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문 Feb 26. 2024

돌아간다면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을래

나에게 산후조리원이 천국이 아니었던 이유(1)

'조리원 천국'이란 말이 있다. 산후조리원이 천국처럼 편해서 붙여진 말일 거다. 아기를 낳자마자 거동이 어려운 산모들을 위해  돈을 받고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아기도 돌봐주는 곳. 그 편안함은 나도 인정한다. 


익히 들어온 그 편안함을 누리려 나도 수백만 원의 돈을 지불했다. 덕분에 중간중간 넷플릭스도 보고, 처리해야 할 일도 하고 한발 늦은 육아용품 쇼핑도 틈틈이 할 수 있었다. 모유가 잘 안 나와 고생했는데 초반에 모유 수유 할 때엔 신생아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에게 조리원은 마냥 천국 같은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머무는 2주 동안 자꾸만 집에 오고 싶었다. 돌아간다면 그냥 내 집에서 산후관리사의 도움을 받으며 맘 편히 몸조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내 집은 확실히 천국이니까.


내 방에 놀러와 기이한(?) 각도로 잠을 자는 아기


조리원이 천국이 아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기와 24시간 붙어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조리원에선 갓 태어난 신생아를 알아서 전문적으로 돌봐주시니 편한 게 아니었던가. 막상 가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조리원 입소 첫날. 방에 멍하게 누워있는데 신생아실에 쪼르르르 누워있는 아기들 사이에 딸을 덜렁 두고 온 것만 같아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호텔 침구라고 홍보하는 조리원 침대가 나도 낯선데 우리 아기는 여기가 얼마나 낯설까. 


'아직 태어난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내가 옆에서 마음껏 품어줄 걸', '다른 아가들 사이에서 잠은 잘 자니? 밥은 잘 먹고 있니? 엉엉엉…'


그렇게 신생아실을 들락날락거리다 첫날밤을 눈물로 보냈다. 막판엔 거의 이성을 잃고 남편에게 아기 데리고 당장 집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대문자 T 면모를 뽐내면서 집에 가서 우리 둘이 당장 신생아를 잘 볼 수 있겠냐고 매우 논리적으로 되묻는다. 그건 또 자신이 없어진 나. 집에 아기를 데려가기엔 당장 청소도 안 됐고 갖춰지지 않은 것도 많아서 눈물 젖은 베갯속에서 조리원 첫날밤을 보냈다.


그렇다. 조리원에선 나는 내 방에, 아기는 신생아실에 있는 게 기본이었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아기가 무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cctv는 특정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데다 우리 아기 cctv는 시스템 문제로 퇴실 때까지 거의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물론 매일 아기와 두 시간씩 방에서 함께 보내는 '모자동실' 시간이 따로 있었다. 원하면 언제든 아기를 방에 데려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생아실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해서 아기를 데려다 달라고 하는 과정이 나에겐 꽤나 번거로웠다. 분유와 기저귀 같은 아기 필수품도 대부분 신생아실에 있었기 때문에, 나와 남편이 번갈아가며 방과 신생아실을 종일 오가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할 수 없었다. 


생후 4일차


그리고 여기서 이어지는 조리원이 천국이 아니었던 두 번째 이유. 그곳에선 '수유콜'이라는 공포의 전화벨이 울린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가 배고파서 울면 내 방으로 전화를 해주는 거다. 


'수유콜' 전화벨은 유독 큰 소리로 울렸다. 이 세상에 고요함이란 존재하면 안 된다는 듯이. 적막을 찢으면서. 벨렐렐렐레-. "산모님, 수유 가능하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와 신생아실 선생님의 매우 다급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대단한 조급함이 발동된다. "네네 얼른 갈게요"


누워서 자고 있든 책을 읽고 있든, 넷플릭스를 보고 있든 벌떡 일어나 아기를 데리러 신생아실로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하지만 제왕절개한 산모에게 누웠다 일어나는 일은... 거의 재앙과도 같다. 수술 부위 통증이 거의 최고조가 되는 순간이다. 악- 소리 내며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우는 아기가 있는 신생아실로 달려가야 하는 기이한 상황. 심지어 모유 수유를 해야 하니 그 와중에 가슴도 한번 닦고 가야 한다. 음… 이게 맞나…? 


그냥 아기가 내 옆에서 자다가 배고파했더라면… 전화벨 소리가 언제 벨렐렐레 울릴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큰 벨소리에 놀라지 않아도 되고 하루에 몇 번씩 종종걸음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될 덴데. 조리원의 편안함보다 불편함이 불쑥 커지는 순간이었다. 



(*산후조리원 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집니다. 다음 연재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전 01화 프로 산책러, 생후 30일부터 외출한 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