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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6. 2024

#인간적인 나라

[오늘도 나이쓰] 44

그제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한 전지 회사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리튬 배터리 더미가 다 녹아내린 후 안타까운 상황이 들립니다. 최종 확인된 사망자가 무려 23명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신원이 확인된 3명의 한국인을 제외한 20명 모두 외국인이라 신원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최근 십여 년간 화성은 매우 주목받는 지역 중 한 곳입니다. 대규모의 수도권 2기 신도시도 조성되어 있고,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자동차, 전자, 전기 관련 첨단 기업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화성에 주소지를 둔 상주인구는 올해 들어서면서 이미 비공식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어느 조사에서는 저출산 여파로 소멸될 지자체가 대부분인데, 유일하게 소멸하지 않을 곳으로 예상된 유일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기억 못 하는 화성의 어두운 국민적 추억을 말끔히 씻으면서 새로운 대도시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지요.


화성시는 요즘 광고를 통해 수원, 고양, 용인, 창원과 같은 '특례시' 선정을 바라는 시 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화성시뿐만 아니라 제조업이 발달한 주요 지자체의 상당수 인구를 외국인 주민이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오래전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인 서비스를 외국인들한테 받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얼마 전 갔던 명동의 한식당 주방에서도 외국인 조리사를 만난 적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법무부 2023년 말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등록외국인 수는 25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반면, 2023년 미등록외국인 비율이 16.9%로 추정되어 있는 것을 보니 실제 우리 주변에서 같이 살고 있는 외국인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이들은 크게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민자, 유학생으로 구분됩니다.


유학생은 광역시나 인근 지방 도시의 대학에 다니는 비율이 가장 높고, 결혼이민자는 촌락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이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는 주로 수도권과 공업이 발달한 도시에 거주합니다. 우리나라 공장이 외국인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등록외국인중 71만 명이 넘는 이들이 경기도에 머무는데, 이중 10% 가까운 이들이 화성시에 터전을 잡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화성은 안산, 시흥, 수원 다음으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외국인 노동자 수는 전국 1위라는 게 기정사실은 곳입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참사가 일어난 기업처럼 제조업 공장 생산직입니다.  



이런저런 원인으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타국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이들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일 것이고, 귀한 자식일 것이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던 가족일 것입니다. 먼지 날리는 높은 산을 몇 시간을 걸어 내려와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서 찾아왔을 테지요.


아마 엊그제 그날도 덜 먹고, 덜 자고, 덜 앉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던 때였을 겁니다. 자신의 부모의 부모가 태어난 곳, 자신이 나고 자란 익숙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그곳보다 대한민국이 기회가 많고, 공정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비싼 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먼 길을 돌아 돌아 찾아왔을 겁니다.  


짧은 기간 잠깐 동안의 여행이더라도 비용을 가장 크게 아낄 수 있는 부분은 먹고 자는데 들어가는 거죠. 이들 대부분은 비싼 주거지를 벗어나 면단위 촌락 지역에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화재가 난 회사도 서신면에 위치합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팔탄면, 양감면, 장안면 일대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화재 참사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인간적인 나라가 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도 벗어나 안전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나라, 사는 방식을 차별하지 않는 나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나라, 살아남은 자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나라. 그런 나라말입니다.  


투명한 사고 내용 전달과 정당한 보상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소위 '건전지' 만드는 회사인 해당 업체가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작은 회사여서 걱정입니다. 전체 직원수 53명에 연매출 10억이 채 되지 않고, 당기순이익은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기업이어서 말입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자료를 살펴보니까 외국인 노동자가 회사를 통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상해보험이 있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사망 시 보장 금액은 3천만 원이 최대였습니다. 그것도 자격이 되어 가입을 했을 경우에 말입니다.

  

가장을, 자식을, 가족을, 평생의 꿈을 잃은 그들에게 해당 회사가 인간적인 도리를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기를 쓰고 관리감독해야 할 이유입니다.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조금이나마 우리의 손발이 되어 주는 수많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안전한 나라, 공정한 나라, 인간적인 나라라는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 주어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과 몇 시간만 우리나라를 벗어나도 외국인입니다. 아무리 벚꽃이고, 장미이고, 철쭉이고, 튤립이고, 백합이고, 히아신스이고, 라일락이고, 배고니아이고, 능소화였더라도 이름모를 잡초가, 흔하디 흔한 계란꽃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니까요.


고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권력의 우세에 있는 분들께 드리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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