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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Apr 01. 2024

이유식을 만드는 마음; 엄마 밥이 생각나면 언제든 오렴

이유식을 직접 만들겠다고 다짐한 이유


6개월이 된 아기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됐다. 아직 초반이라 아기는 콩알만큼 먹지만 엄마는 할 일이 다섯 배 정도 늘어난 느낌이다.


쌀에 보리나 수수 같은 잡곡, 현미나 오트밀 등을 섞어 죽을 만든다. 소고기와 채소는 갈아서 큐브틀에 담아 얼리고, 다 얼린 큐브는 또다시 소분해 보관한다.


그러고 나면 또 설거지 거리가 한가득이다. 웬만한 건 식기세척기에 넣어 돌리지만 아기가 쓰는 식기와 조리도구 중엔 반드시 손으로 세척해야 하는 것들도 꽤 많다.


이유식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은 분유가 아기의 주식이라 젖병에 이유식 조리도구까지 세척하고 소독하는 데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내가 부엌에서 이러고만 있어도 되나, 책도 읽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은데...' 울적해진다.


이유식 첫날 만든 쌀죽 큐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쭉 아기에게 이유식부터 유아식, 그러니까 집밥을 직접 만들어 먹이기로 했다. 요즘엔 시판 이유식도 너무 잘 나오지만 만들어 먹이는 걸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시판 이유식을 먹이는 엄마들이 나쁘다는 의미로 쓰는 글이 아니다.)


일단은 아기가 너무나 귀엽게 쫍쫍 받아먹어 줘서이다. 처음엔 보통 쌀가루 미음으로 이유식을 시작하는 게 대세(?)인 것 같은데, 나는 첫날부터 쌀알을 살짝만 갈아서 입자감 있게 죽을 만들어주었다. 아기가 입자감 있는 음식에 빨리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얼른 사람처럼 음식을 먹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첫날 몇 번은 헛구역질하더니 둘째 날부터는 쌀죽에 금세 적응한 우리 딸. 준비한 양을 싹싹 긁어먹는다. 오구오구 예뻐라. 엄마가 만든 음식을 별로 흘리지도 않고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아기의 모습은 정말로 정말로 중독적이다.


이유식 만들기를 고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기를 생각하면서 이유식 만드는 시간이 좋아서다.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데다 내가 만든 식사를 우리 아기가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하면 조금 지치고 울적해도 주방을 떠나기가 어렵다.


가끔은 아기를 힙시트에 앉혀서 이유식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아기가 요리 과정을 신기한 듯이 보는 걸 지켜보는 것도 꽤나 즐겁다. 그렇게 만든 '엄마 밥'이 가장 맛있고 건강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이라는 걸 아기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으려나, 하는 욕심도 조금 내본다.



사실 내가 '엄마 밥'이라든가 '집밥'에 조금 집착하는 면도 있기는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친정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하고 요리에 흥미도 없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김치찌개는 김칫국처럼 밍밍했고 늘 조금씩 싱겁거나 간이 맞지 않는 음식들이 나왔다. 그게 엄마의 최선이었다.


어릴 적엔 매 끼니 엄마 밥을 먹긴 했지만 맛으로 보다는 엄마가 만들었다는 정성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었던 기억이 더 크다. 식사도 가족이 각자 먹고 싶을 때, 시간이 될 때 따로따로 했다. 다섯 식구가 모두 모여 밥 먹은 적이 별로 없었다.


맞벌이로 아이 셋을 키우느라 그런 것이겠지. 엄마도 노력하는 걸 알았기에 지금 와서 엄마를 탓하진 않는다. 자식들을 위해 좋아하지 않는 요리를 매일 해내야 하는 엄마도 힘들었으리라 이해한다.


다만 스무 살에 독립한 뒤에도 딱히 엄마 밥이 그립지 않았다. 음식 취향이라는 것도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먹어본 것들이 많아지면서 생겨났다. 내가 1년에 한두 번 고향집에 내려가도 우리 가족은 집밥을 먹지 않고 외식을 한다. 좋아하지 않는 요리를 하느라 엄마가 유튜브를 보면서 낑낑대고 고생하는 게 싫지만 그리워할 엄마 밥이, 집밥이 없는 게 조금 서글픈 마음도 든다.


요리에 있어선 엄마를 닮지 않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혼 생활 7년 동안 나는 요리를, 집밥을 아주 열심히 해왔다. 그렇다고 억지로 한 건 아니었고 사실 나는 처음부터 엄마와 다르게 요리하는 게 꽤나 재미있었다. 내가 먹을 음식을 맛있게 차리는 시간을 좋아했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레시피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 내 알고리즘엔 이유식이나 유아식 레시피가 잔뜩 올라온다. 나중에 아기에게 해주고 싶은 조리법은 하나씩 틈틈이 저장한다. 이것도 맛 보여주고 싶고 저것도 먹여보고 싶고. 어렸을 때부터 많은 식감과 요리를 경험해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 푸짐함과 다양함 속에서 취향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 수십 개의 레시피가 저장된다.


내 아이는 맛깔스럽게 한상 가득 차려진 집밥이 주는 맛과 정과 따스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아기가 이유식을 먹을 때면 나와 남편도 식탁에 앉아 같이 식사하려는 노력도 해본다. 나와 남편이 자주 먹는 양배추와 당근 같은 채소로 이유식을 시작한 것도 아기가 우리 가족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기가 나중에 다 커서 엄마 품을 떠나더라도, 혹시나 멀리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더라도 엄마 밥이 먹고 싶어서 한 번씩 내 품으로, 가족의 식탁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매일 이유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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