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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09. 2023

아, 저런 미친 색이...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4

9살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잘 달리는 내 차의 가장 큰 매력은 엉따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무 해 넘는 기간 동안 벌써 세 번째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군요. 첫차는 혼자일 때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시간 맞춰 다니기 위해 급하게 구입했던 자그마한 중고 해치백 승용차. 두 번째는 결혼하고 구입한 중고 중형 승용차. 8년 넘게 타고 있는 지금 차가 처음으로 새 차로 구입한 SUV이네요. 이 차를 처음 탔을 때 여러 편의기능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의자였어요. 시트.


이전 차 두대는 시트에서 에어컨도 나오지 않았고, 열선도 없었어요. 그런데 여름보다는 겨울. 특히, 아주 추운 날보다는 으스스한 날. 그런 날에 얼어있는 엉덩이는 온몸을 웅크리게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도, 생각도 어깨처럼 말려버리는 것 같았지요. 게다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짧은 거리를 움직였거든요. 차 안이 따듯해질 만하면 다시 엔진을 꺼야 할 정도의 거리. 그 덕분에 더더욱 따듯한 커피 한잔이 기대되기는 했나 보네요.


지금 차를 처음 탔을 때 엉따의 첫 기억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온몸이 따듯해지는 그 느낌은 무엇이건 당당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달리는 시간 동안 충전해 주는 듯했어요. 그 정도로 참 좋았어요. 자기야, 아빠, 엉따, 엉따 하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일찍 내려가 먼저 차를 데우고, 시트를 데워 놓는 게 큰 즐거움이었지요. 몸을 웅크리고 내려와 차를 타면서 따듯한 미소를 짓는 가족들 표정을 한 번, 두 번 더 보는 게 크나큰 행복이었고요.


며칠 전. 가을비, 아니 겨울비가 내리던 날 아침 출근길. 그날도 여느 날처럼 엉따로 몸과 마음이 따듯하게 충전되는 중이었어요. 언제나 그렇듯 비슷한 시각에 나오면 그 시각에 그 위치쯤 지나치게 되지요. 메인 도로로 진입하기 전, 간선도로 위에서는 가끔 앞뒤 좌우로 신호를 기다리는,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들 중에 꽤나 낯익은 번호판의 차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나와 비슷한 동선을 비슷한 시각에 움직이는 익숙한 타인들이지요. 괜히 반가워지는.


그런데 그날 아침은 한참을 그렇게 같이 달린 낯선(?) 차가 한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빨간색 같으면서도 파란색이 나는 듯한 스몰보다 작은 미니의 '시골남자'. 그 남자의 색깔은 참 오묘했어요. 처음에는 락카로 도색을 했나 싶었어요. 운전석까지는 빨간데 그 뒤부터는 파란색이 진해지다 다시 엉덩이 부분에 빨강과 파랑이 뒤섞인 알파벳인가, 얼굴인가, 눈동자인가 싶은 복잡한 문양의 그래비티. 참 오묘한 색깔들이 뒤섞인 '시골남자'였어요. 특히, 뒤쪽 로고 주변에 그려진 건 분명 락카같은 걸로 직접 도색을 한 듯했어요. 마치, 날 봐, 날 봐, 날 봐달라고 성을 내는 것처럼.  


집에서 출발해서 처음 만나는 오거리 1차로 신호대기 중에 2차로 내 옆자리에서 같이 스타트를 했나 봐요. 그 오거리에서는 1,2차로 두 개가 좌회전이거든요. 그런데 좌회전을 하는 순간 언덕 위까지 한참을 길게 뻗은 4차로에는 언제나 차들이 가득한 도로예요. 그래서 회전을 하자마자 속도를 낼 수가 없어요. 보통. 그래서 그 오거리에 익숙한 차들은 좌회전을 아주 예쁘게, 천천히 하거든요. 급정거를 하지 않기 위해서지요. 자기 색깔이 확실했던 그 '시골남자'는 머플러 소리도 확실했어요. 타타타타 거렁거렁. 웅웅, 웅웅, 타타타타 거렁거렁.


대여섯 살 때 불룩한 할아버지 팔뚝을 배고 있을 때 들었던 잔뜩 낀 가래소리 같았어요. 가끔 그런 차들을 만나니까 그렇구나, 저럴 때구나 하면서 같이 좌회전을 했지요. 아, 그런데 그 '시골남자'는 좌회전을 하는 동시에 3차선, 4차선으로 툭툭치고 나갔어요.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건 깜빡한 게 아니라는 건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멈췄다, 쭈욱 옆으로 나갔다, 급정거. 이 동작을 차선을 바꿀 때마다 반복하더군요. 40분 동안 라디오에 집중하고 떠오르는 상념에 집중하는 시간이 몽땅 빼앗기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그 차는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커다란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에 점점이 박혀 드는 차들 사이에서 2차로에 섰어요. 좀 전에 좌회전을 할 때부터 쭈욱 오던 2차로. 언덕 가기 전까지 세 개의 신호등. 이번 신호등을 지나치고 다음 신호등 사이에 있는 버스 정류장. 출근길에는 항상 그 버스가 만원이기 때문에 한참 정차를 해요. 그래서 지금 신호등에서 다음 신호등 사이에 차선을 2차로 정도로 변경을 해야 버스 뒤에 막혀 기다리지 않아요. 그걸 아는 많은 차들이 밀고 들어와요.


