.
(소피) 그러니까요. 플라톤은 허황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까요. 소피스트들은 굉장히 현실적이었는데……. 소크라테스도 이 정도는 아니고요. 이데아는 도대체 뭔지, 저는 아직도 납득이 되질 않더라고요. 스마트폰의 이데아가 있을까요?
그래도 윤리 이야기는 꽤 도움이 됐어요. 이성을 잘 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무지가 곧 악이다’는 말은 납득할 수 없었어요. 똑똑한 사람들도 나쁜 짓을 하잖아요. 똑똑한 사람들은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나쁜 짓을 한다고요. 선량한 사람들만 당하죠. 트라시마코스가 말한 것처럼 법은 똑똑하고 가진 자를 위해 존재해요. 그러니까 평범한 우리가 지면 안 돼요. 같이 밟아야 해요.
저는 정치는 잘 몰라요. 관심을 가져본 적도 별로 없고요.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이상적이긴 하지만 플라톤이 이야기한 대로 정치를 한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플라톤과 같은 이상주의자 때문에 역사를 거치면서 정치가 발전해온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현실은 완벽히 이상적이진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