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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03. 2024

#헤어지는 기쁨

[오늘도 나이쓰] 44 ... 다시 쓰는 나

그냥 보기만 해도,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시죠? 저는 참 행복하게도 두 분이나 계신답니다. 송선생님과 김 선생님. 송선생님은 같은 곳에 근무하다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늘 같이 있는 것 같은 분이고요, 김 선생님은 다른 곳에서 떨어져 근무하다 지금은 다시 같이 있습니다.



'오늘 만남을 표현해 준 샘의 언어가 아름답습니다. 변함없이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선생님과 만나서 제 영혼이 조금 더 좋아졌어요. 꼭 평화롭겠어요☺ 선생님이 학생들과 멋있게 지내셔서 이야기를 듣는 데 참 편안했어요. 고마워요. 우리 내년 봄에 꼭 다시 봐요✈'.


문자 하나에도 내가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싶게 만들어 주는 분이 송 선생님입니다. 저보다 한 해 아래이신 송선생님은 학교 안에서 보다는 밖에서 더 유명한 독서지도 전문가십니다. 아내마저 제가 송선생님을 전화 한 통화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할 정도입니다.


학교 뒤 산기슭에 건축가와 함께 설계한 집을 짓고 사신지 십여 년이 넘었지요. 대문도 없는 2층짜리 집은 지인들, 졸업생들의 사랑방 같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홀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사모님과 번갈아 휴직을 하다 올해 복직을 하셨습니다.


송선생님께 제가 (비밀스럽게) 붙인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다 좋아'님. 자기 것을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업무를 나눌 때도, 메뉴를 고를 때도, 토의토론을 할 때도 언제나 '전 다 좋습니다'라고 해요. 남은 것 맡겠다고 해요. 3년 만에 복직한 올해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해 남아 있던 '학생생활인권부'장을 맡은 이유죠.



'오늘도 공부하고 공 차고 놀고 사랑하느라 애쓰는 00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을 사랑하는 김 00입니다. 아직 점심 안 드셨다고요? 왜 그러셨어요? 지금 바삭한 새우랑, 매콤한 주꾸미가 1층에서 남겨졌다는 슬픔에 몸부림치며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공부도 연애도 식후경! 자, 얼른 급식실로 고고씽!!'   


김선생님이 자주 하시던 교내 안내 방송입니다. 저보다 세 해 위이신 김 선생님은 항상 웃고 다녀요. 세상 걱정 없는 사람 같아요. 뭘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냐,라는 말을 듣고 싶어 말을 걸고 싶을 정도예요. 같이 근무하다 헤어진 후 다시 만난 인연이죠. 그렇게 스무 해 넘게 알고 지내지만 또 개인적인 사정은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꾸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위안을 주려는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게 된다.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는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환자의 당당함을 지켜야 하건만.......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작가의 말씀이 자꾸 떠올라 전화를 주저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나갑니다. 김 선생님이 올해 암투병을 시작했거든요. 참다 참다 며칠 전에 통화를 했습니다. 살짝 감기 걸린 목소리 외에는 여전했어요. 전화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음색이 여전히 달달해요.


직장 건강검진에서 폐암 말기라는 소리를 듣고도, 요양원에 들어가 표적 치료를 시작하고도, 기운이 올라오면 농담을 잃지 않고 계셔요. 고3이지만, 방학을 하면 꼭 한번 찾아가 얼굴 보고 싶다, 고 했더니 놀라지 말라고 하더군요. 해를 자주 못봐 새하얗게 된 피부결에다 살이 쏙 빠져서 너무너무 잘생겨져 버렸으니 마주 보고서도 전화를 해서 자기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면서요. 단박에 못 알아볼 각오하고 오라면서요.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여러 번 멘트를, 억양을, 말의 속도를 연습하고 또 연습한 뒤 전화를 한 저를 속으로 무안하게 만들어 버린 거예요. 8월 초에 추가 검사를 한 후 꼭 얼굴 보자고 먼저 그래요. 너무 고맙고 감사했어요. 딴딴하면서도 깊은 웃음이 여전해서 말이에요.   


두 분의 공통점은 반전 있는 명랑성이에요. 왜 반전이냐면요, 가만히 있는 표정만 보면 화가 났거나, 안 좋은 일이 방금 막 생겼거나 하는 인상이거든요. 술을 많이 잘 마실 것 같은 관상이거든요. 그런데 소주 한잔도 못하면서도 술자리에 자주 앉아 있어요. 같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금방 편안하게 만들어 줘요.


안으로 밖으로 언제나 웃을 일만 있을 순 없을 텐데, 꼭 그런 사람들 같아요. 지나가는 말이라도 '묵직하게 진지한'것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적어도 한 번은 작정하고 유쾌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사람이 결코 가볍지가 않아요. 오히려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거목들 같습니다.  


송선생님은 복직을 하면서 보직을 '아무거나' 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학생생활인권부장 역할을 줘서 손발이 아주 바쁘다고 합니다. 흡연하는 아이들 신고받고 학교 주변 주택가로 달려가고 있고, 부서에 이래저래 불려 오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달달한 것 대신 차를 타 먹이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말이지요.


지금의 저는 이 두 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아주 큽니다. 한 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말이죠. 이 두 분이 저의 곁에 있어 참 좋은 이유입니다. 저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 두 분처럼 선하게 마음먹기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 같은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과한 욕심이겠지만요.


매일 반복되는 새벽에 반복해서 읽고 쓰기. 월요일 출근길. 차 안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해 부모님들께 안부전화 드리기. 혼자 있을 때 콧노래 자주 흥얼거리기. 일을, 생각을, 말을 멈추었을 때 영상 대신 KEEP에 기록해 놓은 조각글 읽기. 아침 운동 30분 하고 출근하기. 먼저 말하지 않기. 자주 묻기. 가만히 듣기. 금주


오랫동안 봐 온 두 분을 통해 마음먹기 연습을 하는 것들입니다. 세상 사는 거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내 일상이 인생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말이라는 사실을 실천하는 리스트들입니다.  '내 인생에서 참 좋은' 시간은 마음먹는 연습을 했던 공간에 묻혀 있는 기억의 향기일 겁니다.


분명한 건 마음먹을 수 있는 지금이, 여기가 가장 평화로운 시공간일 테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내 안에서 에너지가 솟아오를 가능성이 가장 큰 때일 테니까요. 편도만 부어도, 혓바늘 몇 개만 생겨도, 편두통이 몇 날 며칠을 떠나지 않아도 새벽을, 전화를, 아침 운동 루틴을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하게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언젠가는 모든 것과 헤어집니다. 지인은 물론 가족과도 그리고 나 자신과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가장 건강하고, 젊고, 평화로운 날이기 때문에 마음먹는 연습하기 딱 좋은 날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마음먹는 연습은 내 감정과 공명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거든요.


내가 나의 소리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일 있는 신호 체계를 키워야 나를 둘러싼 환경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언젠가 (갑자기) 헤어질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하게 한 마음먹는 연습 덕분에 같이 지낼 수 있었다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어쩔 없이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할 때 '우리 좋았어. 놀았어. 살았어. 잘했어'하며 기뻐할 있게 하는 연습의 시작일입니다. 아드님이 어느 영화에서 봤다며 기억하던 한 문장을 떠올리며 오늘도 이 새벽을 나섭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먹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시나요?



IF you don't like something. Change it.

lF you can't. Change attitude.

Don't com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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