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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02. 2023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3

저녁을 먹은 뒤 쉬고 있는데, 귓속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음악을 듣느라 귀를 꽉 막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마구 때리는 소리였다. 왼쪽 이어폰을 살짝 뺐다. 그 소리는 안방에서 나가 거실을 지나 아내가 있는 아드님방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어머님은 올해 폐암 수술을 하셨다. 폐를 3분 1 가량 잘라냈다. 깔끔하게 잘리고, 전이가 없어 다행이었다, 는 우리 생각. 움직임이 원래 많으신 당신은 남은 3분의 2로만 그 움직임을 다 해내야 했기 때문에 뵐 때마다 숨차하셨다.


아내는 지난달 일찌감치. 산책하면서 엄마, 어머님과 통화를 마쳤다. 아름아름 아는 사람들한테만 거래를 한다는 맛집을 통해 그렇게 다 된 김치를 우리 집으로 받아 부모님 댁에 직접 배달해 드렸다. 김치가 도착한 날, 같이 그득하게 식사를 하면서 처음 거래하는 브랜드의 김치맛에 아버지는 엄지 척을 했다. 그렇게 올해 김장은 끝났다, 는 것 역시 우리 생각이었던 거다.


한통의 전화가 아내한테 걸려왔단다. 어머님이 글쎄, 작년보다도 많은 40 포기의 절인 배추를 배달을 시켰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는, 주소 확인 전화였다. 그 전화를 받고서야 아내는 알게 된 거다. 어머님이 비밀작전으로 김장을 추가하시려 하셨다는 것을. 노이즈캔슬링을 뚫고 들어 온 웅웅 거리는 그 소리는 엄마를 걱정하는 아내의 걱정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전화가 한통 왔다. 어머님이었다. 토요일에 차를 가지고 올 수 있냐고. 그 사이에 김장을 다 하신 거였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놨는데, 누가 준 갓김치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얼른 와서 자네가 잘 먹는 갓김치 -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어머님표 김치다 - 도 좀 덜어서 가져가야 나머지 것들을 김치냉장고에 넣을 수 있다고.


수술 전에도 꼭 같은 멘트로 나를 부르셨다. 그렇게 한번 더 보고 싶으신 거였다. 토요일 아침 일찍.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갔다. 들어서자마자 엉거주춤 서 계신 어머님을 안아드렸다. 사람 참, 이렇게 일찍 왔어하시는 아버님도 꼬옥 안아드렸다. 메마른 등이 오드득거리며 나에게 당겼다. 그런데도 내가 더 깊숙이 포옥 안겼다. 불과 십여 초였지만 싸늘한 토요일 아침이 활활 타오르게 따뜻해졌다.


좁은 거실 문 앞에는 이미 두 분이 엉거주춤 챙기셨을 75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40 포기를 삼등분한 것 하나. 길쭉하게 커다란 용기 그득하게 벌겋게 싱싱한 갓김치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범 이리 와, 여기 벌려 봐. 하시면서 어머님의 야심작, 오이지 깍두기를 속 깊은 황토색 용기에 깊숙하게 한가득 담아 주셨다. 아, 이제 애들 올텐데, 와서 뭐 먹어. 김치라도 넉넉해야 잘 먹고 가지, 라시면서.


열흘 정도 지나면 밴쿠버 식구들이 3주, 1주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 온다. 코로나전에 갔다, 이제야 일정을 잡아 잠깐 나오는 거다. 나와 따님은 모두를 올 여름에 한참 보고 왔지만, 다른 식구들은 햇수로 4년, 5년만의 크리스마스 상봉인거다. 우리는 그런 즐거움속에서만 있는데, 트리를 일찌감치 만들어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데, 그 사이 어머님은 그렇게 마음을 쓰고 계셨던 거다.


지난 토요일. 남매들 어릴 때 캠핑 짐 그득하게 싣고 다니던 캐리어에 다시 그득하게 김치통을 수북하게 실어 올렸다. 그렇게 13층까지 올라온 김치통이야말로 넣을 때가 없다. 오래된 김치냉장고 양쪽에는 시기와 출처, 내용 자체도 불분명한 것들이 그득하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수년만에 김치냉장고 청소가 시작되었다. 어머님의 큰 그림(!) 덕분에 안 할 수가 없었다.



끝도 없이 나오는 얼음덩어리, 박스, 김치통, 먹다 남은 와인, 얼어버린 물, 까지도 않은 큼지막한 호두 봉투. 최소한 일 년이 넘은 것들이 구석구석 잘도 박혀 있었다. 그리고 김치냉장고 바닥은. 그만, 여기까지. 무엇을 상상하시던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청소를 하는 동안, 아내는 동시에 냉장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남매들과 열심히 다니던 캠핑 캐리어로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분리수거를 한 뒤에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이런 생각이 여전히 들었다. 자식은 (부모가 되어서도)부모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그 마음의 깊이와 타이밍을. 몸은 고되지만 마음 하나만 보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는, 부모의 그 마음을. 아내와 가만히 앉아 따듯한 차 한잔을 했다. 그러면서 휑하게 비어버린 냉장, 냉동고처럼 누군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내 안에도, 아내의 속에도 생긴 것 같았다. 더 그득하게 채워진 김치냉장고 속에서 잘 익어갈 마음들이 더 가득해졌다. 그덕에 든든했다. 무엇이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부모님은 김치 속에 그 마음을 차곡차곡 버무려 주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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