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Feb 15. 2023

신념, 사명의식, 그리고 번식

<성스러운 거미>

성지순례로 각광받고 있는 이란의 마슈하드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희생된 사람만 열명을 넘긴 대사건. 피해자들은 모두 매춘부 여성이었으며, 신원을 알 수 없는 살인범은 피해자들이 두르고 있던 차도르로 그녀들을 교살한 뒤 그걸로 시체를 감싸고 유기 했기에 '거미 살인범'이란 이명을 얻는다. 


영화의 분위기부터 다루고 있는 소재, 그리고 실화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점까지 <성스러운 거미>는 여러모로 데이비드 핀쳐의 <조디악>과 겹쳐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역시나 실제 이야기 속 그 연쇄살인범을 잡았는지 또는 놓쳤는지의 차이일 것. 다행스럽게도 이란의 거미 연쇄살인범은 체포되어 끝내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실제 그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우리가 안다고 해서, 사실 영화까지 그걸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나. 어찌되었든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인데, 극 초반부터 그 연쇄살인범의 얼굴과 정체를 모조리 공개할 필요까진 없지 않냐 이 말이다. 헌데 <성스러운 거미>는 초반부터 연쇄살인범의 이름이 사이드라는 것과 그의 얼굴, 그의 직업, 그의 상태, 심지어는 그의 가족까지를 모두 까발린다. 때문에 연쇄살인범이 누굴까-라는 장르 특유의 미스테리를 밝혀나가는 재미를 전부 잃었다. 


감독과 각본가가 그걸 몰랐을리는 없지.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일찍이 드러냄으로써 장르적 재미는 잃었을지 몰라도,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성스러운 거미>는 그 연쇄살인범의 내면과 상황을 고찰할 기회를 얻는다. 물론 토드 필립스가 <조커>에서 그랬던 것 마냥 그 범죄자의 심리를 들여다봄으로써 짐짓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성스러운 거미>가 굳이 사진 않는다. 그렇다면 거미 연쇄살인범 사이드의 내면과 상황을 고찰해 <성스러운 거미>가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60여년 전,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악이란 머리에 뿔이 나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나 늑대의 모습이 아니라, 너 나 우리와 똑같은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가졌다고. 이같은 '악'에 대한 설명 뒤, <성스러운 거미>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평범한 얼굴을 가진데다, 거기에 신념과 사명의식까지 갖춘 악이란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이냐고. 사이드는 퇴역한 군인으로서 전쟁영웅 취급을 받지만, 스스로는 그 지하드 성전에서 영광스럽게 순교하지 못한채 혼자서 터덜터덜 살아돌아온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한다. 끝나지 않은 성전, 끝내지 못한 성전. 사이드가 거리의 매춘부들을 마구 죽여댄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매춘으로 알라의 이름을 더럽힌 부정한 여자들을 모두 숙청하는 게 자신의 성전이자 사명이라는 것. 


예컨대 진정한 악이란 이처럼 일말의 염치가 없다. 오히려 그걸 즐기거나 자신이 완수해야할 성스러운 임무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 때문에 거미 연쇄살인범 사이드의 하늘에 대한 그 비틀리다못해 썩어버린 충심은 우리를 무섭게 만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성스러운 거미>와 실제 사건 속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보수적인 관점으로 이슬람 교리를 해석한 원리주의자들은 사이드의 행동을 비난하기는 커녕 지지하고 응원 했던 것이다. 거리의 부정한 여자들을 우리 대신 청소해준 사이드에게 영광을! 사이드를 석방하라!


사회 시스템 전체로 커지고 넓어진 악의 범용성은 우리를 한차례 더 놀라게 만든다. 그러나 한없이 작고 적어 그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선'과는 달리, '악'은 그 호환성이 대견할 정도로 대단하다. 이란 사회 전체에 드리웠던 그 '악'의 그림자는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다음 세대에게 까지 물려지고 만다.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숭상하는 사이드의 아들 알리와, 그런 오빠에게 좋은 살인 교보재가 되어주는 여동생까지. 그 둘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에서 잡아낸 영화의 마지막 쇼트가 너무나 아프고 아렸다. 평범한 얼굴로 신념과 사명의식까지 갖추고 대를 이어가는 악 앞에서 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믿고 따르며 숭배하는 알라가 만약 실존한다면, 사이드의 행동들과 그 지지자들의 응원들을 모두 용인 했을까? 이슬람은 물론이고 종교 전반에 관해 문외한인 나지만, 만약 그들이 믿는 알라가 실존하고 또 언젠가 이 땅위에 강림하게 된다면. 나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 '악'을 퍼뜨리는 자들을 모두 도장깨기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성스러운 거미> / 알리 아바시


이전 21화 스스로에게 반창고를 처방 바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