그렇게 밀리다 밀려주다 하면 어느새 두 번째 신호등, 세 번째 신호등. 언덕만 넘어가면 세 갈래로 길이 갈라지기 때문에 그 길부터는 이십 분 넘게 한가롭게 달릴 수 있어요.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획(?)을 하고 라디오 음악에 맞춰 핑거댄스를 즐기고 있던 순간. 한 대씩 한 대씩 양보하고, 안 하고 하는 차들 사이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그 '시골남자'가 버스 뒤쪽 4차로에서 다시 보였어요. 그러고 보니 3차로를 지나쳤던 몇 대의 트럭 때문에 잠깐 그 '시골남자'를 내 시선에서 놓쳤었나 봐요.


그렇게 조금씩 차들이 움직이는 틈에서 '시골남자'는 여전히 그렇게 가다 서다, 멈췻, 쑥을 반복하고 있었어요. 참 딱해 보였어요. 바쁜 일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안 바빠도 저러겠지 하면서. 하기야 세상 눈치 보고 사는 사람들이 중고건 외제차건 관계없이 자기 차 안에서까지 눈치를 볼 필요는 없겠지요. 차가 그게 매력이니까. 자기만의 공간, 팀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의 해방감. 편안함. 그리고 다짐. 뭐 이런 것들을 하기에 충분하게 아름다운 공간일 테니까요. 그래서 가끔 운전할 때 모습이 본모습이라고 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속도감이 문제지요. 주변과 어울릴 수 있는 속도감을 유지해야 큰 그림에 스크래치가 생기지 않으니까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게 거대한 도로위니 까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순간순간 증명받는 곳이 도로위니 까요. 그날 그 아침의 도로 역시 마치 하얗고 빨갛게 물든 길다란 밧줄 네 개가 언덕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거대한 수영장을 물든 그 밧줄이 레일로 갈라놓은 듯했어요. 자, 오늘도 속도감을 잘 조절하면서 두런두런 그렇게 서로, 같이 잘 달려봐요, 하듯.


그냥 가슴 벅차게 웅장한 장면이었네요. 내 차는 3 레인. 자, 이제 다시 천천히 오늘을 출 바~알. 하려는 데 사라졌던 그 '시골남자'가 4 레인 버스 뒤에 딱 서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껏 본모습처럼 서두르지 않고, 버스뒤에 숨죽인 듯 멈춰 있더군요. 짧은 버스 정류장은 4.5 레인 정도 위치예요. 그래서 버스는 거의 매번 머리가 들어가고 엉덩이는 4 레인에 걸쳐 있는 상태로 승객을 태워요. 그런 모습을 그냥 가만 지켜보고 있을 '시골남자'가 아니었는데 이상했어요. 마치 버스가 나가면 우회전을 할 것처럼. 물론 우회전할만한 도로는 없는 구간이었는데.


버스 속으로 끝없이 사람들이 빨려들 듯 꽤나 긴 시간이었는데도 그냥 그대로 있었어도. 나의 3 레인은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 중이었는데도 말이에요. 두 번째 신호등은 여전히 붉은색. 저 버스가 붉은색을 무시하고 그냥 갓길을 밟으면서 지나쳐가면 이내 출발 신호로 바뀌는 타이밍이었어요. 그 버스 운전자도 그 신호를 읽는 게 분명했어요. 매일 아침 거의 두 대 중 한대의 버스는 신호를 무시하고 먼저 세 번째 신호등 앞으로 달려 나가요. 안 그러면 승객을 다 태우고도 양보해주지 않는 3 레인 차들 때문에 한참을 멈춰 서야 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붉은색에서 야금야금 움직이면서 갓길을 밟고 웅~피웅하면서 버스방구를 끼고 내빼는 순간이었어요.


