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Feb 15. 2023

'1'이 아닌 '한 명'

<다음 소희>

이제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 관료주의는 장점 못지 않게 단점 또한 많다. 내 일이 아니라고 치워버리는 것. 여러 단계를 거쳐야해 처리에 시간이 걸리는 것.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한없이 위와 아래로 구분지어 나누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숫자'라는 언어로만 소통하는 것. 맞다, 나는 그 '숫자'놀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사무실 뒷편 벽에 걸린 게시판 위에 쓰일 수도 있고, 컴퓨터 모니터 안 엑셀로 만든 표 위에 입력될 수도 있으며, 또 계좌 안에 적힐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 '숫자' 뒤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1'이 아니고 '한 명'의 사람. 가족과 친구와 생일과 취미와 추억을 갖고 있는 '한 명'의 개인. 그러나 이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위정자들은 그 뒤를 보지 못한다. 물론 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다음 소희>는 1,2부 구성을 띈다. 1부에서는 제목에도 걸려있는 소희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되는데, 사실 이야기를 끌어 간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이야기 속 상황에 그녀가 질질 끌려간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직업 고등학교 졸업반인 소희는 학교의 취업률과 담임의 성과를 위해 대기업의 하청 업체인 서비스 콜 센터에서 수습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닦을 수()에 익힐 습()을 쓰는 단어의 뜻과는 달리,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수습'은 싼 값에 마구 부릴 수 있고 더불어 교체하기 까지 쉬운 젊은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 된지 오래. 소희는 일을 하며 일말의 성취감도 맛보지만, 그 작고 작은 기쁨 외의 모든 것들은 한없이 그녀를 옥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신경질적으로 들려오는 고객들의 욕설과 모욕적 언사들, 다른 직원들끼리의 과도한 경쟁, 상사의 노골적인 압박까지 모든 게 다 소희를 압박 해온다.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간 소희. 그런 소희에게, 잘 모르는 남들이 말한다. "그토록 힘들었으면 그냥 일 그만 두면 되는 거 아냐?" 실제로 소희 또한 그 일을 그만두려 한다. 하지만 소희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진 압박은 이 마지막 꿈틀거림에서 조차 가혹하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역시나 '숫자'가 있다. 


담임은 소희가 그만둘 경우 자신의 학급 취업률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다. 이어, 교감은 그로인해 학교 전체의 취업률이 저하될 것을 염려한다. 그 위의 장학사는 이로인해 우리 지역군의 전체 취업률이 바닥 칠 것을 염려한다. 웃긴 건 그들의 그 '염려'에 소희를 비롯한 한 명의 개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염려'가 향한 곳은 '인센티브'였으니. 왜? 취업률이 떨어지면 노동청과 교육청에서 지원을 줄일 게 뻔하니까. 그럼 여기 직원들은? 여기 교사들은? 그리고 나는? 걱정의 방향은 언제나 '사람'이 아닌 '숫자'를 향한다. 그리고 그건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우리 팀의 순위를 위해. 우리 업체의 인센티브를 위해. '숫자'를 위해 '사람'을 틀어쥐고 휘두르는 사회. 그 사회에 목졸린 소희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최소한 무언가를 선택한다. 


이어지는 2부의 주인공은 형사인 유진으로, 그녀가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며 이야기가 꾸려진다. 그리고 수사가 이어짐에 따라 유진은 '숫자'가 전부인 이 사회의 진짜 순간들을 직접 목도하고 이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를 통해 때때로 <다음 소희>는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목소리를 드높이긴 한다. 가끔은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숫자놀음이라는 이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불합리를 대놓고 직시하며, 이에 유진의 목소리를 통해 무력할지언정 그 절망감과 분노를 표출해줌으로써 영화적 힘 또한 동시에 얻는다. 


그리고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끝이 잔잔한 위로라서 좋았다. 이미 소희는 그렇게 갔지만, <다음 소희>라는 영화의 제목따라 정말 다음의 또다른 소희가 있을 수도 있는 세상. 아니, '있을 수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분명 존재할테지. 그래서 그 다음 소희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던 택배 회사의 청년에게, 유진이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라고 해줘 고마웠다. 이 사회 전반에 전염병처럼 돌고도는 숫자의 저주, 그 아래에서도 '1'이 아닌 '한 명'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주고 연락 하라 말해줘서 감사했다. 


<다음 소희> / 정주리


이전 19화 스마트폰과 방아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