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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r 01. 2023

스마트폰과 방아쇠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인생이 털렸다. 


그 말은 반대로, 우리가 평소 얼마나 스마트폰에 인생 전부를 걸고 사는지를 거꾸로 알려 준다. 이야기의 초반부, 영화는 주인공인 나미를 관객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그녀의 일상을 스마트폰 중심의 발랄한 몽타주로 표현한다.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나미는 잠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또다시 일을 하고, 퇴근 뒤에는 친한 사람들과 저녁을 먹곤 노래방에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마무리 되는 하루. 그런데 그 삶의 모든 순간 곳곳에는 스마트폰이 항상 함께한다. 아니, 함께한다는 표현 보다도 이제는 이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나미는 하루를 시작할 때도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며, 스마트폰 네비게이션 앱과 교통카드 앱으로 출근을 한다.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과 저녁 결제도 모두 스마트폰으로 하지.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놀 때 스마트폰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는 건 덤.


스마트폰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보급된 도구일 것이다. 도구. 우리는 도구를 두고 말할 때 그 도구에 선악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선악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그 도구의 사용자지. 망치가 못을 박는데 무척이나 효과적인 도구지만, 동시에 사람 머리를 가격해 두개골을 부숴버리는데도 효과적인 도구라는 점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건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지, 스마트폰도 도구니까. 스마트폰은 방구석에 앉아서 지구 반대편의 소식까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무척이나 강력한 도구지만, 망치가 그렇듯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용자의 손에선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고. 


성실한데 실행력까지 좋은 악의 손바닥 위 스마트폰 속에서, 주인공 나미는 그야말로 인생의 파멸을 맞닥뜨린다. 사회적 평판은 무너지고, 가족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거기에 임시완의 서늘한 표정을 곁들임으로써 관객들의 살갗에 소름이 돋도록 만든다. 우리 모두가 들고 사는 도구를 통해 벌어지는 파국. 영화 속 주인공 뿐만 아니라, 나도 걸릴 수 있는 무척이나 허들이 낮은 덫. 스마트폰을 소재로 골라 잡은 스릴러의 공격력은 이토록 강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꽤 그럴 듯한 전반부에 이어, 어디서 많이 본 것만 같은 후반부를 보여줌에 따라 아쉬움을 남긴다. 스마트폰과 SNS를 소재로 하는 스릴러라고? 와, 그럼 다른 건 몰라도 현실성과 시의성 하나는 정확하겠군. 그런데 그런 영화가 어째 후반부는 공장에서 마구 찍어낸 듯한 평범한 이야기 전개로 흘러 가다니? 주인공의 가족이 사는 주택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막스 속 살인마와의 대면 장면은 통째로 뻔해 여태껏 영화와 함께 달려왔던 관객들의 맥을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인마에게 총을 겨누는 주인공의 모습. 영화는 여기서 정말로 큰 패착을 드러낸다. 


보통 악당에게 총을 겨눈채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다루는 장면들에서는 크게 두 가지 패턴이 나타난다. 첫번째, 지금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경우 악당은 그 목적을 이뤄낼 것이다. 그 목적은 크겐 세계 정복이 될 수도 있고, 작게는 인질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큰 피해를 입을 절체절명의 상황. 고로 주인공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상황. 보통 이런 경우는 <다이 하드> 같은 액션 영화들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두번째, 사건은 이미 일어난 이후인데 악당이 의도적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건드리는 상황. 이미 상황은 종결되어 악당이 패배한 직후이지만, 주인공은 분노 또는 슬픔에 사로잡혀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를 고민한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악당을 살리는 대신 그처럼 타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긴다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주인공의 영혼은 타락 하겠지. 이건 그냥 <세븐> 생각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은 정말로 이상한 선택을 한다. 살인마는 이미 형사들에게 잡힌 직후다. 수갑에 꽁꽁 묶였고, 그 스스로도 더 이상 물리적으로 공격을 이어갈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럼 일단 방아쇠를 당길 일차적 이유가 없지. 지금 죽이지 않으면 살인마가 또다른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라는 전제가 전혀 없으니. 헌데 그런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그저 분풀이를 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거기엔 어떠한 심리적 전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반인이건만, 주인공은 권총을 집어들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물론 안다, 방금 그 살인마가 주인공 자신은 물론 그녀의 하나뿐인 가족 역시 거의 죽이는 데에 성공할 뻔 했다는 것을. 그럼 적어도 영화가 주인공의 내면 전쟁을 조금이라도 묘사 했어야 됐던 것 아니겠는가. 심지어 에필로그보면 그 살인마 죽지도 않았던데.


나름 시기적절한 소재를 골라 잡아놓고도 정작 후반부에서는 기시감 짙은 공산품 스릴러가 되는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방아쇠를 너무 쉽게 당기는 주인공을 가진 영화. 그래도 손쉬운 복수의 유혹 앞에서 스스로를 삭히며 자신의 영혼이 타락하는 것을 막는 주인공을 보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김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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