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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Nov 25. 2023

하루만 뜨는 태양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2


                                     




꿈을 꾸었습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가느다랗게 길게 늘어진 기찻길. 그 위로 포개지듯 기차가 달립니다. 내가 새가 된 듯 선명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실처럼 가느다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기차, 가 갑자기 나에게로 막 달려들었습니다.


고속 철도가 미끄러지는 지금, 뭐야, 증. 기. 기관차였나? 하고 내속에서 내가 생각을 하는 듯하다 번뜩, 하고 눈이 떠졌습니다. 방금 전에. 오늘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열여덟 따님이 IELTS에 난생처음 도전하는 날이거든요.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시험장에 7시까지 입실을 해야 해서 오늘 새벽은 내 마음이 조금 더 급합니다.


기억이라는 게 참 웃겨요. 기억하고 싶은 건 휘리릭 날아가 버리고, 잊고 싶은 건 불쑥불쑥 앞으로 튀어나오니까요. 그래서 지나고 나서 보면 중요한 날도 기억이 희미해지는 전 날, 그다음 날 그 사이 어디쯤에서 다시 희미하게 지워지긴 하지만 말이에요. 마치 가느다란 기찻길처럼.


하지만 몸은 기억하지요. 내가 혼을 다했는지, 안 했는지. 내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기억하는 거지요. 그래서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익힌 자기만의 혼을 다하는 연습, 그게 인생 마디마디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중요한 날도, 중요하지 않았던 날도, 잊힌 날도, 불쑥 기억이 되살아나는 날도 오늘, 하루이네요. 그래서 중요한 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임해야 하는 마음으로 다른 하루도 살아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대로 한번 해보는.   


따님의 그 마음속에 뜨거운 여름, 지루한 장마, 천둥과 번개, 출퇴근 지하철의 숨 막힘, 혼자라는 외로움  그리고 코로나, 독감, 종양의 주변 언저리. 무엇보다 클 두려움이 모두 다 고스란히 담기는 걸 옆에서 한참 지켜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신새벽을 가르며 달려갑니다.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봅니다. 태양은 저 산너머 가려져 있어도 이미 태양임을 알려줍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서서히 그렇게. 멀리 물드는 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니 태양마저 오늘만 뜰 것처럼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 길을 앞서 지나간 이가 첫눈을 밟고 지나갈 무렵

이 길을 앞서 지나간 이가 춘곤증을 이기려 기지개를 늘어지게 켤 무렵

이 길을 앞서 지나간 이가 작열하는 태양을 초록 양산아래에서 피하고 있을 그때쯤


지난가을의 내가 다시 돌아와 오만가지 생각 들고 걷다 이 길에 멈춥니다.

이 순간만큼은 남 탓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되어 쪼그려 앉아

겨울 한 잎, 봄 두 잎, 여름 서너 잎을 주섬주섬 모아봅니다.


뒤를 이어 걷는 이가 자기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한 오백가지 생각만 들고 이 길을 가길 바라는 간절한 손짓으로

이렇게라도 자기 마음을 고백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으로


길은 그렇게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사랑으로 이어줍니다.

그 덕에 우리는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으로

또다시 가을로 이어서 걸을 수 있는가 봅니다.  


어제처럼 찬란할

오늘의 태양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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