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부하 직원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Sales 하자.
Unsung Hero라는 말이 있다. 보통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팀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팀에서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선수(박지성 선수가 Man. Utd. 의 Unsung Hero라고 소개된 적이 있었음)이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승리와 연관된 기록을 쌓는 것이 곧 연봉 상승과 직결됨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기록과 무관한 역할(상대편 공격수를 저지하기 위한 협력 수비를 하거나, 빈 공간을 침투하여 수비수를 교란하는 등의 역할)을 지시받으면 싫어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동료 감독과 선수들은 안다. 누군가가 이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팀에 큰 도움이 되는지를.
만화 슬램덩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북산고 주장 채치수는 동일 매치업인 신현철과의 대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월등한 실력자인 신현철 앞에서 채치수는 무리수를 던지면서 자멸하고 있었다. 그런 채치수 앞에 변덕규 - 1차전에서 채치수에게 패한 능남고의 에이스 – 가 나타났다. 그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다가 무너지고 있던 채치수 앞에 (무려 경기장에 칼을 들고 난입하여) 무채를 깎으면서 등장한다. (변덕규는 농구를 포기하고, 집안의 가업을 이어 요리사가 되기로 한 상태였다) 변덕규가 채치수에게 무를 깎으며 건넨 말은 아래와 같았다.
“신현철은 화려한 도미다. 네게 도미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너는 가자미다. 진흙투성이가 되어라. 채치수!”
팀을 위해서 직접 득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승리를 위해서 궂은일과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프로 스포츠가 아닌 직장 생활에서도 Unsung Hero가 인정받을까?
프로 스포츠는 인정을 받는 체계가 상대적으로 투명하다. (다만 인정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어려울 뿐이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누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가 잘 보인다. 그리고, 누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적게는 몇천 명 많게는 몇십만 명이 스포츠 중계, SNS 등을 통해서 보고 있다. 이렇게 과정을 보는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므로 특정 선수가 Unsung Hero 역할을 통해 팀 승리에 기여하면 구단주는 물론 대중들이 모를 리 없다. 팀의 존립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대중들의 지지는 100% 그 선수의 평판으로 전환되며, 때로는 나비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회사는 위와 같은 메커니즘이 성립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내가 Unsung Hero의 역할을 자처한다 한들 회사는 대중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프로 스포츠 경기로 치면 무관중, 무중계 경기를 하고 있고, 구단주조차 경기를 보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Unsung Hero의 역할을 한다 한들 그 역할을 지지해주는 세력이 없으므로, 평판으로 이어질 수 없다. ‘저 친구가 잘 도와줬습니다’ 정도의 의견을 들을 뿐이다. Unsung Hero로 회사에서 희생한다 한들 현실적으로 나의 평가에 도움 될 것이 없다. (직장에서의 논공행상은 진짜 일한 사람을 가려내기보다는 조직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 직접 겪었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A라는 조직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 B, C라는 세 조직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실질적 기여도는 A 20%, B 30%, C 50% 정도였다. 심지어 C라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R&R을 따지지 않고, 필요하면 A, B의 역할도 해가며 전방위로 활약했었다. 프로젝트는 성공하였고,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조직 A는 프로젝트의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논리로 A 40%, B 30%, C 30%로 기여율을 임의로 몰래 조정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C라는 조직의 리더는 이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수용하였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 1년 넘게 열심히 일했던 구성원 두 명 중 한 명만 포상을 받게 되었고, 나머지 한 구성원은 엄청난 기대치 실망 효과로 인해 업무를 변경하였다.
자기 조직의 구성원이 비자발적으로 다른 조직에서 Unsung Hero의 역할을 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리더는 자신이 맡은 조직 전체의 성과를 책임지는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역할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일한 만큼 조직이 평가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생활에서 하는 일은 모두 일종의 심리적 직무 계약이다. 즉, 시키는 사람(조직)은 실적을 기대하고, 하는 사람(개인)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기대하는 암묵적인 계약이다. 문제는 조직과 개인의 이 암묵적 계약이 일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즉, 조직의 성과가 충족되어도 개인의 성과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인과 관계를 따지는 과정이 부족하며, 이에 대한 의사소통도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개인은 심리적 계약 불이행에 대한 기대치 위반 효과를 겪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전무하다.
'거부 민감성'이란 대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부 상황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수동적으로 타인의 요청을 계속 받아들이는 성향이다. 리더들은 이 거부 민감성이 항상 높은 상태이다. 항상 평가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임원의 지시에 반기를 들면 자신과 자신의 조직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불합리한 지시 사항이 있어도 거절하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성과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즉, 심리적 계약 불이행 상태가 되어도 항변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심리적 계약(契約)이 아니고 심리적 늑약(勒約)이다. ‘아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라고 생각이 들어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그동안 열심히 참고 참아서 만들어놓은 좋은 이미지를 한꺼번에 무너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의욕이 사라진 상태로 거절하지 못한 업무를 위해 형식적인 지시만 하는 상태가 된다. 당연히 이런 지시를 받는 부하 직원들이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리더들 스스로 높은 거부 민감성 때문에 무조건 YES를 외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한다. 조건 없는 복종은 리더 자신의 동기 부여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 또한,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업무 지시로 인해 부하 직원까지 영향을 끼쳐 조직 전체가 냉소주의에 빠져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가는 자신의 조직이 망가질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조직의 구성원이 비자발적으로 Unsung Hero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있다. 리더는 이 상황에서 부하 직원이 호구로 전락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인정과 격려는 물론이거니와 상위 조직 전체 혹은 임원들에게 구성원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Sales 해야 한다. 이런 시도가 100%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구성원은 우리 리더가 나를 위해서 노력해주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과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물론 성과에 대한 Sales가 완벽히 성공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리더로서 Unsung Hero의 역할을 맡아야 할 때도 이 역할을 통해서 자신의 조직 전체의 성과로 Sales 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만일 성과로 만들어낼 수 없다면, 과감히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성과도 나지 않는 업무에 부하 직원을 밀어 넣으면 성과도 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조직이 냉소주의로 빠질 수 있는 길목에 들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서 체결되는 심리적 직무 계약 중 자신을 포함한 부하 직원의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상위 관리자 혹은 임원으로부터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보다 상위 계약임을 리더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