조용히 시동 끄고 잠복하던 형사같던 그 '시골남자'는 그 틈으로, 내 바로 앞 좁은 공간으로 툭 치고 들어왔어요. 당연히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급브레이클 밟을 수밖에 없었지요. 아, 저런 미친 색이. 하고 그 '시골남자'만의 색깔에 반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좌우로 달려 나오는 차 사이에 나의 3 레인만 멈춰서 있었어요. 맨 앞의 선두였던 내가 급정거를 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 신호등은 예상대로 초록으로 바뀌었고, 일제히 모든 차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어요. 세 번째 신호등은 두 번째 신호등과 거의 연동이라 지금 달리면 단박에 언덕을 타고 넘어 오를 수 있지요. 그렇게 그 '시골남자'는 잡아 봐, 잡아 봐, 한대 쳐봐 하듯이 쏜살같이 3 레인으로 달려 나갔어요. 얼마 안 가서 다시 툭하고 4 레인으로 달려들더니 언덕 바로 아래에서 오른쪽 길을 타고 올라 산과 산 사이로 사라졌어요.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러는 동안 내 뒤를 따라오던 차가 너무 바짝 붙어 있었나 봐요. 그 차 역시 차선을 바꾸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게 룸미러로 보이더군요. 그 차도 비상등을 켜놓고는 멈추었어요.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신호등은 또 붉은색으로 바뀌더군요. 그래서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지 하고 있는데, 왼쪽 사이드 미러 속에서 뒤차 운전자가 도로 위로 내리는 게 보였어요. 엉? 왜 그러지? 하면서 있는데, 제 차로, 운전석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미러 속에 온몸이 쏙 들어 찬 여자분이었어요. 정차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비는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한참 서 있으면 젖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우리 엄마보다 조금 더 젊은 아주머니였어요. 창문 앞에서 머뭇거리듯 하시더니 노크를 한번 콕콕하시더군요. 창문을 조금 내렸어요. 그랬더니 아,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이러시는 거예요. 예? 이랬더니 잠깐 내려 보라시더군요. 그제야 차문을 열고 내렸어요. 그리고는 아주머니를 따라 다시 차 뒤로 갔지요. 그랬더니, 정말 그 아주머니 차 번호판이 제 차 범퍼에 붙어 있었어요. 새벽마다 작가님들과 인사를 나눌 때 언제나 소환되는 굿모닝~ 글모닝~ 금모닝~ 하는 하얀 차였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전혀 느끼지 못했네요. 자석이 와서 달라붙는 정도의 느낌조차도 없었거든요.


미안하다시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어요. 그러는 동안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아주머니 볼을 때렸어요. 내 목덜미를 타고 빗방울이 등으로 흘러들었어요. 그러는 사이 다시 출발 신호가 들어왔어요. 3 레인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많은 차들은 일제히 노란색 방향지시등을 이리저리 켜고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신의 두 손기도하듯 맞잡고 저의 휴대폰을 달라고 했어요. 전화번호를 찍어 주겠다고. 하지만 휴대폰은 차에 거치되어 있었네요.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냥 와서 붙은 건데, 빗방울에 젖은 종이가 날려와 범퍼에 달라붙듯.


정말 차도 나도 아무런 문제랄께 없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몇 번을 '젊은 분'이, '젊은 분'이 참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시면서. 염색하실 때가 한참 지나 신 듯한 아주머니 앞머리카락이 젖은 이마에 J자 모양으로 달라붙어 늘어져 눈동자 위에서 흔들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정말 차도 나도 아무런 문제랄께 없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그냥 각자 출근하자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차에 타시는 걸 보고 내 차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한 몇 초동안 신호등은 붉은색이었어요. 우리 둘은 그렇게 나란히 앞뒤로 서 있다가 다시 천천히, 기분 좋게 출발했어요.  


언덕을 넘어 한적하게 혼자 달리면서 십여 년이 넘는 동안 두고두고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비번이었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엄마와 차를 가지고 가까운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날이었데요. 익숙한 도로라 익숙하지 않은 운전실력에도 자신 있게 차를 모시다 마트 주차장에서 앞 라인에 정차되어 있던 차를 콕하고  받으셨다네요. 그런데 그 차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아 이야기를 하지 못하셨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해서 쌀 하나 화장지 하나를 얼른 사서 다시 먼저 차로 돌아오셨다고. 아직 엄마는 마트 안에서 장을 보고 있으신데 혹시 그 차주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렇게 엄마가 장을 보시는 몇 분  동안 차 안에서 앞차 주인을 기다리셨나 봐요. 그렇게 왼팔에 아기를 은 채 장을 보고 나오는 애기 엄마를 만났고, 설명을 하셨답니다. 그랬더니 자기차를 한번 쓰윽 보더니 (아버지 표현으로는) 아가 같은 아가 엄마가 단박에 그랬데요. 어르신, 뭐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가세요,라고. 아버지는 '젊은 사람'이 어찌 그리 마음씨가 고운지, 그런 마음씨가 표정으로 드러나니까 그렇게 표정이 아가 같은 거야라고.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나요. 그리고 그 사람들마다의 색도, 향도 같은 듯 다 다른 게 정상이지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에게 빼앗겼던 미소를 다시 되찾은 인간의 기쁨은 함께 누려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어제 글에서 이야기했던 열여덟 벼리가 나를 처음 만난 날.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니까 '솜사탕 같은' 사람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뜻이니라고 물으며 발가스름하게 물든 엷은 미소를 띠면서 그러더군요. 사람들 마음을 달달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솜사탕처럼.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잘 녹아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솜사탕처럼.   


열여덟도 알고 있는 그걸 우리 같이 '젊은 분'이, '젊은 사람'이 모르면 안 되지 싶어 지는, 출근길이었네요. 계속 흩뿌리는 빗방울이 차창밖에서 콩나물 같은 음표가 되어 주르륵, 주르륵 반복해서 흘러내렸어요. 비트가득하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르는 가수의 모르는 노래를 마치 나의 십팔번인 것처럼 흥얼거리면서 따라 불렀어요. 한참을 멈추었던 핑거댄스로 마음을 살랑살랑 실룩거리면서. 잊고 있던 엉따의 고마움을 몸으로 마음으로 구석구석 그렇게 오래 오래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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