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연히 Oct 22. 2023

미라클 하게 위험한 미라클 모닝

침대와 동기부여 영상


“다녀올게!”


  졸린 눈을 비비며 남편을 배웅하고 나면 아침 8시다. 아차, 오늘 6시에는 일어나려고 했는데. 후회도 잠시, 덜 깬 잠을 털어내지 못하고 침대에 달라붙는다. 살짝 차가워진 몸을 이불로 데우다 다시 스르륵 잠이 든다. 하늘 정가운데에 뜬 태양이 감은 눈꺼풀에 다다르는 정오. 눈을 감아도 앞이 깜깜하지 않고 주황빛일 때가 오면 그제야 슬쩍 일어난다. 여기서 ‘일어나다’란 사전의 두 번째 뜻이다. 그러니까 ‘누웠다가 앉는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다. 구구절절 말했지만 한마디로 누워서 핸드폰 한다는 소리다.


 스스로에게 게으름을 들킨 게 부끄러워 기분이 안 좋아진다. 기운도 안 좋아진다. 축 늘어져 유튜브를 누른다. 누워있다는 죄책감에 괜히 동기부여 영상에 기웃거린다. 점심시간에 침대에 누워 미라클 모닝 영상을 재생시키는 꼴이라니. 화면에선 새벽 5시에 일어나 책 읽고 일기 쓰고 운동하는 유튜버들이 부지런함을 뽐내고 있다. ‘나도 내일부턴 이렇게 살아야지.’ '지금부터' 열심히 살면 되지 왜 하필 '내일부터' 인지는 내 안의 쓸데없는 완벽주의에게 추후 따질 생각으로 계속해서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는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엄지는 참 잘도 움직인다. 꿈이라는 어려운 세상이 있는 반면에 이렇게 쉬운 세상도 있다. 하지만 쉬운 세상에도 어려운 게 있는데, 그건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잘 시간이다. 유튜브에서 자고로 미라클 모닝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취침 시간이라고 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남편의 루틴에 맞춰 일찌감치 침대에 눕는다. 불현듯 불안이 스친다. ‘아, 오늘 별로 못했는데 자도 되나? 일어나서 좀 더 할까? 그러다 내일 또 늦게 일어나면?' 뒤척이며 옆으로 돌아누웠더니 곯아떨어진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하, 오빠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만 계속 수입이 없어도 되나. 어디 취직이라도 해야 하나. 결혼하면서 연고 없는 지방으로 왔는데 여기선 어디에 취직하면 되는 거지?.' 생각이 나무처럼 가지를 쭉쭉 뻗어대는 통에 나의 깨어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가슴 깊은 곳에 벌레가 기어 다니듯 답답하고 불쾌한 기분에 마냥 누워있기만 할 수 없어 눈을 뜬다. 잘 풀리면 일어나 펜을 잡고 안 풀리면 누워서 폰을 잡는다. 고요한 새벽, 모두들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할 때 나만 깨어있다. 연쇄적으로 호기롭게 쏘아 올린 새벽 기상이라는 목표는 불발된다. 그렇게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자고, 자야 할 시간에 잠이 깨는 하루하루를 반복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려면 불가능한 노력을 하라는 유의 명언들이 많다. 들을 땐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지만 이내 불타서 아예 사라져 버린다. 목표가 불가능할 만큼 크니 시작도 전에 지쳐버리는 것이다.


 미라클 모닝도 마찬가지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일찍 일어나는 건 아침부터 기운 빠지는 커다란 스트레스이다. 직장인이나 육아를 하시는 분들에겐 혼자만의 시간을 선사해 주는 훌륭한 도구겠지만, 하루종일 혼자 있는 나에겐 그다지 미라클 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내게 맞는 루틴으로 작업 능률 올리기’인데 어느새 '일찍 일어나기' 그 자체가 중요해져 버렸다. 공교롭게도 새벽 기상이라는 목표는 하루의 시작부터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났고, 실패하면 이미 아침부터 하루가 망한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미라클 모닝은 ‘길을 막고 내 시간과 의지를 빼앗아가는 위험한 강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걸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나는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고작 일찍 일어나는 걸 왜 못 해?’라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이젠 안다. 억울한 건 억울한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걸.



 이젠 늦게 일어나면 늦게 일어나는 대로 바로 일어나 책상으로 간다. 5만 원 중에 만 원 써버렸다고 거스름돈 안 받는 거 아니니까. 나머지의 소중한 시간을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에 지불한다.


 이렇게 한 후로 매일 반복되던 자기 비하가 차츰 잦아들었다. 순 작업 시간도 늘어났다. 길어지는 지망생 생활. 그나마 미치지 않은 건 미라클 모닝을 버리고 미라클 애프터눈이라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잠 많은 자들이여, 모두 굿 애프터눈-.


이전 07화 결국 우리는 당연히 잘될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