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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04. 2024

쓰는 게 답인가 봅니다

[노랫말싸미] 7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의 흑백 엔딩 장면. 납치범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조종사가 목숨을 대신해 많은 승객들을 살려냈던 이야기. 백사장에 비상 착륙한 구멍 난 비행기를 보는데 오래전 봤던 다른 영화 장면과 문득 오버랩되었습니다. 


그 영화는 케스트 어웨이였습니다. 너무나 바쁘게 살던 직장인이 출장 중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져 4년 넘게 혼자 지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였죠. 내용도, 의미도, 형식도 다 다르지만 백사장에 내동댕이 쳐진 듯 널브러진 비행기를 보면서 빠져들었던 상상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영화에서 무인도에 혼자 갇힌 주인공은 윌슨이라고 이름 붙인 배구공과 대화를 합니다. 친구처럼. 혼자 말을 걸고, 스스로 대답을 하고, 화를 내고, 사과를 하죠. 무인도를 탈출하면서 망망대해로 함께 나갈 때도 유일하게 챙겨간 게 배구공 친구 윌슨이었죠. 


아마도 마흔이 되기 전이었을 겁니다. 정확한 때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케스트 어웨이를 보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상상은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나는 어떤 무인도에 갇혀 있는 걸까. 그 무인도에서 나에게 윌슨은 무엇일까'하고 말이죠. 물론 그때는 스스로의 상상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내가 날 잘 모르니까 당연하다 싶습니다. 여전히 말로만 내려놓는다, 내려놓는다 하고 있으니까 당연하다 싶습니다. 다행인 건 말이죠. 속도를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문득 오버랩되었나 봅니다. 

 

구멍 난 비행기가 모래사장에 미끄러지는 엔딩 장면을 보면서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답이 떠올랐나 봅니다. '아, 목적 없이, 그냥, 써야 하는 이유구나'하고.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편리한 무인도에서 마음이 고픈데 배고픔만 채우려는 자신이 더 싫어지기 싫어서. 나보다 더 나를 지켜내는 수많은 윌슨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가슴엔 바람이 부네요 / 마음엔 나도 모를 설움이 가득 / 어디로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 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 봐요' _ 어느 날 문득(정수라) 노랫말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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