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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zie Kim Jul 12. 2023

영국에서 살 아이의 한국어 이름 짓기

바이링구얼로 아이 키우기

임신 기간 동안 가장 설레면서도 머리 아픈 일은 아이 이름을 짓는 일이 아닐까. 나는 이름 짓는 일에 전혀 재능이 없다. 그런 쪽으로는 센스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영국 남편과 한국인 아내에겐 선택의 폭이 너무 많았다. 한국어 이름, 영어 이름, 혹은 전혀 어느 나라의 언어도 아닌 이름.


요즘은 한국 이름도 영어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짓는 것이 대세라고 들었다. 받침이 없고, 센 소리나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모음(ㅑ, ㅕ, ㅠ, ㅡ)을 제외하는 이름들이 인기가 많다. 그리고 나중에 영어 학원이라도 다니게 되면 아이들에게 영어 이름 하나씩 만들어 준다고들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 살 아이는 당연히 제인, 리사, 엘리 같은 영어 이름을 써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발음하기 쉽고 많이들 하는 이름들보다는 조금 어감이 특이한 이름을 짓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이다. 특히 어머니 쪽이 아일랜드나 웨일스 쪽일 경우  읽기 힘들고 발음이 어려운 이름일 경우가 제법 많다. 영국의 ‘산전 육아 교실’에서 만난 영국 아일랜드 커플은 첫째 딸아이를 Ailbhe라고 지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몰라서 축하 메세지를 보내는데 한참 애를 먹었다. (나중에 발음을 ‘Alva’로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 이름을 본격적으로 지으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중립적인  느낌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한국어로 들리기도 하고, 영어로 들릴 수도 있고, 아님 둘 다 아닌, 나중에 두 문화권에서 동시에 살아가야 할 아이의 정체성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찾아낸 이름이 ‘하나’였다. 영어로 ‘Hannah’로 가능하고 한글로도 예쁜 이름이다. 또 인도 문화권, 아랍 문화권, 유대인 문화권 그리고 심지어 아프리카 문화권에서도 ‘하나’라는 이름을 쓴다. 하지만 남편의 취향은 달랐다. 남편은 ‘태희’라는 이름을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했다. 너무 한국적인 거 아냐?라고 물어봤지만 영어권에서 발음했을 때에도 음절의 소리가 예쁘게 들리고, 티읕의 발음이 특히나 강한 어감이라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이름이라고 날 설득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지나’ ‘유라’ ‘시아’ ‘세나’ 이런 최신 느낌의 이름을 갖다 줘도 남편은 요지 부동이었다. 긴 6개월 동안 계속해서 이름을 검색해서 날마다 새로운 이름을 보여줬지만, 결국은 남편의 개인적인 취향의 이유로 ‘태희’로 아기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면 100% 유명 여자 연예인을 떠올릴 이름. 하지만 나도 점차 이름의 뜻 - 큰 기쁨 -이 마음에 들기 시작해서 우리 둘은 그렇게 아기 이름에 합의를 했다.




한국어 이름을 발음 못하는 한국인 엄마


하지만  이름 때문에 나는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이유는 처음 내가 ‘태희라고 아기 이름을 발음했을  열이면 , 영국 사람들이 ‘케이 알아들었다. 오히려 영국인 남편이 ‘태희라고 하면  알아 들었다. 그것은 한국의 ‘모음과 영어의 [ae] 발음이 미묘하게 다르고,  한국인들의 두음법칙 때문인지 내가 발음하는티 키읔에  가깝게 들려서다.


한국인 엄마가 딸의 한국 이름의 발음을 못해 영국인들이 알아들 수 있도록 영국식 모음으로 발음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5개월 정도는 남편에게 아이 이름을 말하게 시켰다. 내가 이름을 말할 때마다 몇 번이 곤 다시 물어보며 곤혹스러워하는 영국인들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다. 아기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남편을 쳐다보면서 도움을 청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이 빵 터졌다. ‘너 네 아기 이름은 알고 있니?’


나중에는 처음 모음을 길게 늘어뜨려 ‘태에히’라고 발음하는 법을 익혔지만 한국 이름을 한국식으로 발음 못하는 것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었다.



한국에선 미들네임이 없잖아요


서양권에선 미들네임이 무슨 의미일까? 보통은 주위의 고마우신 분들이나 아이의 삶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뜻깊은 의미의 이름들을 미들 네임으로 넣는다. 보통은 할머니 할아버지나 주위의 친척들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다.

우리처럼 다문화 커플일 경우에는 엄마 아빠의 성을 붙여서 새로운 성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예를 들어, 아빠의 성이 John이고 엄마의 성이 Lee였을 경우, 아이의 성을 John-Lee라고 새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최근에는 많다.) 아니만 부모의 한쪽의 성을 미들네임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내 성을 아이의 미들네임으로 넣기로 했다.( 내 성이 김 씨인데, 아이 이름이 태희여서 성까지 김 씨이면 정말 곤란하다…)

그렇게 아이의 이름을 정한 후, 한국에 출생 신고를 하러 갔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는 미들네임이 (당연히) 없고, 미들네임까지 출생신고서에 기재를 하면, 미들네임까지 이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한국에서 우리 아이의 공식적인 이름은 ‘태희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유명 여자 배우가 나중에 은퇴하고 론칭할법한 조미김 상표 이름의 느낌이 난다.


짧은 고민 끝에 아이의 미들네임은 그냥 빼로 신고하기로 하고 아이 이름 짓기 미션은 이렇게 영국과 한국에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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