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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Mar 18. 2024

아기를 낳고 홈트에 집착 중입니다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 체력...!

아기를 낳기 전에 몰랐던 사실이 너무나 많지만 그중 제일 당황스러운 건 아기가 낮잠 자는 동안 엄마는 엄청나게 바쁘다는 거다. 아기가 자면 나도 옆에 대자로 드러눕고 싶지만 실제로는 방에서 도도도 달려 나와야 한다.


젖병 소독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밥 먹고 치우고... 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 일들을 다 하고 잠깐 여유가 나서 책 좀 읽어보려고 펴는 순간 아기는 꼼지락꼼지락 깨어난다. 


쉴틈 없는 육아의 현장에서도 꼭 챙기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운동이다. 


임신 전 나는 꽤나 의욕적으로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퇴근하면 빠르게 레깅스로 갈아입고 필라테스 센터로 뛰어가던 사람이 나였다. 


돈을 모아서 사 입어야 하는 비싼 룰루레몬 레깅스. 입은 듯 안 입은 듯 가볍고 편하면서도 예쁜 그 레깅스로 겉멋을 부리고 기구 위에서 씁-하 씁-하 호흡한다. 선생님이 보기엔 어설픈 동작일지라도 나 자신은 무아지경이 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힘든 만큼 작고 소중한 근육도 조금씩 만들어졌다. 



아기를 낳고 필라테스를 다시 하고 싶었다. 하지만 5개월 된 딸이 집에서 앙앙거리고 있는데 고정된 시간에 운동하러 나가는 건 사치였다. 100만 원 조금 넘는 육아휴직 급여로 필라테스 비용을 내는 것도 아무래도 사치다.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순 없었다. 아기를 낳았더니 나에게는 근육이란 게 조금도 없는 흐물흐물한 살 껍데기만이 남아있었다. 늘어지는 살을 보면 나까지 축 쳐지는 기분. 애를 낳는다고 늘어났던 체중이 저절로 다 빠지는 게 절대 아니었다. 물론 어디 내세울 만큼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이 툼툼함은 예전의 내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나 예전으로 돌아갈래...


게다가 육아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덕목 중 하나가 체력이었다. 아기를 안아서 놀아줘야 하고 아기랑 부지런히 산책도 나가야 한다. 집안일도 척척 해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도 가지면서 뉴스와 핫한 유튜브 영상과 넷플릭스도 틈틈이 봐야 하는 욕심쟁이 엄마가 나였다. 체력이 좋아야만 이 일들을 하루에 다 해낼 수 있다. 


결국 아기가 100일이 지나고 내 몸도 조금 회복되자 집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전문용어로 '홈트'. 유튜브에서 홈트 영상을 꽤 많이 따라 해본 내가 정착한 채널은 '빅씨스'라는 채널이었다. 


이 채널엔 20분, 30분씩 맨몸으로 따라 할 수 있는 근력 유산소 운동이 많이 소개돼 있다. 아기가 낮잠 자는 동안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인 데다 운동을 잠깐만 따라 해도 땀이 비질비질 흘러나온다. 펀치나 몸을 크게 움직이는 동작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운동을 더 하고 싶다는 기묘한 생각도 든다. 



운동을 알려주는 ‘빅씨스’ 언니는 40대다. 대략 열 살쯤 어린 나보다 탄탄하고 힘 있게 스쿼트하는 '빅씨스'의 모습이 약간의 각성 효과도 준다. '오우... 저 언니도 저리 잘하시는데...'


'빅씨스'의 영상은 뉴욕 빌딩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나에게 잠깐 어디로 떠난 듯한 느낌까지 준다. 힙한 편집에 힙한 노래도 흘러나오기 때문에 덩달아 힙해지는 것 같은 착각도 한다. 


아무튼 공짜로 그의 재능을 따라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운동을 다 마치면 'success'라는 문구가 촤라락 뜨면서 엄청난 성취감을 안겨주는 것도 '빅씨스'의 매력이다.


자는 아기를 보여주는 홈캠과 유튜브 홈트 영상을 동시에 틀어두어야 한다


물론 나는 거실 한가운데 깔린 아기 매트 위에서 장난감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비틀비틀 어물쩍어물쩍 따라하고 있지만. 누가 보면 흐느적거리며 운동하는 게 광대 같다고 웃을 거 같지만.


그래도 예전에 사둔 룰루레몬 레깅스는 여전히 꼭 챙겨 입는다. 그걸 입어야 잠깐 육아에서 벗어나 제대로 운동하는 기분이 나기 때문이며 잠깐이라도 겉멋을 부리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아가는 하루에 두세 번 정도 낮잠을 잔다. 그중 한 번은 무조건 운동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소소한 목표. 아기랑 길게 외출하거나 손님이 오거나 너무 지쳐서 잠으로 충전해야 할 것 같은 날을 빼면 일주일에 4~5일은 '빅씨스' 언니와 운동을 한다. 조금 지친 날은 10분이라도, 더 지친 날은 천천히 스트레칭만이라도 해본다.


그렇게 매일 공복 몸무게와 운동량을 기록하면 도파민이 사악 분비되면서 만족감이 치솟는다. 두 달 동안 '빅씨스'의 운동을 따라 해본 결과 2kg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그렇게 기분도 체력도 끌어올리면 아기도 더더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굉장한 선순환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홈트에 집착 중이다. 


나 예전으로 돌아갈래...


두 달 정도 홈트 루틴을 만들고 나니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할 수 있겠다는 성급한 자신감도 생긴다. 아니 사실 자신이 없어도 해야만 한다.


1년 뒤면 복직을 한다. 그런데 그 무렵 남편도 재택근무를 마치고 지방으로 근무하러 가게 됐다. 이 말은... '워킹맘'인데 '주말부부'라는 엄청나게 밝고 찬란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간을 버티려면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 체력...!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나를 휘감는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쉽게 지쳐버리고 마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실 엄마가 아니었을 때의 나는 필라테스 센터에 가는 날이 아니면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곤 했다. 


그런데 내년의 나, 그러니까 워킹맘이자 주말부부가 된 나는 퇴근하면 아기를 하원시키고 저녁을 차려주고 치우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청소하고... 기타 등등을 도맡아 해야 된다. 여전히 필라테스 센터에 가는 여유란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 아득한 미래의 나는 그런 와중에도 지금처럼 짬을 내 '빅씨스' 언니의 영상을 보면서, '어휴 저 언니도 저렇게 잘 하시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기꺼이... 스쿼트를 하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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