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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Mar 11. 2024

수유실에서 오지라퍼가 되는 이유

아기랑 갈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타고나길 다른 사람 일에 좀 무심한 편이라 오지랖이랑은 거리가 먼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 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고 말 한마디씩 건네게 되는, 나도 모르게 오지라퍼의 기운이 비직비직 뿜어져 나오는 공간이 있다. 수유실이다.


아기를 데리고 놀러 갈 만한 곳이 백화점이나 쇼핑몰, 대형카페 같은 곳으로 제한된다는 건 익히 들어온 일이었다. 거기엔 수유실이 있고 유모차 끌기 편해서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모인다. 아기가 조금 칭얼거려도 눈총을 받지 않는 곳. '예스 키즈존'이다.


처음엔 수유실 없는 동네 카페 테이블에서도 가끔 분유를 먹였는데 그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도 카페에 앉아 수유를 하지는 않는다. 공부하고 수다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고 있으면 왠지 외딴섬에 있는 기분이 든다.


위축된 마음에 점점 아기가 배고플 시간은 피해서 카페에 가게 된다. 물론 카페에 앉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인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는다. 그냥 혼자 '여기서 먹여도 되는 건가?',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니겠지?' 하고 눈치를 보는 거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도 편히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 수 있는 수유실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됐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분유를 먹었던 아기


수유실은 좁건 넓건, 쾌적하건 낡았건 일단 마음이 편하다. 기저귀 갈고 수유도 하고 아직 홀로 앉지 못하는 150일 된 아기를 잠깐 눕혀서 우리 부부도 한숨을 돌린다.


저번 설 명절엔 가족들과 수유실이 있는 한 대형 카페에 갔다. 영종도에 있는 초대형 카페였는데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온 인천 사람이 다 같이 모여 명절을 치르는 줄 알았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로선 아기가 없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곳. 그러나 수유실이 있는 카페를 검색해서 나온 곳이 거기라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엄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도착하자마자 끙아를 한 우리 딸. '역시 여기 오길 잘했지' 생각하면서 수유실로 달려갔다. 수백 평은 되어 보이는 카페 에 비하면 수유실은 성인 세 명 정도 들어가면 답답해지는 '쁘띠'한 규모였다. 그 비좁음에 몹시 당황했지만 아기의 끙아를 치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커진다.


아기도 좁은 기저귀 갈이대가 답답한지 평소와 달리 낑낑대서 거의 똥과의 사투를 벌인 느낌이었다. 어찌어찌 아기 기저귀를 갈고 뒷정리를 할 때 한 아이와 엄마가 들어왔다.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 없는 작은 공간. 그 엄마는 "아이고 끙아했나 보구나, 우리 둘째랑 개월 수가 비슷한 거 같은데 힘드셨겠어요." 위로를 건넨다.


'오 맞아요, 저 똥 치우기 진짜 힘들었는데 알아주시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역시 엄마끼리만 아는 게 있다니까요!!!'라는 말이 허둥지둥 튀어나올 뻔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러게 말이에요 허허.." 웃으면서 점잖은 척했지만 그 엄마의 공감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얼마 전 필요한 물건을 사러 이케아에 간 주말이었다. 그날도 유독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북적이는 수유실을 찾았다. 아기 기저귀를 갈고 정리 중이었는데 뒤에서 다른 아기 엄마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묻는다.


"혹시 아기 엉덩이 닦는 거 있으세요?"


"앗 네! 그냥 물티슈도 있고 비데 티슈도 있어요! 어떤 거 빌려드릴까요?"

 

갑자기 튀어나온 오지랖에 나 자신도 낯설었지만 재빨리 기저귀 가방을 뒤져 비데 티슈를 그 엄마에게 건넨다. 아기가 똥을 쌌는데 닦을 게 없다니 얼마나 당황스러우실까. 갑자기 공감 능력 100%를 발휘해 있는 거 없는 거 다 꺼내드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잘 썼습니다" 인사와 함께 남은 티슈를 돌려받고는 안도한다.


수유실은 그런 곳이다. 저절로 누군가를 공감하게 되고 저절로 수다스러워지고 저절로 오지라퍼가 되는 곳.


물론 가끔 누군가 사용한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간 걸 볼 때면 수유실에서도 인류애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대체로 그곳에서 만난 부모들은 조금씩 경황이 없고 조금씩 분주한 게 내 모습과 비슷해서 자꾸만 정이 간다.



재작년 파리 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기다릴 때였다.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바로 뒤에 한 외국인 부부가 서 있었다. 100일도 안 되어 보이는 갓난아기도 함께였다. 오랜 시간 기다리느라 아기가 배고파했고 아기 엄마는 그 자리에 줄을 선 채로 느긋하게 모유수유를 했다.


아기를 낳지 않았을 때인데도 나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감탄했다. 한국에서도 저렇게 외출해서 수유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장기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유수유도 아니고 분유수유를 하기 위해 수유실을 찾아 헤매는 요즘의 나는 그때 그 파리 공항의 엄마를 종종 떠올린다.


외국에는 바나 술집 화장실에도 간이 기저귀 갈이대가 있다는 글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기와 함께 바에 놀러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바에서 기저귀를 갈고,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수유하는 게 어색해지지 않는 날이 우리에게도 올까. (술을 마시고 싶다는 얘긴 아니다...)


수유실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지만 수유실이 없는 예쁜 카페와 맛집에도 아기랑 편히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기랑 갈 수 있는 곳이 더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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