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오한과 식은땀, 떨어지지 않는 열. 이번 감기는 독하구나 했다. 감기 기운으로 결근을 한 게 3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약을 이틀 먹고도 좋아지지 않아 사흘째 병원을 다시 찾았다. 감기약을 먹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중간에 병원을 다시 찾은 것도 처음이었다.
엑스레이를 보던 주치의가 살짝 흥분하며 그런다. 급성폐렴이라고. 사흘 내내 고열의 원인을 찾느라 함께 신경 써준 우리 동네 동갑내기 주치의다. 친절한데 다정하게 자세한 설명까지 해주어서 낯을 가리시는 부모님도 찾는 우리 가족 단골 병원장이다. 원인균을 알아봐야 하지만 폐렴은 초기에 무조건 쉬면서 연속으로 항생제 주사액을 맞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입원을 권유하면서 소견서를 작성해 준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주치의가 길게 써준 소견서에 기적 같은 타이밍이 맞았는지 전화로 알아본 세 곳 중 개원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종합병원에 당일접수가 되었다. 그렇게 짐도 챙기지 못하고 당일 진료 후 3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92병동 4인실에 딱 하나 비워있던 침대로 배정을 받아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환자가 되었다. 그렇게 금토일월화. 5일 동안 입원을 했고, 병원 밥을 먹었고, 환자가 되었다.
환자복을 입고 보니 영락없는 환자였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한 이틀은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시계를 보다, 책을 읽다, 문득 창문 만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흘러가고 그 구름을 쫓듯 또 다른 구름이 따라 달렸다. 참 오랜만이었다. 하늘에 그렇게 오랫동안 말을 걸었던 적이.
평소 신념이라 믿는 욕심이 하나 있다. 사람은 옷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리다 보니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에 어울리게 사는 게 저 구름처럼 사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환자복을 입었으니 환자다워야 한다. 내게 주어진 역할은 '얼마 동안'이더라도 환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그럼, 환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고 달리는 구름에게 물어봤다.
첫째, 기대 말고 '희망' 하기
기대는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뭐 어쩔 수 있나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희망은 다르다. 바람이 훨씬 더 깊고 진하다. 상황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유니폼에 맞는 역할을 나하고는 맞지 않는 규칙, 절차, 질서가 이미 내재화된 그 공간에서 오직 '희망'으로 버티기. 그게 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이었다. 내재화된 룰들은 오로지 하나. 환자복을 입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겠다, 는 선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따라야만 한다. 어떤 방식으로? '희망'을 품고.
늘 바빴다기보다 언제나 무엇을 하고 있었다. 낮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책이라고 읽어야 했고, 메모라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숨쉬기 어려워지니, 연신 기침이 터져 나오니, 가래가 끊임없이 흘러넘치니 앉아 있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입원한 지 사흘째 되는 날 같은 창문밖으로 보이는 같은 위치의 그날 구름은 멈춰 있었다. 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움직일 수 있을 때 많이 움직이기, 를 환자복을 벗으면 꼭 꾸준하게 실천하리라고 멈춘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다짐했다.
둘째, 걸을 수 있을 때 '걷기'
하루 두 시간. 링거를 맞는 시간을 제외하면 왼쪽 팔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침대에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는 시간이 전부다. 환자니까. 그런데 다른 곳도 아플 것 같은 기분까지 들어 도저히 병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있었지만 움직였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지하 1층. 5층의 옥상 정원을 뱅글뱅글 계속 걸었다. 속도를 내지도, 팔을 휘졌지도 못했지만 기분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환자복을 입은 이들 중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들고 날 때 조심 조심 하면서.
셋째, '골고루 조금씩 잘 먹기'
갑자기 극도로 보수적인 저염식을 먹으니 속이 울렁거렸다. 담당 간호사가 '상식'이라고 일러준 식단이었다. 네? 하고 한 번에 못 알아들으니 부언해 준다. '일상식' 그러니까 주치의의 특별한 처방으로 제한되지 않은 일반식을 줄여 부르는 듯했다. 약봉투에 식사 후 '즉시' 복용이라고 쓰여 있어 양치도 하기 전에 바로 먹었다. 그랬더니 입맛이 싹 달아나는 게 5일 내내 반복되었지만 하루 세끼 '상식'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밥으로 밍밍한 국물로 고춧가루 없는 김치조각으로 꼬박꼬박 눌러 내렸다.
넷째, '푹 자기'
이게 입원하는 기간 동안 가장 어려웠다. 평소에 머리만 닿으면 자는 것도, 매일 6시간 이상 잠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입원해 있던 같은 병실 환자들이 모두 고령이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분씩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보호자들(모두 아내들이었다)은 한 시간에 서너 번씩 가래를 뽑아내는 썩션 정도는 혼자 거뜬히 해내시는 능숙한 이들이었다. 다만, 이런 광경에 처음 노출된 나는 낮밤 없이 24시간 일어나는 소리, 냄새에 쉽게 적응이 되질 않았다. 사흘동안 10시간 남짓 숙면을 취하는 것으로 버티었다.
잠 때문에 하루, 이틀 일찍 퇴원했다. 처음 진단을 받는 동네 의원으로 다시 통원 치료를 다니면서 생각이 들었다. 퇴원하고 환자복을 벗고 나니 병상에서 떠오른 덕목은 환자만의 덕목은 아니었다. 아프지 않기 위해, 덜 아프기 위해, 짧게 아프기 위해 평상시에 아프지 않을 때 실천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던 거다.
건강할 때 입고 있는 유니폼은 달라도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한 삶의 습관이란 게 이미 뻔한 정답으로 아팠던 이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었던 거다.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맞다. 환자는 갑자기 되는 것이지만 질병은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을 쓴 정희원 의사의 말처럼 내가 가진 병의 목록은 어느 정도 살아온 삶의 '결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