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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Feb 19. 2024

프로 산책러, 생후 30일부터 외출한 아기

"아유 아기 추워!" 잔소리는 사절입니다.


우리 아기는 ‘프로 산책러’다. 신생아 딱지가 떼진 생후 30일 즈음부터 산책을 시작했다. 4개월 인생 중 3개월은 거의 매일, 조금이라도 산책 혹은 외출을 했으니 프로 산책러로 칭송받을 만하다. 


생후 33일 첫 산책 날, 담요에 둘둘 쌓인 딸


신생아를 졸업하자마자 산책을 하기로 한 건, 솔직히 24시간 집에서 육아와 일에 파묻혀 보내는 나와 남편이 너무 답답해서였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바깥공기를 쐬는 건, 아기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아기에겐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 간판 하나가 다 새로운 경험이다. 아기에게도 세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11월 초부터 한겨울을 지나는 동안 따뜻한 날엔 아파트 단지나 공원 산책을 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아기 친화적인 (수유실이 있는) 실내 쇼핑몰이나 카페로 부지런히 향했다. 바다를 보러 드라이브를 떠나기도 한다. 어떤 날엔 우연히 발견한 포토부스에서 세 식구가 인생 네컷도 찍는다. 어떤 따스운 날엔 공원 산책을 나섰는데 아기가 1시간 반 동안이나 남편 품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추워서 쇼핑몰에 놀러간 날. 생후 두 달쯤 됐을 때다.


우리 딸은 엄마 아빠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들이부으며 정신을 차리는 동안 꽤 의젓하게 기다리는 효도도 한다. 오늘은 동네 브런치 맛집에서 한 시간 동안 얌전히 앉아 있는 ‘프로 외출러’의 면모도 보여줬다. 추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물론 우리도 독감이 대유행하는 시기엔 외출을 자제했고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알아서 피한다.)


아기를 안고 어느 예쁜 카페에서 커피 수혈...


100일도 안 된 아가를 밖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보니 아기를 만난 어르신들은 유독 예뻐해 주신다. “아이구 예뻐라”, “너무 귀엽네~” “요즘 애기 보는 게 힘든데~” “몇 개월이에요?” 듣기만해도 어깨가 들썩거리는 고마운 말들이다. 엄마가 되어보니 아기 예쁘다는 말만큼 기분 좋은 말도 없다. 


그런데 겨울 외출이다 보니 여기 저기서 툭툭 들려오는 언짢은 말들도 있다. “아유 애기 추워!” “애 감기 걸리겠다”, “추워~ 이런 날은 나오면 안 돼~”… 등등. 아기와 우리를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제 갈 길을 가시며 크게 소리만 치는 어르신도 있었다. 추운 건 알겠는데 난데없이 뒤통수에 내리 꽂히는 고함과 반말 공격에 또 한 번 정신이 혼미해진다. 


누가 자기 욕을 하면 더 잘 들리는 법.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나는 그냥 듣지 못한 척하기로 한다. ‘따뜻하게 입혔어요’, ‘매일 껴입고 산책해서 감기에 걸린 적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 목 끝에 차오른다. 


하지만 굳이 상대의 기분까지 상하지 않게 하기로 하고 입을 다문다. 내복과 니트와 털우주복과 남편의 패딩으로 한번 더 둘러싸인 아기는 아빠 품에 안겨 그저 평온하다. 찬 바람에 코끝이 조금 빨개졌을 뿐. 


아기에게 패딩을 양보한 아빠
아빠 품에서 잠든 곰돌이

아기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겠으나, 기분 좋게 산책에 나선 부모 귀엔 그저 잔소리처럼 튕겨져 나가는 말들. 그 말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오히려 아기를 더 소신껏 키우고 싶어 진다. 


아기를 데리고 산책하면 하루 종일 집 안을 종종거리며 육아하던 엄마 아빠는 한숨 돌릴 수 있다. 다시 아기와 재밌게 보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종일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플라스틱 장난감 더미 속에 사는 아기는 밖에 나가서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찬 바람을, 겨울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한 번 더 새기는 말. "우리 가족은 그냥 이렇게 살아요. 그리고 아기는 생각보다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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